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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성북동 산정마을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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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호] 승인 2023.04.09  21: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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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전통방식으로 음식만들기 배우려는 만들평야

주민들 모여 꽃길 가꾸고 ‘이화에 월백하고’ 정 나누는 산정마을
멜론과 한라봉 첫 재배 시작한 이영길 씨, 동신대 생기고 이사 와
 
   
▲ 배꽃과 복숭아꽃이 한창인 산정마을 전경.
 
들녘마다 꽃들이 한창이다. 배꽃향이 그윽한 과수원에 주민들이 모여 잔치를 벌인다. 젊은 사람들은 고기를 구워 어르신들과 함께 음식을 나눈다. 옛 시조의 ‘이화에 월백하고’가 눈앞에 펼쳐진다. 마을 앞 화단에 철쭉을 심느라 호미며 삽을 들고 주민들이 하나 둘 모인다. 전날에는 꽃을 심었다. 4월 초 성북동 산정마을 풍경이다. 
 
“어르신들이 익혀 오신 전통방식으로 김치며 막걸리, 청국장 만드는 비법을 전수받고 싶었는데 해마다 한분씩 돌아가시는 것이 안타깝다”는 김희경(62세) 씨는 “우리 세대가 제대로 이어받지 못하면 끊기고 말 것이라는 긴장감으로 힘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 씨는 지난 2019년 마을에서 나는 한라봉과 배 등 특산품 판매와 민박 등을 연계한 마을기업 ‘만들평야’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만들평야는 마을 주민 19명이 참여해 전통과 자연의 힘으로 치유를 꿈꾼다.
 
설 선물로 첫손에 꼽히는 한라봉이 처음 재배된 곳이 산정마을이다. 이영길(82세) 씨가 주인공이다. 진귀한 과일종자 수집이 취미인 이 씨는 “농가소득 증대로 고민하던 1987년 일본의 지인이 보낸 부지화(일본은 데코퐁으로 상표등록) 가지를 유자나무에 접목해서 탄생한 것이 한라봉”이란다.
 
   
▲ 산정마을 주민들이 지난 3일 마을 앞 화단에 꽃을 심고 있다.
 
지금도 1천여 평의 농장을 직접 농사짓는 이 씨는 “1kg에 육박하는 한라봉을 재배하기도 했다”며 집 안에 걸려 있는 사진을 보여준다. 이 씨는 “일본산 종자로 일본보다 더 맛나고 우수한 머스크멜론을 만들기도 했다”며 “일본에서는 멜론 이파리 하나하나의 날짜를 기록해 수확날짜를 정하는데 반해 우리는 획일적으로 수확해 판매하기 때문에 당도 등 품질관리가 엉터리가 됐다”고 아쉬움을 나타낸다. 이 씨는 태어나 살던 집이 동신대학교 부지로 포함되던 1986년 산정마을로 이사했다. 
 
산정마을이 고향인 장치민(64세) 씨는 “또랑에 모를 심어도 먹고산다고 해서 또랑샛거리라고도 불렸다”며 “장성천이 흐르는 마을 앞 너른 만들평야가 비옥해서 농사가 잘 됐다”고 한다. 송월동장으로 정년퇴직한 장 씨는 “평생 산정마을에 주소를 두고 있다”고 덧붙인다.
 
함평군 월야면이 고향인 정현희(74세) 씨는 “1973년 결혼하면서 인접한 송촌마을로 들어와 살다 산정마을의 과수원을 사서 농사지었다”며 “3형제 키워 낸 1,500평 배농사 짓다 골병만 들고, 그마저도 힘에 부쳐 2005년에 정리했다”고 한다. 정 씨의 장남은 민변 부지부장인 홍현수 변호사다.
 
마을 가운데 위치한 과일포장재 제조회사인 수강뉴텍의 김윤희(48세) 이사는 “남편과 함께 30여년 직장생활을 접고 작년에 회사를 인수해서 들어왔다”며 “마을기업 만들평야의 도시락으로 전 직원이 식사하는 등 마을과 함께 인생2막을 성공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힌다.
 
3백여평의 배 과수원과 비닐하우스 3동에 한라봉과 홍고추, 오이 등을 재배하는 김오영(65세) 씨는 “아이들 키우느라 성북동과 송월동에서 살다 고향으로 들어온 지 2년 됐다”며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니 탯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김 씨의 배과수원은 작년부터 마을 주민들이 ‘이화에 월백하고’ 잔치를 여는 곳이기도 하다.
 
