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쪽염색으로 6대를 이어갈 윤씨네 6남매가 사는 명하마을
바닷물 들어와 천연매염제 연료 굴껍질 구하기 쉬워 쪽염색 활발
고막원천을 경계로 함평군과 접하고 마을 가운데 청동기 고인돌
| |
 |
|
| ▲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낸 금계 노인 선생의 후손들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금계국민학교를 세웠다. 폐교된 학교 정문 뒤편으로 교사가 보인다. |
“아빠는 5대, 나는 6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잇는 염색장이 되고 싶어요” 고교 1학년인 윤판각(17세) 군의 꿈이다. 윤 군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원예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한발한발 다가가는 윤 군의 꿈이 영글고 있는 곳은 문평면 북동리 명하마을이다.
윤 군의 할아버지는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 고 윤병운 선생(1921-2010)이다. 고 윤 선생은 4대째 가업을 잇기 위해 1936년 쪽염색에 입문했다. 윤 선생의 아들인 대중(60세) 씨 역시 어려서부터 쪽과 함께 했다.
대중 씨는 2004년 염색장 전 단계인 전승교육사가 됐다. 전승교육사는 문화재청의 평가를 거쳐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지만 아직까지 평가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20여년째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만 거듭하고 있다.
최경자(53세) 씨는 1998년 대중 씨를 만나 가정을 이루면서 쪽염색과 인연을 맺었다. 최 씨는 “아버님의 작업일지를 작성하느라 궁금한 걸 묻고 답을 들으면서 쪽염색의 과학에 매료됐다”며 “인근 지역보다 평균온도가 3℃ 낮은 지형적 특성이 발효라는 환원과정에 영향을 주어 독특한 명하마을의 쪽색을 내는 것을 알게 됐다”고 쪽염색의 원리를 밝힌다.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천연매염제의 원료인 굴껍질을 구하기 쉬웠다는 점도 명하마을이 쪽염색을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란다. 판각 군을 포함한 최 씨의 자녀 6남매들 역시 쪽염색에 빠져 있다. ‘나로 인해 100명이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시아버지의 유지를 잇기 위해 최 씨는 2012년 사회적기업 ‘명하햇골’을 설립했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서 만든 명하햇골은 2012년부터 해마다 10월에 ‘명하마을쪽빛축제’를 열고 염색체험과 다양한 문화공연을 통해 마을 소득증대에 앞장서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2020년부터 축제는 중단됐지만 해마다 20만명이 마을을 찾게 만들었다.
| |
 |
|
| ▲ 한해에 20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불러모은 명하쪽빛마을협동조합이 부활의 몸짓을 하고 있다. 황영희(오른쪽 첫번째), 최경자(〃 두번째), 윤정아(왼쪽 첫번째) 씨 등 조합원들이 전라남도 관계자 등과 회의를 하고 있다. |
명하햇골의 탄생부터 함께 한 황영희(63세) 씨는 “함평군과 접해 있어 나산면 오일장이나 문평장을 주로 이용했고, 명절을 앞두고는 함평장에도 다녔다”며 “설 쇠고 보름까지 집집마다 걸궁놀이를 하며 쌀이랑 돈을 거둬 부녀회 활동에 보태기도 했다”고 기억한다. 목포가 고향인 황 씨는 “식구들이 모두 물김치를 좋아해서 동치미는 우리집 자랑 중 하나다”고 덧붙인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품앗이해서 농사를 지었고 인정이 넘치는 마을이었다”고 말문을 연 한명옥(56세) 씨는 “봄이면 향우들과 함께 마을을 가로질러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잔치’를 열기도 했는데 갈수록 마을이 쇠락해지는 바람에 7~8년 전부터 그마저도 멈췄다”며 아쉬워한다.
