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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이 들어와 점령한 후 보도연맹원과 인민군의 관계는 여러 가지고 나타났다. 점령지역에서 보도연맹 간부직에 있었던 사람들은 임미군측에
의하여 처단의 대상이 되었고, 보도연맹에 가입한 전 남로당원들은 정(正)당원으로 등록되지 않았다.
그 반면 보도연맹원들도 의용군에 끌려갔다. 7월 6일에 내려온 당의 결정 「의용군 초모(招募)사업에 대하여」에서는 ① 18세 이상의
청년으로 하되 빈농과 청년을 많이 끌어들이고, ② 각도 할당액을 채우고 전 남로당원으로 변절자(보도연맹 가입자)도 의무적으로 참가시키라고
지시하였다.
인민군이 들어온 후 광주에서는 보도연맹에 가입하였던 국기열, 강석봉, 이기홍 등 10여 명이 형무소에 수감되었는데, 이것은 광주에서
사회주의자 사이의 오랜 파쟁싸움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보도연맹 가입자 중 인민군 점령지역에서 활동한 사람도 꽤 있었을 것이지만, 이것은 전체 보도연맹 가입자 수에 비하면 미미하였다.
활동 이유에 대해서도 이승만 정권의 보도연맹원 학살에 대한 보복대응이라는 점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고, 보도연맹원 학살을 지켜본 사람들로서
한국정부 밑에 살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라는 점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정지용, 김기림 등이 할 수 없이 월북한 것은 이승만 정권에 대한 환멸이 주요 요인이었을 것이다. 처음 전쟁이 났을 때 보도연맹원들한테서는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오제도, 선우종원(鮮于宗源)과 함께 사상검사로서 보도연맹 창설과 서울지구 보도연맹 운용에 핵심 멤버로 관여하였던 정희택(鄭喜澤)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6·25가 터지자 나는 서울의 보련맹원(保聯盟員)들을 각 구별로 집합시켜 그들의 동태를 장악했어. 이들을 시켜 서울로 쏟아져 들어오는
피난민 안내, 구호사업, 포스터 첨부 등의 일을 했지. 일부 시민이 피난을 떠나고 행정도 마비돼갔지만, 1만 6,800명의 보련은 일사불란하게
상부명령에 따라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
정희택은 수복 후 군·검·경합동수사본부 심사실장으로 부역자들을 다루었는데, 보도연맹원이나 서대문형무소 안에 있던 대부분의 좌익범들 중에
부역자들이 적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공산측한테 배척받았으며, 낙오된 군경이나 그 가족을 숨겨준 일이 많았다고 회고하였다.
보도연맹원 및 경찰감시 대상자 학살은 전국적 차원에서 일정한 시간대에 맞추어 일어났다. 이것은 장관급 이상의 정부 고위 관계자의 지시에
의하여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예비소집이 있었고, 얼마 후 학살이 자행된 것은 일제가 패배에 임박하여 사상범이나 요시찰 인물을 학살하려 계획하였던 것과 행태가 비슷하다.
종전이 임박하여 일제는 한반도에 전선이 형성될 것에 대비하여 비상사태에 따른 조치를 마련하였는데, 그 골자는 연합군이 상륙하면 공산주의,
민족주의 요시찰인들을 예비검속하고, 전선이 경찰서에 가까워지면 예비검속자를 후방으로 옮기고, 그럴 여유가 없으면 적당한 방법으로 처치하라고 한
것으로, 전국의 경찰서장에게 암호문으로 지시되었다.
이승만 정권의 경찰간부는 대부분이 친일파였다. 보도연맹원 및 경찰감시 대상자의 학살 지시는 대개가 이들 친일경찰의 손을 통하여 하부로
내려갔고 또 집행되었다.
많은 경찰간부들이 자신들에게 내려온 지시가 일제 말에 알았거나 들었던 것과 같은 성격의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을까.
보도연맹원 및 경찰감시 대상자의 집단학살은 대부분이 경찰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만약 장관급에서 지시가 내려갔다면 국방부장관보다는
내무부장관 쪽이거나 그보다 상급 수준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놓다.