   
▲ 수강뉴텍에서 생산한 과일포장재로 산정마을에서 처음 재배하기 시작한 한라봉을 포장해 놓고 있다.
 
광주광역시 하남공단에 납품하는 플라스틱 원료 유통업을 하는 김태진(54세) 씨는 “어르신들 병원에 모시고 다니기도 하고 마을행사에도 함께 한다”며 “사무실 앞이 삭막해 각종 화초와 나무를 기르며 주민들과 더 가까워졌다”고 한다. 김 씨는 광산구가 고향이다.
 
“땅이 있어 그 전부터 왔다갔다 지내다 2015년 광주생활을 정리하고 들어왔다”는 최경숙(64세) 씨는 “노년을 여유롭게 살려고 했는데 노는 땅을 바라볼 수만 없어 이것저것 심고 가꾸다 보니 허리고 다리고 안 아픈 데가 없다“며 비가 내리는 가운데 창문청소에 여념이 없다.
 
국도13호선 건너 청암마을이 고향인 조순자(84세) 씨는 “보리쌀 3되, 쌀 2되, 된장1그릇, 김치 한보시기 받아 살림을 시작했다”며 “결혼하기 전에는 집에서 밥도 한번 제대로 안해 봤는데, 먹고 살기 위해 남의 집 모내기며 논매기며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조 씨는 “살림 늘리고 자식들 키운 것보다 더 큰 재미가 있었겄냐”며 옛 생각이 났는지 눈가를 닦는다.
 
3년째 통장을 맡고 있는 박종범(64세) 씨는 만들평야에 들어선 미나리밭에 뿌려지는 ‘분뇨 수준의 액비’가 지하수를 오염 및 고갈시키고 악취를 유발하고 있어 고민이다. “재작년인가 탱크로리 7대가 들어와서 가 보니 ‘똥물’을 뿌리고 있었다”는 박 통장은 “사업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한밤중에 불법적으로 방류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다.
 
나주의 여느 마을이 그렇듯 선정마을에도 역사 유적이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9년 발간한 ‘나주시 문화유산 종합학술조사보고서’에 ‘동신대학교에서 광주 방면 13번 국도 약 1km 지점 도로 왼쪽’에 고분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석현삼거리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왼편 언덕 부근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삶의 흔적이라는 문서로만 남은 채 제대로 발굴되지 못하고 잊혀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박종범 산정마을 통장 인터뷰

딱한 아이들 사정 접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 돼
 
책상 위의 ‘마음이 따뜻한 사람’ 글귀가 쓰인 대한적십자사의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성북동 산정마을 박종범(64세) 통장은 방송에서 딱한 아이들 사정을 보고 대한적십자사 후원회원이 됐다.
 
“학비가 싼 한별중학교를 다녔다”는 박 통장은 “반듯한 직장이랄 게 없던 시절이라 다들 일자리를 찾아 큰 도시로 떠나야 했다”며 “열아홉살 때부터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경기도 파주에서 포병으로 군복무한 박 통장은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두들겨 맞기를 밥 먹듯 했는가 하면 한겨울에 팬티 차림으로 얼차려받고 언 몸 녹이다 보면 기상시간이 됐다”며 5·18민중항쟁에 대한 잘못된 인식 탓이었다고 한다. “방송으로 광주에 간첩이 나타났다는 정도만 봤을 뿐 자세한 시위상황은 전혀 알지 못했다”는 박 통장은 1979년부터 2년여 동안 부산의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박 통장은 1987년에 취직한 울산의 현대중공업에서 결혼과 직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직장이 있으면 쉽게 결혼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는 박 통장은 형수의 소개로 영산포 출신의 부인을 만나 1990년에 결혼했다. “결혼을 전제로 한 중매라 만난 지 6개월만에 자연스럽게 결혼했다”는 박 통장은 “가족들 먹여 살리는 건 가장인 내가 책임졌고 집사람은 살림과 육아에 전념했다”고 한다.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박 통장은 5년여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2009년 회사 문을 열었다. 91년, 93년생인 두 아들과 함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박 통장은 “60~70%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건설회사는 돌아가지 않는다”며 “열심히 하면 충분히 해볼 만한 직업인데, 젊은 사람들이 힘든 일이라고 기피하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 한다. 박 통장은 “12가지 기술 가진 사람을 빌어먹지만, 제대로 된 기술 하나만 있으면 먹고 살 수 있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한길로 갈 것’을 이야기하는데 잘 따라주고 있다”고 흐뭇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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