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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다시면 가흥리 정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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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호] 승인 2023.05.15  0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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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서 재첩 잡고 인기좋은 다시쌀 팔러 기차타고 목포까지

정관채 염색장 제자들이 문 연 갤러리와 공방, 젊은이들 들어와 활기찾길
귀향해 블루베리·샤인머스켓 등 특수작물 재배하고 가상들에서 벼농사도
 
   
▲ 영산강과 문평천이 맛닿은 가상들에서 바라본 정가마을의 하늘이 쪽빛으로 물들어 있다.
 
“마을을 지나던 도인이 ‘정직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 했다고도 하고, ‘수다면의 맨 가에 위치’해서 정가마을이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다시면 가흥리 정가마을 장인환 이장(58세)의 설명이다. 나주시지에는 뒤의 설명으로 기록돼 있고, 영산강에 합류하는 문평천에 접해 있는 마을 앞 들녘을 ‘가상들’이라 한다고 덧붙여 있다. 
 
정가마을 들머리에 ‘풍정’이라는 카페를 연 최용회(53세) 씨는 “수도권에서 프로그램 개발자로 일하던 어느날 하루라도 젊을 때 고향에서 자리잡자고 맘 먹었다”며 “집 뒤 야산에 고분이 있어 ‘보물이 있는 풍정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정가마을에 편입돼 없어졌다”고 한다. 카페 이름을 풍정이라 정한 것도 마을 이름이 잊혀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란다.
 
블루베리 농사를 병행하고 있는 최 씨는 “유통과정이 불편해서 작년에 수확한 블루베리의 90%를 카페에서 소비했다”며 “올해는 카페 1층에 판매장을 두고 우리 지역에서 재배한 각종 농산품을 함께 판매할 계획”이라고..
 
임준택(53세) 씨도 고향으로 돌아온 지 5년째다. “인천에서 방산기업에 근무했었는데 고향이 좋아서 돌아왔다”는 임 씨는 “정년 이후 객지에서의 삶을 생각하니 막막하기도 하고 농사는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돼 과감히 결단했다”고 한다.
 
벼농사와 함께 샤인머스켓을 재배하고 있는 임 씨는 “처음 2년 동안 버섯이며 사과대추 재배 등 여러 품목을 공부하며 준비했다”며 “샤인머스켓 재배 3년째인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판매에 들어갈 계획”이란다. 
 
고향을 묻는 물음에 망설임 없이 “여가 고향이제”라는 박순희(94세) 씨는 “스무살에 결혼해 이 마을사람이 돼 70년 넘게 살았응께 고향이나 진배없다”고 한다. 무안군 일로읍에서 나고 자란 박 씨는 “가진 것 없이 두 내외가 손발이 닳도록 일해서 7남매를 키웠다”며 “둘째 아들 내외가 서울 살다 내려와 농사를 크게 짓고 있는 지금은 마을 사람들이 제일 부러워한다”고 눈웃음을 짓는다.
 
   
▲ 다시면에서 왕곡면으로 향하는 무숙로를 따라가면 정가마을을 만나게 된다.
 
“친정 아버지한테 쌀 10섬을 ‘빚’ 내서 마을 앞 신작로 곁에 가게를 차렸다”는 문종심(76세) 씨는 “가게가 자리 잡고 나서 친정에 ‘빚’을 갚으러 갔더니 엄마가 ‘그냥 갖고 가라’는 바람에 끝내 못 갚았다”고 한다. 강진군 작천면이 고향인 문 씨는 무안군 삼향면 출신 남편을 만나 1971년에 정가마을에 들어왔다. 문 씨는 “두사람 맨몸뚱이로 와서 헌집 사고 새집 짓고 살다 5년 전에 귀향한 아들이 작년에 집을 다시 지었다”며 옛일을 떠올린다.
 
‘풍정댁’ 최칠순(90세) 씨는 “영산강변에서 김장김치 씻고 재첩이며 새우잡던 기억이 있다”며 “다시 쌀이 인기가 좋아서 기차타고 목포로 팔러 다녔다”고 한다. “하루에 300kg 넘게 팔 때도 있었다”는 최 씨는 “제대로 밥 한끼 사먹지 못하고 1원에 4개 하던 노점의 풀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6남매 키우고 집사고 논도 샀다”며 구부러진 손가락을 내보인다.
 
광주시 광산구 하산동이 고향인 이종태(53세) 씨는 “조용한 마을에서 텃밭 가꾸며 살고자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2010년 정가마을에 정착했다”며 “나주공고에 진학하면서 나주와 인연을 맺었고, 목수로 한옥 건축 현장에서 일하며 살았다”고 한다. 이 씨는 “오늘은 가까운 저수지로 낚시가려고 한다”며 부인과 함께 차에 오른다.
 
