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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을 대신했던 나주 남평南平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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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호] 승인 2023.03.26  22: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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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투데이는 이번 호부터 ‘간이역에서 만난 문학작품’란을 신설하여 김채석 작가의 문학기행문인 '간이역' 시리즈를 연재한다. 그 첫 번째 작품으로 김채석 작가의 '사평역을 대신했던 남평역'을 선보인다. 작가의 간이역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은 오래전 앨범 속에 끼워둔 한 장의 단풍잎을 꺼내 어루만지듯 소박하지만,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 시절로 빠져드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김채석 작가는 2010년 '문학광장'에 수필로 등단했으며 저서로 '다시, 바람이 만난 풍경' 등 세 권의 저서가 있고 지금은 기행 작가로 활동 중이다. ▶편집자주

 
   
▲ 김채석 작가
줄곧 부산에 살면서 남평이 화순에 속한 줄만 알았던 나는, 다시 광주에 와서야 나주시 남평읍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러한 남평에는 지석천이 흐른다. 지석천은 화순군 이양면 증리 계당산의 남서쪽 계곡에서 발원해 서쪽으로 흘러 나주시 금천면에서 영산강과 합류하는 천으로 길이는 55km에 이른다. 증리 계당산은 철감선사 부도로 이름하는 쌍봉사의 동쪽 2.5km에 위치하며 해발 581.6m의 낮은 산이다.
 
이렇게 시작된 지석천은 이양과 청풍면의 경계를 흐르면서 예성강이라는 이름으로, 남평에 이르러서는 드들강으로 불린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옛적에 홍수 피해가 심해 둑을 쌓고 보를 만들어도 자연의 힘이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 둑이 터지자 '드들'이란 처녀를 제물로 바쳐 둑 속에 묻고 보를 만들었다고 하는 슬픈 이야기로 인해 후세의 사람들이 이 강을 '드들강'이라 부른다 한다.  
 
남평(南平)이라는 지명은 남쪽에 평평한 곳으로 달리 농지가 넓어 풍요로운 고장으로 여겨진다. 남도에는 예로부터 ‘삼성, 삼평’이라 불리는 고장이 있다. 삼성은 곡성, 장성, 보성을 이름하고, 삼평은 창평, 남평, 함평을 이름한다. 삼성은 산지가 많지만, 삼평은 들이 많다. 그러나 공통점은 기질이 드세고 강해 강점기 일본에 저항이 심했다. 그 역사 이전에는 의병장도 많이 배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남평은 지금은 예전에 역이 있었다는 표지석으로나 기억하는 남광주역에서 승객과 봇짐을 가득 싣고 효천을 지나면 다음이 남평역이다. 남평역은 옛 모습 그대로 역사는 보존되어 있으나 폐역이 되었고,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또한 어찌 되었는지는 잘 모르나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의 배경으로 알려져 왔다. 실지 시의 배경을 추론해 보자면 〈대인동 부르스〉 등 곽재구 시인의 시적 고향인 남광주역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는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딱 꼬집어 남평역은 사평역을 대신하지 않는다. 다만 가상의 역 이름일 뿐이다. 실지 사평은 모래 사沙에 평평할 평坪으로 전남 순천의 백제시대 때 이름이고,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길 이름이 사평길이다. 이곳은 한강 변 모래벌로 이루어져 있어 한자명 사평리沙坪里로 표기한 데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주막이 있고 시장이 섰다. 또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첫새벽에 도성을 빠져나와 이곳에서 죽으로 요기했다 전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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