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북구 (재)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 운영국장

쪽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식물염료이다. 세계 각지에서 재배와 이용이 되었던 쪽은 유럽제국의 동인도회사 설립 배경과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운동의 계기가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노예제도가 견고히 되었던 이면에도 쪽이 있었다. 쪽은 1897년경 합성 쪽이 생산될 때까지 착취와 약탈의 대상체였고, 최고의 국제 무역품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쪽은 귀중한 염료이자 무역품이었으며, 그 중심 지역은 나주 영산포였다. 1900년대 초경 영산포 선착장에는 전국은 물론 일본, 중국에서까지 쪽 염료를 구입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당시 조그만 젓갈 옹기에 담긴 염료(泥藍)가 쌀 한 가마니와 맞바꿀 만큼 고가에 매매가 이루어졌다.

쪽 염료가 이처럼 귀하게 취급된 데는 견뢰도가 우수하고, 거의 유일한 청색 염료이며, 인간의 색에 대한 인식 효과와 관련이 있다. 인간의 오감 중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정도로 높다. 나머지는 청각 20%, 촉각 15%, 미각 3%, 후각 2% 순이다. 오감 중 시각 비중이 높다 보니 삼원색의 하나인 청색을 갖는 쪽은 패션 산업에서 약방의 감초와 같은 존재였다.

쪽처럼 역사성을 갖는 색은 오늘날 지역의 역사 및 스토리 등과 결부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도시의 색채에 사용되면서 관광자원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쪽 산지였던 도쿠시마현 도쿠시마시(?島市)는 시내를 관통하는 하천에 쪽 색깔의 LED 등(燈)을 설치해 시민의 휴식처와 관광지로서 인기를 끌고 있다.

모로코 북서부에 있는 쉐프샤우엔(Chefchaouen)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청색 마을이다.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스타일과 모로코 베르베르 스타일의 건축물이 조화롭게 어울려 있고, 골목마다 흰색과 청색이 대조를 이룬 멋진 모습은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탈리아 베니스 인근의 부라노(Burano)는 다채로운 건물의 색채가 유명한 어촌 관광지이다. 이곳은 안개가 많아 고기잡이배들이 귀선(歸船)시에 집이 잘 보이도록 화려한 색깔의 페인트로 칠한 것에서 유래됐다.

싱가포르의 싱가포르강 동쪽 로코르 운하의 북쪽에 위치한 리틀 인디아(Little India)는 화려한 색채의 건물과 벽화로 유명하다. 영국의 식민지 시대였던 19세기에 인도인들이 이민을 와서 살았던 것에서 리틀 인디아가 형성된 후 화려한 색채의 건물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베트남의 중요한 국제 무역 항구였던 베트남 꽝남성 중부의 도시인 호이안(會安, H?i An)은 황색 도시이다.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이 도시는 노란색으로 칠해진 건물로 인해 유명하다.

황색도시(La Ciudad Amarilla)라는 별칭이 있는 멕시코 유카탄주의 이사말(Izamal)은 건물이 온통 노란색이다. 마야인의 주식으로 사용되었던 옥수수의 노란색을 표현하기 위해 노란색으로 칠했다는 설이 등이 있는데, 노란색은 이사말을 더욱더 독특하게 구별 짓고,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 외에 멕시코 중북부에 위치한 과나후아토(Guanajuato)의 강렬한 색채의 건물 등 역사와 색채 자원을 도시색채와 관광자원 그리고 지역의 정체성에 활용한 도시는 많다.

나주 영산포는 국내 최대 쪽의 산지이자 유통 현장이었으며, 1960년대까지 쪽 염색문화가 전승되었던 곳으로 쪽(인디고) 색이라는 귀중한 색채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홍어에서 유래된 핑크는 포인트로 활용할 수 있는 색 자원이다. 이 소중한 색채 자원을 도시 색과 지역발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정체성과 가치를 극대화하였으면 한다.

▲ 청색 도시로 유명한 모로코 쉐프샤우엔(사진 Heidi Ka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