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균(평통사 공동의장)

당시 양금덕(梁錦德, 94세, 1929년생)의 오빠는 일본에 건너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본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자식도 두었다. 벚꽃이 필 무렵에 미쓰비시 공장에 면회를 오고, 벚꽃이 지고 나서도 찾아왔다. 해방되기까지 대여섯 번이나 찾아왔다. 일본인 새 언니가 음식을 장만해 오면 나주 출신 친구들과 외출하여 음식을 먹고 들어왔다. 오빠는 오사카에 살고 있었다. 오빠는 일본 기마대에 들어갔다가 말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났다.

1944년 12월 7일 점심을 먹은 후 양금례는 막 작업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지진이다. 지진! 빨리 밖으로 나가라.”고함이 들렸다. 급히 뛰쳐나가던 중 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10분 먼저 작업장에 들어갔던 2년 선배 최정례(崔貞禮)와 6학년 동기였던 김향남(金香南)이 무너진 담벼락에 깔려서 죽고 말았다. 불과 10분 사이에 생사가 갈린 것이었다. 이 지진으로 광주 출신 1명, 영암 출신 1명, 목포 출신 2명, 나주 출신 2명 등 6명이 사망했다.

이때 죽은 선배와 친구들은 어린 나이에 일제에 속아서 일본에 끌려왔다. 진학은커녕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배곯아가면서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아까운 생명들이 허망하게 죽었다. 양금덕은 무너진 벽 틈에 갇혀 있다가 구조되어 목숨만은 구할 수 있었다. 이때 옆구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약을 구할 수 없어서 저녁마다 식당에 내려가 일본인에게 된장을 얻어다가 상처에 붙였다. 그 상처는 아직도 선명한 흉터로 남아있다. 그때 다친 왼쪽 어깨는 지금까지도 골병이 들어 후유증을 앓고 있다.

지진과 이듬해 미군의 공습으로 공장지대를 비롯한 나고야 전역은 폐허로 변했다. 이 무렵 양금덕은 도야마縣 미쓰비시중공업 다이몬(大門) 공장으로 이동했다. 도야마는 겨울에 눈이 오면 여름까지도 그 눈이 녹지 않는 추운 곳이었다. 양금덕과 소녀들은 나고야 도토쿠 공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일본인들은 “우리가 너희들 고향 집 주소를 알고 있으니 틀림없이 월급을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양금덕은 “일본사람들은 정직항께 거짓말은 안할꺼여“그렇지만 결국 중학교 진학도 임금 지급도 모두가 거짓말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일본에 있던 양금덕과 소녀들은 해방이 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수에 살던 친구의 아버지가 다이몬 공장까지 찾아와서 ”아 해방이 되었는디 무슨 이유로 우리 딸을 집으로 보내주지 않능거요?“라고 따졌다. 그제야 일본이 전쟁에 졌고, 조선은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여기에 양금덕과 소녀들도 동조해서 집으로 보내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일본사람이 끊어준 전표를 가지고 시모노세끼에서 부산까지 배를 타고 온 뒤 다시 기차에 올랐다. 1945년 10월 22일 막차를 타고 나주역에 내렸다. 어머니는 해방이 된 날부터 매일같이 아침부터 나주 역전에 나가 있었다는 것이다. 가족들과 만남의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가 어머니의 정성에 탄복했다고 한다.

1년 5개월간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강제노역과 굶주림과 민족차별 속에 시달리면서 고생하다가 해방을 맞아 뒤늦게 귀국하였던 것이다. 양금덕은 일본에서 돌아온 후 결혼 전까지 집안일을 도우면서 어머니에게 살림을 배웠다. 해방되니 벼 수확량의 절반을 일본인에게 빼앗기지 않아서 좋았다. 무엇보다 배를 곯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데 느닷없는 걱정이 하나 생겨났다.

당시 이웃에서는 양금덕이 일본에 ‘근로정신대’가 아닌 ‘위안부’로 다녀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註) 위안부: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설치한 위안소에 강제동원되어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던 여성 당시 사람들은 근로정신대와 위안부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여자가 일본에 끌려갔다가 돌아왔다고 하면 일본 군인을 상대로 몸을 팔고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양금덕처럼 일본에 취업을 미끼로 한 사기에 속거나 심지어 납치 당하여 강제로 끌려갔던 사람들이었다.

하루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집에 와서 양금덕이 돈을 많이 벌어왔을 테니 이제 집도 사고 땅도 사라고 권했다. 부모님들은 ”무슨 말이라요. 일본 공장에 가서 죽두록 일만하고 단돈 1원짜리 한 장 못받아 온 딸에게 먼 그런 가당찬한 말을 한당가라우. 남자들 손 한번 잡아보들 못했다요.“

혼담이 진행되다가도 양금덕이 일본 갔다가 왔다는 말을 들으면 혼담이 깨졌다. 결혼 날짜까지 받아놓고도 깨진 때도 있었다. 모두 양금덕이 일본에 위안부로 다녀온 것으로 알았다. 양금덕의 고난의 세월은 미쓰비시 강제노동에서 그치지 않고 평생 주홍글씨처럼 되어 따라다녔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