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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금천면 죽촌리 야죽마을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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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호] 승인 2023.05.29  02: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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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장 가던 옛길 따라 꽃길 만들어 도시민 ‘힐링의 길’로

영산강 지천 옆 너른 들에서 쌀이며 수박, 양잠하던 살기좋은 부자마을
아늑한 소쿠리 형상의 마을을 둘러싼 단산봉 아래 고인돌 40여기 남아
   
▲ 소쿠리 형상을 한 야죽마을 앞으로 영산천과 너른 들이 펼쳐져 있다.
 
역사가 쓰여지기 전에 살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농촌마을에서 미래를 찾아간다고 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가뜩이나 쇠락하는 ‘마을’을 눈 앞에 두고 현실성없는 표현이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며 한발짝 한발짝 작은 걸음을 내딛는 이가 있다. 빛가람동이 바라보이는 금천면 죽촌리 1구 야죽마을의 조봉숙(63세) 씨가 그 주인공이다. 
 
2021년 말 전라남도교육청에서 정년퇴직한 조 씨는 “옆 마을인 신천리 방축·신방마을에서 우리 마을을 거쳐 남평읍 5일장에 다니던 옛길을 따라 사랑초며 청화쑥부쟁이가 만발하는 꽃길을 만들고 싶다”며 “그렇게 길이 연결되면 빛가람동이나 광주광역시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 나주의 옛 모습을 추억하며 현재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는 ‘힐링의 길’이 될 것”이라고 한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찾는 도시 사람들에게 ‘시골다운 시골’을 찾도록 만들고 싶다”는 조 씨는 “그렇게 도시 사람들이 찾아오는 농촌마을을 만들면 생기가 돌지 않을까 한다”며 조심스레 바람을 내비친다.
 
“뼈 빠지게 농사지어도 적자만 늘고 남은 것은 골병 든 몸뚱아리 뿐”이라는 김서옥(84세) 씨는 “냉해까지 겹쳐 열매가 맺히지 못하고 떨어져버린 배나무를 보면 화부터 치민다”고 한다. 야죽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 씨는 “그런다고 땅을 놀리고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며 부인과 함께 고추밭으로 향한다.
 
마을회관 앞 공터에서 경운기를 수리하고 있는 고문실(85세) 씨는 “농사 짓기 위해 26살에 다도면 고향 땅을 팔고 논을 사서 이 마을에 들어온 지 60년이 됐다”며 “한자를 잘 쓰는 아들이 직업군인으로 성공(?)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조봉숙(63세) 씨는 당달봉 옛길 따라 남평읍 5일장 다니던 길에 꽃을 심고 가꾸면 도시민들이 찾는 힐링의 길이 될 것이라고 한다.
 
결혼하면서 남편의 고향인 노안면에 살다 탯자리로 돌아왔다는 박순자(86세) 씨는 “마을 앞 영산천을 건너는 죽촌교도 없었고 아버지가 학교도 보내지 않고 집안에서만 가르치고 키우던 시절이었다”며 “결혼하기 전까지 금천면 소재지가 어딘지도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장흥군 유치면이 고향인 서남재(65세) 씨는 1974년에 야죽마을로 이사왔다. 서 씨는 “원예고를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자동차부품 제조회사에 취직해서 20여년 직장생활을 하다 2000년에 광주에 식육식당을 차렸다”며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과 논밭을 일구기 위해 2017년 광주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도시사람이 농촌에 와서 산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서 씨는 “대농 아니면 소득이랄 게 없는 소일거리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인다.
 
세지면이 고향인 74세의 아주머니는 “경지정리도 안 된 다락논 일궈서 3형제 키우느라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다”며 “영산천이 있어 물 걱정은 안하고 농사지은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이라고 한다. “자식들한테 해가 될 지도 모르고, 뭔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디 함부로 이름을 알려준다요?”라며 한사코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다.
 
부녀회장 정금순(64세) 씨는 “무슨 일이든 먼저 어르신들께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마을에서 제일 젊은 저희 또래 4명이 ‘어머니 아버지 모신다’는 마음으로 팥죽이며 고구마, 떡 등 음식을 함께 나누며 산다”고 한다. 광주광역시가 고향인 정 씨는 마을회관 부근의 담벼락에 아기자기한 벽화로 마을을 꾸미기를 희망하고 있다.
 