함평군 학교면이 고향인 노성애(69세) 씨는 “길 건너 나산면 딸기밭이며 양파밭을 생계터전으로 해서 자식들 키우고 살았는데 이제는 몸이 불편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운동삼아 마을산책만 할 뿐”이라며 “세상이 좋아져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5남매와 손주들이랑 영상통화로 얼굴이나마 볼 수 있어 좋다”며 웃음짓는다.
역시 학교면에서 소달구지를 타고 2시간 넘게 와서 결혼하고 67년째 명하마을에 살고 있는 김전실(85세) 씨는 “마을이 산중이라 논은 없고 온통 서숙밭만 있어서 까끌까끌한 서숙밥이 주식이었다”며 “마을 위쪽에 저수지를 만들면서 논이 생겼고 전기도 다른 마을에 비해 늦게 들어왔다”고 회상한다.
| |
 |
|
| ▲ 햇골마을 입구 당산나무를 지나면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음을 보여주는 고인돌이 있다. |
“지금 석산이 들어온 큰골에는 계단처럼 생긴 멋진 문턱바위가 있었고 구들장으로 쓰는 넓고 평평한 돌이 많이 나왔다”고 기억하는 윤병옥(70세) 씨는 자녀들 교육 때문에 광주광역시에서 20여년 생활했다. “광주 살면서도 주소는 이곳 명동에 뒀다”는 윤 씨는 “형제들과 함께 나눠먹기 위해 100여통의 양봉과 논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큰골과 명동, 햇골로 이루어진 명하마을은 한 때 70~80여가구에 이르는 큰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큰골엔 석산이 들어왔고 명동에 5가구, 햇골에 23가구만 남아 있다. 햇골 당산나무 지나 마을 중심부에 8기 등 14기의 고인돌로 미루어 볼 때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 앞 고막원천을 경계로 함평군과 접해 있는 명하마을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낸 금계 노인(1566-1622) 선생의 출생지이다. 저수지를 쌓으면서 노인 선생의 호를 따서 금계저수지로 이름지었으며, 함평노씨 후손들이 마을주민들과 함께 금계국민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정만식 명하쪽빛마을협동조합 이사장 인터뷰
“쪽빛 가을하늘에 사람들로 넘쳐나는 마을 꿈 꿔”
“한창 잘 나가던 초창기에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았다” 명하쪽빛마을협동조합(이하 조합)의 현재에 대한 정만식(71세, 사진) 이사장의 진단이다. 2012년 설립된 조합은 쪽염색을 주제로 체험과 휴양, 음식만들기와 축제 등을 진행해 왔다. “마지막 축제가 진행된 2019년엔 21만명이 마을을 찾았다”는 정 이사장은 “코로나로 인해 3년 넘게 활동이 중단됨에 따라 언제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답답하다”고 속내를 터놓는다.
“정책이 일관성이 없는 게 현장의 제일 큰 어려움”이라는 정 이사장은 “도지사나 시장 등 사람이 바뀔 때마다 관련 정책이 바뀌는 바람에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 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한다.
문평면 농민회장(2003-2005)과 나주시 농민회장(2007-2009)을 지내기도 한 정 이사장은 “30년 전과 똑같은 쌀값이 농촌과 농민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농산물의 가격 결정에 생산자인 농민이 개입하지 못하고 정부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현실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15살 어린 나이에 자전거배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정 이사장은 “미장 기술을 배우기 위해 건설일을 시작해 하청회사를 세워 제법 돈도 벌었지만 갑자기 수금이 안되는 바람에 부도났다”며 “전세금 빼서 함께 일한 사람들 인건비를 치르고 나서 큰누님이 살던 이 집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처음엔 5년 계획으로 나빠진 건강만 회복하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려 했지만 살다보니 명하마을 사람이 됐다”며 밝게 웃는 정 이사장은 목포시청 신축공사를 하던 70년대 초 함께 일하던 장모님의 소개로 부인을 만나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고 있다.
맑은 쪽빛 가을하늘 아래 사람들이 넘쳐나는 명하마을을 꿈꾸는 정 이사장의 꿈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