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동기 장묘문화인 고인돌 뒤로 신촌리 고분이 있다.

 

반남면은 고분의 고장이다. 고분의 주인공들은 기원 전 3세기부터 6세기 중엽까지 800여년 동안 영산강 유역에서 독자적인 세력과 문화를 유지하며 동아시아 해상교류의 중심 역할을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유물이 신촌리 9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이다. 1997년 국보 제295호로 지정된 금동관은 백제와 구분되는 고대국가 마한의 존재를 증명한다. 

 

하지만 신촌리 성내마을엔 그보다 앞선 청동기인들의 장묘문화인 고인돌이 있다. 반남면에서 유일하게 기원전 1,500~1,000년대에 형성된 청동기인들이 살았던 터전임을 알려준다. 고분보다 앞선 시간의 역사를 지녔음에도 ‘2천년의 시간여행’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쉬움을 갖게 한다. 

 

마한왕국 중심세력의 거점이었던 자미산 동북쪽 평야에 위치한 성내마을은 자미산성에 둘러쌓여 있는 마을이라 하여 성내마을이다. 마을의 형상이 흰염소의 모양이라 하여 백양골이라도 했다. 줄여서 뱅굴로도 불린다. 성내마을은 반남면의 행정을 주관하는 ‘현청’과 일제 강점기 수탈의 상징인 금융조합이 있던 곳이다. 그만큼 성내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자미산에 운동하러 다녀오던 나창기(84세) 씨는 “우리 마을은 반남에서 제일 부자마을이고 유교사상이 투철한 양반촌”이라며 “면의 중심지로서 주도권을 갖고 정순규·나용균·나승집 면장과 나도기 부면장, 나도운·나윤 조합장 등을 배출하며 반남 발전을 이끌어 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나 씨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인 독립운동가 정우채의 부친인 정순규 전 면장이 서당을 열어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고 덧붙인다. 반남면 농민회장과 번영회장을 지낸 나 씨는 현재 면 노인회장이다.

 

▲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이 옛이야기를 나누며 밝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정소엽(67세), 임혜숙(64세), 윤귀순(87세), 조복례(80세), 신연례(87세) 씨.

 

23세에 결혼하면서 고향인 영암군을 떠나 65년째 성내마을에 살고 있는 신연례(87세) 씨는 “군산에 사는 막내 딸이 작년에 큰 수술을 한 아버지 병원 모시고 다닌다고 내려와 함께 살고 있다”며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며 식사 챙기는 딸 모습을 보면 좋기도 하지만 제 살림을 못 챙기는 건 맘이 안 좋다”면서 나머지 4남매 자녀들을 자주 못 보는 게 아쉽다고..

 

강진군 성전면이 고향이라 ‘강진댁’으로 불리는 윤귀순(87세) 씨는 “열아홉살에 언니 소개로 6·25 참전 상이군인인 신랑을 만나 이제껏 농사만 짓고 살았다”며 “농한기 때 집에서 이녁 나락 담을 가마니 짜고 보통 때는 반남장에, 큰 일 있을 때는 영산포장으로 가서 물건을 샀다”고 회상한다. 1980년대 후반까지 5일마다 열리던 반남장은 사라졌다. 산업화 바람에 면의 인구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5일장도 흔적을 잃었다. 70가구가 넘던 성내마을도 30가구만 남았다.

 

