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보다 비싼 쟁기하던 소, 빚 지더라도 농사 위해 팔 수 없어
외지인 10여가구 이름도 성도 몰라 “마을과 함께 어울렸으면”

 

▲ 왕곡면 새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봉의산을 둘러싸고 내동마을이 있다.

 

봉의산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인다. 무등산과 월출산이 훤히 보인다. 가야산과 금성산은 마치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영산강 물줄기는 유난히도 힘에 넘친다. 100미터도 안되는 높이에서 이런 절경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봉의산 남쪽을 둘러싸고 왕곡면 신포리 1구 내동마을이 있다.

 

“500만원 준다고 쟁기질하는 소를 팔라는디, 그놈 팔아불믄 농사짓고 자식들 키울 길이 막막해서 팔 수 없었다”는 장봉순(79세) 씨는 “소 한 마리값이 집 한 채보다 비쌀 때였는디, 농사자금이 부족해도 빌려쓰는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장 씨는 고향이 다시면 동당리 청림마을로 댁호가 ‘당림댁’이고, 집 안 외양간에서 한우를 12마리까지 키웠다.

 

맞닿아 있는 박포마을이 고향인 정소림(85세) 씨는 5년 전 내동마을에 이사왔다. 정 씨는 “자식들이랑 같이 살자고 해서 경기도 시흥시로 갔는디 빌어먹어도 고향이 좋겠다는 생각에 다시 내려왔다”며 “봉의산 중턱에 무제샘이라고 마르지 않는 샘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정 씨가 이사해 온 집은 옛 국도 23호선 도로변에 있던 ‘주막집’ 자리란다.

 

공산면 화성리 상림마을이 고향인 박처례(91세) 씨는 “암껏도 모르는 18살에 결혼했는디 농사도 없는 산골이라 먹고사는 게 여간 힘들었다”며 “몇날을 굶다가 참지 못하고 들이 넓은 친정 집에 밥 먹으러 걸어서 다녀 오기도 했다”고 옛일을 회상한다.

 

영암군 시종면 신흥리 연수마을이 고향이라 ‘연수댁’으로 불리는 이광순(83세) 씨는 “결혼하기 전에는 가까이서 산을 본 적이 없어서 마을 뒤 봉의산이 곧 무너질까 무서웠다”며 “마을사람들이랑 같이 김장 비비고 영산포장이며 공산장에 다니며 어울려 살았다”고 기억한다. 이 씨는 “장날이면 마을 앞 도로변에 장꾼들이 와서 콩이며 팥을 내다팔기도 했다”고 덧붙인다.

 

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김인종(83세) 씨는 “마을에서 공산면 쪽으로 향하는 야산에 금을 캐던 광산에서 흘러나오는 천에 물이 마르는 날이 없어 아무리 가물어도 죽은 먹는다 해서 죽박굴이라 불렀다”며 “그 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인터넷 지도를 검색해 보니 쪽박골로 표기돼 있다. 

 

경기도 포천에서 이발병으로 군복무를 했다는 김 회장은 “젊어서 음식을 잘못 먹고 왼쪽 눈이 빨갛게 부어올랐는데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결국 실명했다”고 한다.

 

▲ 봉의산 서쪽에 분포한 고인돌 30여기가 전라남도 기념물 제135호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마을회관에서 오른편 신포저수지 쪽으로 가다 보면 제주양씨 제각인 추원재가 있고 그 옆에 지장사 추모관이 있다. 대한불교 태고종 지장사는 2003년 성렬 스님이 창건했다. 성렬 스님은 마을 출신으로 속명은 양해봉(73세)이다. 지장사는 지난 2007년 납골당을 허가받아 작년 8월부터 봉안을 시작했다고 한다.

 

7살 때 동진출가(어린 나이에 스스로 출가하는 것)한 성렬 스님은 “독거노인과 무연고자 무료안치를 위해 600여기를 마련해 놓고 있으며 현재 28기를 모시고 있다”며 “나주시에도 100기를 희사했으나 아직까지 단 1기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아쉬워 한다. 

 

제주 양씨 집성촌이었던 내동마을은 2006년 출간된 나주시지에 65호 149명이 거주한다고 돼 있지만, 현재는 제주 양씨 5가구와 나주 정씨 13가구, 광주 정씨 9가구 등 42가구만 남았다.

 

양배식 이장은 “마을 입지가 좋아 빈집만 나오면 외지인한테 팔린다”며 “최근 10여 가구가 새로 이사해 왔지만 이장인 저도 이름도 성도 모르는 집이 대부분”이라며 마을과 함께 어울리지 못함을 지적한다. “경제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고 사고위험만 컸던 국도 23호선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확포장돼 좋다”는 양 이장은 “중학교 다닐 때까지 마을 옆 장승배기에 물물교환하는 5일장이 서기도 했다”고 기억을 떠올린다. 마을회관 앞길은 영암군 신북면에서 다시면으로 이어지는 물길을 복개한 것이란다. 

 

내동마을 곳곳에 청동기 시대 유물인 고인돌이 있다. 2009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한 ‘나주시문화유산종합학술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봉의산을 중심으로 4개 군집으로 100여기가 분포한다. 

 

이 중 서쪽 30여기가 1990년 12월 5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35호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지만 그 외는 경지정리하거나 집을 개보수하면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봉예산, 봉화산 등으로도 불리우는 봉의산 정상에는 봉화를 올리는 봉수대와 기우제를 지낸 터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나주시문화원 관계자에 확인해 보니 봉수대의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고 한다. 정용림 전 서울특별시의회 의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

 

 

 

“농바우, 주먹바우, 용바우 등이 있는 봉의산에 둘레길을 만들어 명품으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양배식(67세) 이장은 “농바우가 비틀어져 있어 큰 인물이 나지 않지만, 객사할 염려는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며 “8년여 전 산불로 훼손된 봉의산을 정비하면서 등산로를 거의 직선으로 만드는 바람에 산에 오르는 재미를 없앴다”고 지적한다. 봉의산은 왕곡면이 주관하는 새해맞이 행사를 하는 명소인 만큼 제대로 상품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0년대 중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해남군이 고향인 부인을 만났다는 양 이장은 “친척이 보여준 사진 속의 9명 중 젤 이뿌고 맘에 쏙 들어 소개해 달라고 졸랐다”고 웃음짓는다. 

 

2남1녀를 두고 있는 양 이장은 “큰 아들이 7개월 3일만에 태어나서 온 가족이 애를 태웠다”며 “당시 월급이 3만 원인데 비싼 장비인 인큐베이터를 이용하는 하루 입원비가 1만 원에 달했지만 아버님께서 도와주셔서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고향에 돌아올 결심을 한 양 이장은 “부모님의 땅 5,500평에 사과를 재배해 전남농협 품평회에서 1등을 차지하는 등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며 “그러던 중 인근에 대규모 양돈농장이 들어오면서 탄저병이 돌아 배로 작목을 바꿨지만 그마저도 버티기 어려워 2017년에 태양광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세대 탓도 있지만 최근엔 코로나 여파로 주민들간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양 이장은 “마을방송으로 알리는 것보다 직접 전화드리고 찾아가서 주민들 각자에게 필요한 시나 면의 사업을 맞춤형으로 설명해주는 등 단합을 도모하려고 한다”며 10여년만에 다시 이장을 맡아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한다. 양 이장의 꿈이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