   
▲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던 샘터가 복원돼 있다.
 
나주농민회장과 금천농협 조합장을 지낸 김선중(72세) 씨도 야죽마을이 고향이다. “우리 마을이 산포면 등계마을, 봉황면 철애마을과 함께 나주에서 살기 좋은 마을 중 하나였다”는 김 씨는 “금천면의원의 절반 가량을 우리 마을에서 배출할 만큼 인물도 많은 부자동네였다”고 한다.
 
“수박농사 1평 지어서 땅 1평씩 산다는 말이 있을 때도 있었고, 3만평 규모로 양잠을 하기도 했다”는 김 씨는 “공판장에 가면 외국과일이 75%나 차지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세계화 바람에 농업과 농촌이 피폐해졌다”고 한숨짓는다. ‘3선 조합장을 하고도 빚만 늘었다’는 김 씨의 탄식에 농촌의 현실이 묻어나온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단산봉(당달봉이라고도 함)은 인근 학교 학생들이 소풍다니던 곳이다. 그곳에는 여전히 수십여기의 고인돌이 있다. 나주시문화유산종합학술조사보고서에는 1백여기 이상의 고인돌이 있었지만 일제 때 인근에 저수지를 쌓는데 이용함으로써 40여기만 남았다고 한다. 신방마을에서 들어오는 마을 입구에 주민들이 막걸리잔을 부딪히고 어린아이들의 군것질거리를 팔던 가게 터에 들어선 교회 문이 자물쇠로 잠겨 있다.
 
다도면에서 봉황면으로 이어진 덕룡산의 끝자락인 단산봉을 뒤로 하고 마을 앞으로 영산천과 너른 들판이 있는 야죽마을은 농작물 등을 담는 소쿠리 형상을 하고 있어 포근하고 아늑함을 준다. 마을회관 뒤편으로 오래된 향나무 아래 샘터가 복원돼 있는 야죽마을이 마을과 마을을 잇는 꽃길을 만들고 그 길에 도시민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길 기대한다.
 
   
 
조종연 야죽마을 이장 인터뷰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사회생활 첫 발 뗀 딸아이 대견”
 
“당달봉 고인돌은 우리들 놀이터였다” 
 
금천면 죽촌리 1구 야죽마을 조종연(59세) 이장은 “당달봉 넓은 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도 하고 말뚝박기도 하고 놀았다”며 “마을 앞 영산천에서 수영도 하고 메기며 붕어, 자라 등을 잡아다 다도면 매운탕집에 팔기도 했다”고 옛일을 추억한다.
 
어려서 병치레를 하다 청각을 잃었다는 조 이장은 “20대 초반 서울 신월동의 가구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며 “공장에서 먹고 자며 일하고 받은 첫월급이 10만원이었고, 가끔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에 있는 작은아버지 댁에 다녔다”고 한다.
 
“서울 생활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어 3년여만에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조 이장은 “농업후계자 지원을 받아 송아지를 구입하고 창고를 개조해 소를 키웠지만 10여년만에 닥친 소값파동을 버티지 못하고 1997년에 축산을 그만뒀다”고 한다. 조 이장은 마을 앞 논 5만여평에서 쌀농사만 짓고 있다.
 
4남매의 장남인 조 이장은 “청각장애로 인해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지만 동생 세명은 대학까지 보냈다”며 “동생들이 모두 착실하게 공부하고 자리잡아 사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뿌듯해한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딸이 방향을 바꿔 교육행정직에 합격해 지난달 진도교육청으로 발령났다”고 자랑삼아 이야기를 꺼낸 조 이장은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는 일이 많다며 만만치 않은 사회생활을 이야기하는 것이 여간 대견스럽게 느껴진다”고….
 
올해로 12년째인 조 이장은 “마을 화단을 가꾸고 회관과 우산각에 지붕을 씌우는 등 마을일에서 보람을 느낀다”며 “한 때는 주민 수가 100여명이 넘는 큰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33명만 남았다”고 아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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