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흔산을 둘러싸고 영강동 남부마을이 있다.

 

영강동 남부고분군. 2009년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나주시 문화유산 종합학술조사보고서’에서 본 영강동 남부마을이다. 영산중학교 뒤 신흘산(59m) 북동쪽 구릉에서 삼국시대 장례문화를 보여주는 돌로 만든 관인 석곽 4기가 발견됐다는 곳이다. 보고서의 기록을 따라 찾은 현장에는 대나무와 소나무만 무성할 뿐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마을 주민들도 실체에 대해 들은 바가 없다고 한다. 영산강 유역에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대에 형성된 역사유적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초등학교 앞에서 마트를 하다 최근에 문을 닫은 이정금(86세) 씨는 “결혼하면서 영암군 신북면 고향을 떠나 강 건너 선창가 죽전골목에서 60여년 쌀장사를 해서 자식들 6남매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6년 전에 이곳으로 왔는데 도저히 장사가 안돼 문을 닫았다”며 “금쪽같던 딸아이를 47살 꽃같은 나이에 병으로 먼저 보내고 나니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고 눈시울을 붉힌다. 

 

초·중·고생 37명을 돌보고 있는 지역아동센터 김하정(49세) 시설장은 “학습환경과 센터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보람을 느낀다”며 “학생들 대다수가 다문화와 한부모 가정으로 다른 지역보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친환경 국산 식자재를 이용해 성장기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뜻을 밝힌다.

 

▲ 삼국시대 석곽 4기가 발굴된 실흔산엔 대나무와 소나무만 무성할 뿐, 고분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보일러 대리점을 하기 위해 1996년 고향인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이 마을에 터를 잡은 최완임(69세) 씨는 “처음 올 때만 해도 오가는 사람도 많고 나름 상권이 형성된 ‘짱짱한’ 곳이었는데 갈수록 쇠퇴해가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벌이는 줄더라도 맘 편하게 일하고 싶어 10여년 전부터 본사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대리점을 그만두고 다양한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고 한다. 

 

영강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피아노 학원을 경영하고 있는 김신영(47세) 씨는 “2003년 처음 학원을 열 때보다 80%가량 원생이 줄었다”며 “각 학년에 4개 반이었데 지금은 1개반 20명이 채 되지 않지만 배우려는 학생이 있는 한 이 자리를 지키고자 한다”고 한다.

 

“어르신들이 주변분들의 상태에 대해 당신의 일처럼 관심을 가져 주시고 오며가며 인사해 주시고 안부를 묻는 등 따뜻함을 느낀다”는 연리지재가복지센터 정운(32세) 팀장은 “다른 동 지역에 비해 연로하신 분들도 많고 낙후돼 있어 복지서비스에 대해 전혀 모르시는 분들도 있어 저희의 역할이 절실한 지역으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는 사명감을 밝힌다. 

 

마을 가운데에 있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나주금성교회에 부임하는 남편과 함께 2003년에 마을에 왔다는 김영희(58세) 씨는 “지인들을 만나거나 전화통화할 때면 제 스스로 ‘나주댁’이라고 이야기한다”며 “처음 나주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나주 도심의 어두움이 생소했는데, 지금은 서울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편하고 익숙하다”며 만족감을 나타낸다.

 

강원도 인제군에서 군복무 중이라는 임대현(23세) 씨는 “2017년까지 살던 왕곡면 월천리는 대중교통이 불편했는데 여기는 시내버스가 수시로 지나고 기차역도 인접해 있어 여러모로 편리하지만 젊은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워 안타깝다”며 “다음달 21일이면 복무를 마치고 전역하는데 이후 진로가 고민”이라며 약속장소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 일제 때 영산강 제방을 쌓고 농경지와 배과수원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됐다. 마을 뒤편에 남아있는 배과수원만이 지난 역사를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 영산강에 제방을 쌓고 농경지와 배과수원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된 남부마을은 전반적으로 휑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146세대의 아파트까지 있는 마을이지만 거리의 상가들이 대부분 비어 있기 때문이다. 

 

나주시지에 따르면, 2001년 현재 분식집이 5곳, 서점과 학원이 각 3곳, 미용실 2곳에 주유소와 자동차수리점, 수퍼 등이 있었지만, 현재 남아있는 점포는 미용실과 작은 상점과 피아노학원 1곳 뿐이다. 2001년 마을 뒤로 나주역이 이전해 왔고 2011년에 나주종합스포츠파크가 들어왔다. 마을에 접한 국도13호선 건너편엔 롯데마트가 2011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같은 자료에 769명이던 학생 수가 224명으로 줄어든 영산고의 모습이 남부마을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쉬움을 남긴다.

 

 

 

“땅도 잃고 사람도 잃고 고향이 완전히 사라져부렀어” 

 

남부마을 대덕아파트에 사는 이옥환(73세, 사진) 통장은 금천면 동악리 1구 상야마을이 고향이다. 혁신도시에 수용된 배메산 바로 앞마을이다. 혁신도시가 만들어지고 고향을 잃은 마을 사람들 30여명이 3개월에 한번씩 모임을 가졌다. 코로나로 모임을 갖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되다가 작년에 마지막 여행을 다녀온 뒤 더 이상 모이지 않기로 했다. 죽거나 아프거나 하며 회원들이 줄어든 것이 모임을 갖지 말자고 한 이유다. 큰 아들이 빛가람동으로 이사해서 함께 살자는 것도 거절했다. 빌딩과 아파트가 차지한 빛가람동은 더 이상 상야마을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마을 입구에서 수퍼와 부동산중개소를 하면서 야채유통도 중개했다”는 이 통장은 “봄에는 수박, 여름엔 배추와 무 등을 재배해서 대구며 부산의 대형 야채시장에 출하하느라 날마다 1~200명씩 일하러 와서 덩달아 수퍼도 잘됐다”며 “잘 나갈 때 몸조심해야는디, 기술력이 좋다는 말만 믿고 사업에 손대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고 한다.

 

80년대 말 영암군 신북면 농공단지에 설립한 세라믹 회사에 투자하면서 영산동 백조아파트로 이사해 살다 1991년 신축한 대덕아파트로 왔다. 출퇴근이 편해서였다. 공장을 도맡아야 했던 이 통장은 IMF 경제위기로 인해 욕조와 변기 등 제품 수요가 줄면서 고비를 넘지 못했단다. 다행히 밀린 임금을 지불하고 회사 문을 닫았다.

 

함께 고등학교를 다니던 옆마을 친구의 사촌 동생과 만나 20대 초반에 결혼해 3남매를 두고 있다. 가까운 광주광역시에 살고 있는 3남매와 6명의 손주가 있어 행복하다는 이 통장은 “주변사람들로부터 부러울 것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행복감을 감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