성내마을에서 나서 한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는 나종삼(57세) 씨는 “지난 20여년동안 운수업을 하면서 팔도를 돌아다니며 살았다”며 “고분이 발굴된 동산은 친구들이랑 손야구하며 놀던 놀이터였다”고 회상한다. 100여마지기 농사와 함께 한우를 키우고 있는 나 씨의 아들 혁수(20세) 군은 “군입대를 앞두고 부모님을 돕고 있다”며 “군복무를 마치고 나서 취업을 나갈지 고향에 살지 생각하기로 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또 딸 낳았다네’ 하고 걱정스레 이야기했지만, 신랑은 네 딸을 모두 좋아하기만 했다”는 조복례(80세) 씨는 “한 때 20마지기 농사를 지었지만 지금은 포도시 먹고 살 논 4마지기만 남았다”고 한다. 딸 넷이 모두 하나같이 잘 살고 있지만,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고 장학금 받아 미국에 유학한 뒤 전남대 영문과 교수로 있는 둘째 딸 나윤희(49세) 씨 자랑에 얼굴빛이 밝아진다. 영암군이 고향인 조 씨는 마을 어른들이 왜 ‘동림댁’이라 불렀는지 지금도 모르겠다고 한다. 

 

▲ 마르지 않는 쪽박시암에 물을 뜨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멜론 농사를 짓던 하우스가 박물관 자리로 수용되기 전까지 꽈리고추며 상추, 토마토, 오이 , 콩 팥 등 안 해본 농사가 없다”며 “박물관이 들어왔지만 관광객이 ‘지나가는’데 그치고 있다”는 정소엽(67세) 씨는 1979년 결혼해 성내마을로 들어왔다. 정 씨는 “고향 해남은 바닷가라 먹을 게 천지였는데, 이곳은 ‘갈쿠나무’(솔잎 등을 갈퀴로 모아 땔감으로 사용한 데서 이름붙여짐)도 없어 살 길이 막막했다”며 옛 일을 떠올린다.

 

해남군 옥천면이 고향인 임혜숙(64세) 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던 1984년 이모의 소개로 결혼했다. “신혼 때 신랑이 ‘살다 힘들면 나가서 살자’고 했는데, 살다 보니 나갈 생각도 못했다”는 임 씨는 “결혼식은 서울 종로 5가에서 겁나 크게 했다”며 큰 아들이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함께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다. 작은 아들은 경기도에서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마을 뒤 언덕에 신촌리 고분 4, 5, 6호가 있고 청송로를 경계로 큰말(마을)과 작은말로 불리는 성내마을엔 지금도 물이 마르지 않아 사람들이 물을 뜨러 오는 쪽박시암이 있다. 

 

 

 

“경기도 광주에서 옷가게 할 때 단골로 찾던 집사람을 만난 지 일주일 만에 이라크로 일하러 가는 바람에 편지로 사랑을 키웠다”는 김영문(73세) 이장은 “이라크에서 일하는 이야기며 직장 동료들과 바닷가로 여행가서 낙지랑 가오리 잡던 이야기 등을 매주 편지에 담아 보냈다”고 한다. 1년2개월만에 이라크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 결혼했다.

 

김 이장은 이라크에 가기 전에 사우디 건설현장에서 3년여 일했다. “무더운 사막지역이지만 현장이 고지대에 있어 날씨로 인한 어려움은 크지 않았다”는 김 이장은 “식자재 공급과 도시락 배달하는 차량 운전업무라 비교적 편하게 일했다”며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는 당시 국내에서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 이장은 “주말이면 인근 지역으로 여행까지 다닐 수 있었다”며 “뙤약볕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운이 좋았다”고 덧붙인다.

 

반남초등학교와 신북중학교를 마치고 광주의 아시아자동차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운전면허를 취득한 김 이장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발령을 기다리던 중 중동에서 일하면 국내보다 월급이 5배나 많다는 소식에 해외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라크에서 돌아와 서울에서 시내버스 기사로 근무하다 전 직장과의 인연으로 1년2개월 싱가폴 현장에 다녀온 김 이장은 “1993년부터 광주시 서구청에서 근무하다 2010년 정년퇴직해서 공무원 연금을 받고 있다”며 “부모님이 남겨준 집과 땅이 있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5남매 자녀 중 큰 아들만 서울에 살고 4남매는 광주와 나주에 살고 있다. 둘째 아들이 선물한 승용차로 마을 일을 하는 재미에 절로 신이 난다는 김 이장의 뒷모습이 가벼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