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이한 학예연구직 공무원의 삶이 내 인생에서 펼쳐질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일정은 이미 예견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대학교는 바꾸어도 학과는 못 바꾼다는 의지를 다지고 사학(史學)이라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대학 들어가서는 80년대 시대 상황이 그리하여 나름 한국 사회에 대한 치기 어린 생각으로 공개된 써클에도 들어가 탈춤도 추고 농악을 배우고 마당극을 하고 때에 따라서는 학우들을 이끌고 최루탄의 매운맛을 봐야 했습니다. 학회장도 해보고 함께 모여 금서라 불리는 책들도 읽어보는 일명 의식화의 시간이 나의 20대를 차지하였습니다. 

 

들어간 사학과는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초창기였고 교수님들도 젊은 분들이어서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도 깊었습니다. 복잡한 학교생활 속에서도 한국사반이라는 분반 활동을 나름 하면서 방학 동안에는 이해준 교수님의 지도로 『동문선』 『열려실기술』 『동국여지승람』 등의 많은 책 내용 가운데 전라도 관련 내용을 추려내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더불어 교수님이 정해주신 논문을 복사하여 책으로 만들고 자신이 맡은 논문을 읽고 발표하는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좋은 시간이었으며 많은 자양분을 쌓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불어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의 시·군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용역 받아 유적 한 건 당 A3 용지 한 장에 내용을 기술하고 사진은 칼라 6장, 흑백 3장 슬라이드 3장을 제출하는 작업을 진도, 무안, 해남, 장성 등 전남 서남권 지역을 조사하기 위해 두 발로 남도의 땅을 걸었습니다. 신안군 흑산도 조사도 하고 『00군의문화유적』 이란 좀 더 자세한 지표조사보고서 작업도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때 나주 관련 정리는 제가 맡아서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장성군 조사를 할 때 개인 자가용이 흔치 않은 시절이라 면사무소에서 제공하는 트럭을 타고 다녔습니다. 전날 비가 와서 움푹 팬 지점을 지나야 하는데 뒷바퀴가 땅에 닿지 않아 문제가 생겼습니다. 조사원 2명이 트럭 뒷부분에 올라가서 힘껏 구르면 타이어가 땅에 닿아 차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힘껏 도약하여 굴렀습니다. 아뿔싸 우리들의 도약으로 땅에 닿은 차는 앞으로 나가고 우리는 공중에서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는데 목에는 3대의 카메라가 있었는데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카메라를 지키기 위해 했던 몸동작은 하나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당시 교수님들의 말씀은 지방대 사학과의 갈 길은 너희들의 고향인 전라도의 역사 문화를 공부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인재로 가야 경쟁력이 있다는 뜻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대학원 진학도 좋지만, 현장으로 들어가는 즉 기초자치단체나 연구기관 등으로 진출을 말씀하셨다.

 

지금의 제가 학예연구관으로 나주의 역사 문화 등등의 일들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교수님들의 지도와 가르침 덕분이었습니다, 직업인으로서 문화재와 역사 문화를 담당하는 학예연구직 공무원의 시간 속에서 살아온 날들을 뒤돌아보니 젊은 날의 팽팽함은 잔주름의 모습으로 업경대 거울 속에 자리하고 머리에는 서리가 내렸습니다. 

 

하나의 업무를 32년 한자리에서 본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호남의 웅도 나주를 상대로 말입니다. 30여 점의 지정문화재가 150여 점이 넘고, 없었던 읍성의 동점문, 영금문(서성문), 북망문을 3개나 복원하고, 나주목관아 공간에 있었던 나주군 청사와 금계매일시장 등을 철거하고 새롭게 공간을 만들어 가는 일들, 나주향교의 원형 찾기를 통한 동재 서재의 복원 대성전의 대대적인 수리들이 이뤄졌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원도심 퇴락의 주인공이라고. 그러나 원도심의 공동화 현상은 이미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나주시와 나주군으로 분리와 통합의 과정이 진행되면서 원도심 핵심 시설인 나주 군청과 시청이 나주읍과 영산포읍 중간에 자리하고 시 외곽으로 아파트와 새로운 주거 공간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 하나가 중세도시의 흔적이 그래도 많이 남아있는 나주의 역사 문화 도시의 공간 창출로 나아간다면 좋은 대안이 아닌가 해서 추진했던 사업이 역사문화도시조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국립나주박물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복암리 고분전시관,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무형문화재전수관, 백호문학관, 천연염색박물관, 나나센타 등등 수많은 사업들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은 시장님을 비롯한 많은 동료와 나누었던 일들이었습니다.

 

이제 일부는 끝났으나 아직도 미완의 부분이 남아있어 그 중책은 남아있는 분들이 해야 할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뤄진 자산을 활용하여 새로운 문화와 예술을 접목하고 이 시대가 원하는 방향의 사업들이 추진되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우리들이 원하는 방향의 일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무한의 자원을 새롭게 가공하고 법고창신(法古創新)하는 과정에서 새로움은 나타날 것입니다. 항상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연 없는 인생이 없듯이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 그때그때 상황과 당시의 여건이 반영되어 그리되었을 것입니다. 역사를 읽고 되새기는 것은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보기 위함이 그 중심에 있을 것입니다. 과거가 중요하지만. 거기에 방점이 찍혀야 하는 것은 아니며 현재를 살펴보고 좀 더 나은 대안을 찾아보기 위해 그리하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제가 공직자로 살아오면서 지켜야 한다는 신념은 ‘교언영색’(巧言令色)하지 말자였습니다. 교묘한 말로 현혹하고 얼굴색을 바꾸는 일들은 안 해야겠다. 그러한 다짐들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직장이라는 울타리 그리고 현재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유한한 삶의 시간 속에서 이 세상과 이별할 때 뒷모습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고자 하였습니다. 가는 마당에 너무 많은 말들이 이어졌습니다. 한마디 더 덧붙인다면 살아가시는 동안 많은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많은 사람이 저와 인연의 끈으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제가 붙박이로 살아 많은 동료와 교감이 없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 또한 인연이겠죠 항상 건강하시고 멋진 인생 행복한 삶의 시간을 이어가시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떠나는 발걸음 가볍게 하고 갑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

 

2023.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