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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을 대신했던 나주 남평南平역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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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3호] 승인 2023.04.24  01: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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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채석 작가
생각해 보시라, 송이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산골의 밤풍경. 톱밥이 난로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는 장면. 성에가 잔뜩 낀 유리창의 모습 등 모두가 가슴에 담은 기억 하나와 같이 수수하고 아련한 슬픔이 함께 하기에 더 아름다운 것이다. 슬픔은 즐거움이 아니다. 아픔이다. 잃어버린 상실의 아픔, 가슴에 자리한 지독한 상처의 아픔이 없다면 아름다움은 없다.
 
그러한 아픔은 누구나가 지닌 시대의 아픔으로 그 아픔과 함께 하려다가 퇴학을 당한 가난한 대학생, 막상 출감은 했으나 오라는 것도 갈 곳도 없는 중년 사내, 돈을 훔쳐 달아난 사람을 찾아왔다가 되레 돈을 쥐어주고 떠나는 서울 여자 등의 아픔은 시골 간이역의 대합실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주변에 흔하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우리가 주변의 아픔을 알려고 하지 않고 함께 하려고 하지 않는 것뿐이다.
 
완행열차, 막차, 간이역, 대합실, 밤에 내리는 송이 눈과 같은 슬픔의 정서는 지금의 KTX와 같이 초고속 열차가 달리는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정서다. 바로 아날로그적 정서가 주는 따뜻함은 금세 톱밥 난로의 따뜻함으로 이어진다. 흔한 말로 없고 힘들었지만 이웃 간에 서로의 정을 나누던 때를 그리워하는 것과 통한다. 달리 이때 휴대전화기가 있었다면 톱밥 난로 주변은 사람만 있되 저마다의 사연은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동안 사평역을 대신했던 남평역은 남평에서도 외진 화순의 앵남으로 가는 길의 주변에 옛 모습 그대로 역사는 보존되어 있으나 폐역이 되었고,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역의 이웃에는 역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은 교회가 홀로 우뚝하고 역 앞에는 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의 이름 ‘메밀꽃 국시’ 집이 있었으나 도로 확장공사로 사라졌다. 이뿐이랴, 남평초등학교 광촌분교도 폐교가 되었다.
 
여름이면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는 사라지고 새들이 떠난 숲과 같이 조용하기만 하다. 그래도 독서하는 소녀상 주변으로 개망초가 가득하다. 시골 어디인들 폐교나 폐역은 늘어날 뿐이다. 씁쓸하다. 달리 가을이면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있는데 사유지의 은행나무 길이다. 입장은 유료다. 다만 남평에서 내가 자주 가는 곳은 남평역에서 6km 남짓에 있는 드들강의 솔밭이다.
 
다행인지 이곳 솔밭에는 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를 작곡한 안성현의 노래비가 있다. 안성현은 박기동의 시 ‘부용산’을 노래로 만들어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리기도 했다. 안성현은 남평읍 동사리 217번지에서 출생한 사람이나 어떤 연유인지 월북했다. 그래도 “반짝이는 금모래 빛/뒷문 밖에는/갈잎의 노래”는 드들이 처녀의 슬픈 사연과 함께 엄마와 누나도 함께 “강변 살자”며 오늘도 흐르고 있다. 
 
흐르고 있는 드들강변에 카페 ‘강물 위에 쓴 시’가 있다. 서울 인사동 거리의 간판처럼 다분히 시적이다. 이 카페의 쥔장은 〈드들강 1~4〉과 〈강물 위에 쓴 시 1~3〉, 〈송정리 1~8〉을 연작으로 쓴 홍관희 시인이다. 시인의 자신의 시 〈남평역〉에서 *각주에 “한때 남평역이 이 작품(사평역에서)의 배경 역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라고 했다.
 
걸어가 닿을 수는 없어도 닿고 싶은
땅과 하늘이 만나는 
아득한 그 지점을 지평선이라 부른다면
누구나 가슴속에 지평선 한 줄 정도는 
그어 놓고 살아가는 셈이다
한 시인의 따뜻한 마법이 작동 중인
눈 내리는 간이역에서
오지 않는 열차를 기다려 본 사람들은 
지평선을 그은 자리에 사평역사를 세우기도 한다
역장도 없고 매표소도 사라졌지만
기억을 지우지 못한 바람이 스렁스렁 드나드는 남평역
소풍처럼 잠 못 들며 사평역행 열차를 탄 사람들이
열차가 서지 않는 남평역에 도착해 자동차에서 내리면
사평역과 남평역이 하나의 지평선으로 줌인zoom in 된다
 
(홍관희 시 〈남평역〉 -사평역행 열차를 탄 사람이 남평역에서 내리다 전문)
 
각주를 이어서 “출신 지역과 관계없이 어떤 사람들은 지금도 남평역을 이 작품의 배경 역으로 믿고 싶어 한다는 걸 남평에 살면서 알게 되었다. 나에게도 남평역은 여전히 육신이 가 닿을 수 있는 유일한 사평역이다.”라고 홍관희 시인은 내면을 드러낸다. 그렇다. 열차도 서지 않는 남평역은 자동차를 이동 수단으로 가보아야 만날 수 있는 역의 신세이지만, 이제는 사평역이어도 좋고 남평역이어도 좋다. 
 
다만, 톱밥 난로 주변을 에워싸듯 둘러앉아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따뜻한 모습으로 오래오래 기억하는 그런 역이었으면 좋겠다. 남평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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