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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어떻게 해 먹냐?
송용식 수필가  |  songys8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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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호] 승인 2023.05.15  00:5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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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용식 수필가

남평에 있을 때는 아침 6시쯤 일어납니다. 나만의 루틴으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합니다. 믹서기에 한 컵 분량의 우유나 두유를 붓고 생감자 반쪽, 브로콜리 두 쪽과 양배추 한 줌 정도를 넣어 주스를 만듭니다. 견과류와 매실청을 추가하기도 합니다. 이 주스를 마시고 초보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들려주러 텃밭에 갑니다.

올봄, 텃밭에 방울토마토와 고추, 가지와 들깨를 아홉 모종씩 심었습니다. 첫 밭농사니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서울과 남평을 오가며 생활하다 보니 텃밭은 며칠만 소홀해도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방울토마토의 왕성한 번식력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간격을 너무 좁게 심다 보니 자기들끼리는 물론 옆의 고춧대까지 넘어 들어왔습니다. 그 기에 눌린 고추는 언제나 클는지 손주 녀석 것보다 더 작았습니다. 풀은 또 왜 그리 잘 자라는지 돌아서면 커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뒤늦게 지지대를 꽂아 방울토마토의 가지 일부를 쳐내고 고추와 가지를 가지런히 묶었습니다. 
 
아침 작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한 움큼의 방울토마토와 가지를 따 가지고 옵니다. 방울토마토 십여 개와 가지 한 개, 양파 반쪽, 마늘씨 서너 개를 잘게 썰어 냄비에 넣고 데칩니다. 올리브유를 뿌려 골고루 익도록 잘 저어 줍니다. 먹기 전 발사믹 식초도 뿌립니다.
 
컵에 달걀을 깨 넣고 새우젓을 살짝 얹은 후 전자자에 넣어 반숙을 만듭니다. 여기에 사과 반쪽을 깎아 치즈와 함께 먹습니다. 치즈의 느끼함을 사과의 상큼함이 잡아주어 식감이 아주 좋습니다. 남평에 혼자 내려와 있을 때 하는 나만의 아침 식사입니다. U-Tube의 다양한 볼거리도 아침 메뉴에 포함되어야겠네요. 이 느긋함과 여유가 혼자 지내고 싶은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밥은 하지 않습니다. 국거리가 있을 때는 발아 현미 햇반을 데워 먹고, 밑반찬에 간단히 먹을 때는 누룽지로 대신합니다.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자주 해 먹습니다. 먼저 다시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우려냅니다. 끓고 있는 동안 묵은김치를 적당히 썰어놓고 돼지고기 비계 부분을 오려냅니다. 비계가 있어야 맛이 있다고들 하는데 전 그 하얀 기름기가 싫습니다.
 
양파 반 개와 생강 조금 하고 마늘 다섯 개 정도를 얇게 썰어놓습니다. 대파와 고추도 준비합니다. 충분히 끓은 냄비에 멸치와 다시마를 걷어 내고 배추김치와 돼지고기를 넣고 다시 뭉근하게 끓입니다.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준비해 둔 양념들을 넣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추장과 새우젓으로 간을 봅니다. 먹기 전에 후추와 참기름을 뿌려주면 화려하고 산뜻한 맛은 아니더라도 은근해서 제 입맛에 딱 맞습니다. 내가 제일 자신 있게 하는 메뉴입니다.
 
콩나물 김칫국과 참치 찌개, 고등어구이와 조기구이도 가끔 제 밥상에 올려놓습니다. 유튜브 검색만 하면 수도 없는 레시피가 있다는데 저는 보지 않습니다. 아내의 주방 어깨너머로 보았던 기억에 내 상상력을 더하는 게 훨씬 재미가 있기 때문이죠.
 
이곳 남평에는 매운탕이나 육회비빔밥, 국밥이나 장어구이 집 등 먹거리가 다양합니다. 밥 챙겨 먹기 귀찮을 때나 친구들이 놀러 올 때, 직원들과 회식이 있거나 수도원 신부님 식사대접할 때 골라서 갈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소주도 한 잔씩 곁들입니다. 그 여유와 느긋함이 좋기 때문입니다.
 
혼자 지내며 직접 식사를 해결하려다 보니 하루 세끼가 너무 빨리 온다는 것입니다. 두 끼만 먹으면 되지 않겠냐고 하실 수 있으나 오랜 습관 탓인지 꼭 챙겨 먹어야 속이 든든합니다. 오늘 점심은? 또 저녁은 뭘 해서 먹지? 주부들은 한 달도 아니고 평생을 그런 고민을 하면서 보냈을 텐데 남편의 직장생활만큼이나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나이 들어가는 남자 중에는 음식을 직접 조리하고 싶은 로망도 있는 것 같습니다. 휴일에는 자기 솜씨로 가족 식사를 준비한다는 사람 있다는 얘기를 들었으니까요. 나도 몇 차례 아내에게 제안을 해 봤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했습니다. 어설픈 모습이 답답했거나 주방권만은 지키겠다는 주부의 자존심인지는 모르지만요. 남평에서 그 원풀이를 실컷 하고 있습니다.
 
음식 준비를 하는 것도 상당히 창조적인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각각의 재료가 만나면 어떤 맛이 날까 하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깁니다. 마트에 식재료를 사러 가면 그런 상상을 하며 물건을 고릅니다.
 
서울에서 친구나 후배들을 만나면 가끔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밥은 어떻게 해 먹냐’고. 저는 지금 잘 먹고 잘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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