2000년대 초 화순군에 전대병원이 들어올 때 나주로 이사왔다는 김종선(64세) 씨는 “송월동 주택가에 살다 푸성귀라도 직접 길러서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2018년 정가마을로 들어왔다”고 한다. “강원도며 경상도며 전국에 안 다닌 곳이 없다”는 김 씨는 “한번 들어가면 7~8개월은 일해야 하는 건설현장의 특성 때문에 집에서 가까운 현장만 다니려고 한다”며 여유로운 삶을 꾼꾼다고 한다.
 
   
▲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 정관채 선생이 체험학습 온 영산중학교 학생들에게 쪽염색을 가르치고 있다.
 
정가마을 안쪽 대박산 초입에 대한불교 조계종 일문사가 있다. 신도인 마을 주민의 소개로 1993년 2명의 비구니 스님이 창건했다.
 
마을 입구에 ‘정관채 삼거리’ 표지가 있다. 마을 출신으로 50여년 가까이 쪽염색에 매진해 온 국가무형문화제 제115호 염색장 정관채 선생(66세)의 전수교육관이 있기 때문이다. 미술교사로 정년퇴직한 정 선생은 미대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쪽염색에 빠져들었다.
 
“영산강변은 볕과 물을 좋아하는 쪽 재배에 최적화된 지역”이라는 정 선생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쪽과 인연을 맺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쪽 재배부터 색을 만들기까지 모든 정성과 시간을 쏟아야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정 선생의 제자 유혜영(51세) 씨는 작년에 마을의 빈집을 사서 ‘휴갤러리’를 열었다. 두 명의 제자가 마을에 공방을 차렸고, 공방 터를 알아보고 있는 제자들도 대여섯이나 된다고 한다.
 
정 선생의 배우자이자 이수자인 이희자(62세) 씨는 “결혼하면서 자연스레 염색장이가 됐다”며 “무형문화재나 이수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서 전승에만 전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인다. 둘째 아들 정찬희(33세) 씨와 함께 체험학습 온 영산중 학생들을 맞는 이 씨는 “정가마을의 미래를 쪽염색에서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한다.
 
1백여 가구가 넘는 큰 마을이 30여가구로 줄었지만, 더 많은 젊은이들이 돌아와 활기를 되찾는 정가마을을 그려본다.  
 
   
 
장인환 정가마을 이장 인터뷰
 
“농사짓겠다고 온 아들, 기계와 정보 취득 빨라 믿음직”
 
“다른 욕심은 없어도 기계욕심은 있다” 
 
장인환(58세) 이장은 “고등학생 때 처음 접한 경운기 타는 재미에 해가 지는 줄 몰랐다”며 “비료 뿌리고 밭 갈고 하는 쓰임새가 달라 35, 75, 130마력의 트랙터를 각각 갖고 있다”고 한다. “2018년 다시면에서 가장 먼저 드론 자격증도 땄다”는 장 이장은 “농사일이 많아지는 것에 비례해서 기계에 대한 욕심도 더 많아지는 것 같다”며 웃어 보인다.
 
스물네살이던 1989년에 상경해 서울의 중고차매매단지에 중식당을 연 장 이장은 “손님이 많아 돈벌이도 좋았지만 나이 많은 직원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매일 술로 풀다시피했다”며 “지나친 과음으로 인해 신장에 이상이 오자 ‘이러다 큰 일 나겠다’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단다. 
 
“낯설고 힘든 객지 생활에 건강도 심상치 않아 4년여의 서울생활을 정리했다”는 장 이장은 광주로 와서 택시에 뛰어들었다. 회사택시를 매입해 동료와 함께 하루 2교대를 한 장 이장은 “일할 욕심에 무리한 탓에 두달만에 쓰러져 병원 신세를 졌다”며 “세상 일이 욕심만으로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여유를 찾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그 때 부인을 만났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됐다”는 장 이장은 “회사 총무부에 근무하던 집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고.. 3년여 연애 끝에 1996년 1월 7일에 결혼한 장 이장은 “그 해 태어난 큰 아들이 어엿한 어른이 됐다”며 “부산에서 해양대를 졸업하고 농사짓겠다고 돌아온 아들이 믿음직스럽다”고 한다.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나 정보를 얻는 게 우리 세대와는 다르다”는 장 이장은 “농사도 각종 교육과 지원 등 정보가 중요하다는 걸 아들을 보면서 느낀다”며 뿌듯해한다. 아들과 16살 터울인 초등 5학년인 딸이 태어나던 해에 고향으로 돌아온 장 이장의 대를 이은 농사성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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