이승만 대통령과 내무부장관 조병옥의 지시였다는 주장이 있지만, 조병옥이 어떠한 방식으로 관련되었는가는 더 논의되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1950년 7월 17일 내무부장관으로 취임하기 이전에도 경기도 남부지역과 충북지역에서는 규모가 큰 것이 아니더라도 집단학살이
있었다.
따라서 조병옥이 내무부장관에 취임한 후 보도연맹원 및 경찰감시 대상자 집단학살을 더 철저히 하라고 지시하였을 수는 있으나, 최초의 지시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보도연맹원 및 경찰감시 대상자 학살이 최초에 있었던 7월 1일을 전후한 시기는 미군정기 이래 이승만 한 사람에게 절대 충성을 바쳐왔던 승려
출신의 백성욱(白性郁)이 내무부장관이었다.
보도연맹원 및 경찰감시 대상자 학살지시에 관한 아주 중요한 자료가 최근에 세 가지가 나왔다. 그중에 하나는 치안국과 관련된다.
1950년 6월 25일에 치안국장이 「전국 요시찰인 단속 및 전국 형무소 경비의 건」을, 6월 29일에 「불술분자 구속의 건」을, 6월
30일에 「불순분자 구속처리의 건」 등의 ‘치안국통첩’을 각도 경찰국에 하달하여 보도연맹원이나 요시찰 인물들을 예비검속하고 구속하였다.
6월 29일과 30일의 치안국통첩이 문제인데, 보도연맹원 학살지시와 같은 중대한 사항이 치안국장 손에서 나왔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자료는 재미동포 이도영이 미 국립문서보관서에서 찾아낸 문서이다. 이 문서를 작성한 주한미대사관 육국무관 에드워즈 중령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대전형무소 재소자 1,800명에 대한 처형명령이 의심할 바 없이 ‘최고위층’에서 내려졌다고 단언하였다.
형무소 사상범 학살과 보도연맹원 및 경찰감시 대상자 집단학살은 같은 이유로 같은 시기에 저질러졌다는 점에서 동일인이 처형 명령을 내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경기도 이천과 안성 등에서 보도연맹원 및 경찰감시 대상자 학살이 자행된 것은 7월 1일경이었다.
또 대덕군 산내면 낭월리 골령골에서 대전형무소 재소자들을 처형하기 위해 구덩이를 판 날짜가 7월 2일경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월
29일과 30일의 치안국통첩은 최고위층의 지시와 관련하여 작성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전 해군준장 남상휘의 증언도 중요한 것을 시사한다. 그는 1950년 7월 초 손원일 해군참모총장 명의로 포항경비사령부에 좌익분자를
처형하라는 명령서가 하달되었던바, 이 명령은 신성모 국방부장관이 육군참모총장과 해군참모총장에게 각각 내린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그는 또 경찰의 명령은 조병옥 내무부장관이 김병완(金炳玩) 치안국장을 통해 각 도경국장에게 하달되었다고 말하였다. 경찰의 명령을 조병옥이
내렸다고 말한 것은 경남북에서 보도연맹원 및 경찰감시 대상자를 학살하였을 때, 주로 조병옥이 내무부장관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보도연맹원 및 경찰감시 대상자 집단학살은 주로 경찰이 맡았고 형무소 재소자 학살은 군이 주로 관계하였다.
남상휘의 증언이 정확하다면, 보도연맹원 및 경찰감시 대상자와 형무소 재소자 학살명령은 내무부장관과 국방부장관이 내린 것으로, 법무부장관 등
관계 장관이 묵인 또는 협조하였다.
따라서 내무부장관, 국방부장관이 포함된 자리에서 ‘결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차안국통첩 등은 이러한 결정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보도연맹원 및 경찰감시 대상자 학살은 성격을 비교해볼 때 전쟁이 일어난 지 3일 후인 6월 28일 -이 날짜와 관련해서는 뒤에서 분석할
것이다- 에 피난수도 대전에서 발동된 이승만 대통령의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과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 특별조치령은 또한 날짜와 성격면에서 6월 29일자, 6월 30일자 ‘치안국통첩’과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