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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이 무너진 나주시
이철웅 편집국장  |  njt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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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호] 승인 2023.03.13  06: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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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웅 편집국장

이웅범 농업진흥재단 부이사장 선임을 두고 나주 관내 SNS가 한동안 뜨거웠다. 이 씨의 부이사장 임명 논란을 접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얼마 전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지 28시간 만에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다. 정 변호사가 자진해 사퇴한 것을 제외하고는 두 사람의 임명 과정이 닮아도 너무 닮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정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임명과 관련한 경향신문 정제혁 기자의 2월 27일자 칼럼 ‘기본이 무너진 나라’ 일부를 소개한다. 
 
“지난해 여름이었으니 6개월쯤 전 일이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 변호사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정순신 변호사가 차기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유력하다는 것이었다. 검사 출신이 한창 이 자리 저 자리 꿰차던 때인지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싶으면서도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기 국수본부장 인선을 6개월이나 앞둔 때였는데 벌써 후임자를 낙점했다는 게 상식적이지 않았다. 또 아무리 검찰 정권이라도 그렇지, 검사 출신을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자리에 내리꽂는 무리수를 두겠는가 싶었다. 더구나 정 변호사는 한동훈·조상준·이복현 등 다른 ‘윤석열 사단’ 검사들처럼 수사력이 특출난 편도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하도 검사 출신을 요직에 발탁하다 보니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오는구나 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지난 1월 정 변호사가 국수본부장 공모에 지원하는 것을 보고 지난여름에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경찰 출신인 다른 지원자 2명은 언뜻 보기에도 약체였다. 윤 대통령은 정말로 오래전부터 다 계획이 있었구나 생각했다. 요식에 불과한 심사를 거쳐 지난 24일 정 변호사는 국수본부장에 임명됐고, 25일 물러났다.”
 
이번에 농업진흥재단 부이사장으로 임명된 이웅범 씨도 지난해 지방선거가 끝나고서부터 무슨 무슨 재단 부이사장으로 갈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본인도 공공연하게 그런 말을 하고 다녔고, 시중에는 공공연한 비밀로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민주당 시장 후보였던 이웅범씨를 비롯한 인사 몇이 윤병태 후보와 합치면서 윤 후보가 당선되면 모종의 자리를 약속받았다는, 설이 지역정치판에 나돌았지만 설마 했다. 
 
그러나 정 변호사처럼 이웅범 씨도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이 씨가 농업진흥재단 부이사장 공모에 지원한 것을 보고 시중에 떠돌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다른 지원자 4명은 들러리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윤 시장의 논공행상 일환으로 다 계획된 일이었구나, 생각됐다. 
 
선임 과정에서 벌어진 헤프닝은 모두 아는 바로 요식에 불과한 심사를 거쳐 이웅범 씨는 7천여만 원의 고액 연봉을 받는 농업진흥재단 부이사장에 임명됐다. ‘기본이 무너진 나주시’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처음부터 특정인을 앉히려고 마음먹은 인사였으니 검증인들 제대로 했을 리 만무하다.
 
이 씨의 적격성 여부는 여기서 따지지 않겠다. 절차상 법적 하자가 없기에 임명했다고 본다. 
 
문제는 윤 시장 곁에 똬리를 틀고 앉아 ‘한자리’씩 노리고 있는 ‘향원’(鄕愿)의 무리다. 앞으로도 이웅범 씨 같은 ‘짜고 친 고스톱’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나주판 향원’의 발호가 심히 우려되는 것은 지나친 기우(杞憂)일까. 비선실세에 이은 향원의 발호….
 
공자는 향원을 “덕을 해치는 자”라고 잘라 말했다. 왜 그런지에 관해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맹자는 명확하게 정의했다. “향원은 충실한 듯, 청렴한 듯하기에 군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사이비’라는 것이다. 그냥 사이비가 아니라 진짜에 해를 입히는 악성 소인배”라고 했다. 
 
언뜻 보면 삼갈 줄 알고 행실이 도타워서 누구에게나 좋은 평판을 듣는다. 하지만 이는 본색을 감춘 채 그러한 척한 것에 불과하니, 한마디로 “삿된 욕망을 숨기고 세상에 아첨하는 자”라는 것이다. 
 
공자와 맹자 모두 향원의 정체를 신랄하게 헤집었다. 맹자 이후로도 향원에 대한 경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향원은 사이비의 탈을 쓰고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지역사회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향원’의 무리가 민선 8기 시작과 함께 급부상하고 있다. 학연, 지역, 출신, 공신록에 얽매이지 않고 널리 인재를 구해 쓴 사람이 실패했다는 역사 기록을 본 적이 없다. 특히 향원과 함께한 권력은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인사 구상을 하면서 오랜 측근 케네스 오도넬한테 이렇게 말했다. 
 
"나 같은 하버드 출신이나 당신처럼 아일랜드 이민자에다 가톨릭 신자 말고 좀 다른 사람을 찾아봐." 피아 가리지 않는 골고루 인사가 최선은 아니지만, 새로운 정부를 운영하면서 부딪치게 될 역풍을 최소화하려면 안배의 지혜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한 말로 사료 된다. 
 
한때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 한 것도 적합하지 않은 인물의 장관 기용이나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논란 등이 불러일으킨 부적절한 인사 때문이었다. 백리(百里)의 마을을 다스리려 해도 인물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민선이라는 메커니즘 상 어느 정도의 내 사람 챙기기는 이제는 상식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꼭 써야 하는 인재, 쓸 만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한낮에 이슬을 구하는 만큼이나 어려울 수 있다. 사심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인사를 한다 해도 만인이 수긍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쉽지 않은 마당에 논공행상식 나눠 먹기 임용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윤병태 시정이 이 씨의 부이사장 선임을 놓고 흔들리고 있다. 
 
새 시정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인사를 발탁했다는 견해 보다는 선거 공신을 무차별적으로 챙긴다는 비난이 더 앞선다. ‘도둑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고 인사엔 명분이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 중에서 왜 하필 그 사람을 골랐느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롭게 부상한 ‘나주판 향원’과 이들에 대한 논공행상식 낙하산 임용은 합법을 가장한 사적 채용이라는 비난에서 절대 자유스러울 수 없다. 
 
더 이상의 논공행상식 임용은 가깝게는 윤 시장의 시정 운영 리스크로, 길게는 정치적 리스크로 다가선다. ‘기본이 무너진 나주시’라는 말이 더는 회자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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