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정승이 날 명당이라 하여 이름붙여진 삼정마을의 웃마을 전경.

 

“마을 앞 사거리가 교통요충지로 다도농협 분소가 있었고 버스를 이용하는 학생들로 바글바글했었다”고 과거를 회상하는 김희진(79세) 씨는 “1975년 큰아들이 태어나던 해에 나주호를 만들면서 고향인 궁원리가 수몰되는 바람에 강제로 이주했다”며 “고향을 떠날 수 없다고 버티다 절반도 안되는 보상금을 받고 쫓겨나다시피 했다”고 당시 사정을 이야기한다. 

 

1차 이주 때는 시세(3.3㎡에 1천원)대로 보상했지만 3차 이주 때는 450원밖에 주지 않았단다. 김 씨는 “그 때 논 3마지기를 팔아 광주에 논 3마지기를 산 사람이 3년 뒤에 그 논을 팔아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덧붙인다.

 

인근 화순군 도곡면이 고향인 탁균성(63세) 씨는 산포면이 고향인 남편을 만나 나주사람이 됐다. 20여년 전 삼정마을로 이사온 탁 씨는 “농사지은 농작물을 팔러 버스타고 남평장이나 나주장으로 다니기에 편하다”며 “쌀값이나 농산물 값이 옛날만 못해 손 놓으면 굶어야 할 지경이라 쉴 틈이 없다”며 수확한 콩을 손질하며 큰 한숨을 짓는다.

 

정정수(51세) 씨도 수몰된 궁원리가 고향으로 삼정마을에서 성장했다. “20대 때 직장생활하러 경기도로 떠났다가 8년 전에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돌아오게 됐다”는 정 씨는 “농토도 적고 축산도 없어 경제활동에 제약이 많다”며 “웃마을에 아버지 세대가 12가구 살았는데 한분만 남았다”며 머지않아 마을이 사라질 것이라며 걱정한다.

 

▲ 삼정마을 삼거리에 접한 과수농장에서 정재수(66세) 씨 형제 내외가 복숭아나무와 사과나무 등에 거름을 주고 있다.

 

“고향집이 다도초등학교 바로 앞이라 한번도 물이 차지 않아 집터가 버젓이 보였는데 지금은 풀이 우거져 집터를 찾아볼 수 없다”는 김기곤(82세) 씨는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정찰기 뜨면 군수 목이 날아간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박정희 군사정권이 댐건설을 강행하는 바람에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방안에 계시는데도 벽을 허물어 어머니가 흙더미에 묻힐 정도로 무자비하게 강제철거했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김 씨도 3차에 이주했다.

 

산포가 고향인 강봉차(73세) 씨는 인근 송학리에 살다 골프장이 생기는 바람에 삼정마을로 옮겨왔다. “살림이 줄어들라고 그런지 갖고 있던 논밭을 골프장이 생기기 전에 팔아버렸다”는 강 씨는 “다른 사람의 논밭을 빌려서 포도시 용돈벌이 정도 하며 살고 있다”고 밝힌다.

 

광주에서 교육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하고 삼거리에 과수농장을 하고 있는 정재수(66세) 씨도 궁원리에서 이주해 왔다. “직장생활하면서도 주소는 마을에 두고 부모님을 모셨다”는 정 씨는 “5남매의 큰아들로 형제들과 함께 나눠먹을 만큼의 농사만 소일삼아 짓고 있다”며 복숭아나무 21그루와 사과(11그루)며, 대추와 석류(각 5그루), 감(4그루), 매실(3그루)가 있는 과수원에서 동생 부부와 함께 거름을 주고 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동이 고향인 박정숙(84세) 씨는 인천광역시에 살다 1999년에 이사해 왔다. “시골생활이 답답하고 벌이도 없어 다시 인천으로 올라가 10여년 식당일 등 경제활동을 하다 돌아와 산 지 10년 째”라는 박 씨는 “생일(11월27일)을 맞아 창원에서 직장생활하는 큰아들 내외가 와서 함께 주말을 보내고 있다”며 밝게 웃는다.

 

2014년 웃마을에 덕인실버홈을 연 문나리(39세) 원장은 “거동이 불편하시거나 홀로 계신 마을 어르신들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저희 시설을 이용하거나 가까운 병원으로 옮기는데 도움을 드리는 등 마을과 함께 상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실제로 화재로 집이 전소된 어르신 내외를 1년여 모신 적도 있고,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이장님 말씀에 광주의 병원으로 이송해 드린 적도 있다”고 밝혔다. 덕인실버홈은 요양원에 26명, 주간보호센터에 21명의 어르신들이 이용하고 있다. 

 

▲ 청동기 시대 유물인 고인돌이 있다고 기록된 유암산업 뒤편이다. 나주시지의 기록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작년부터 이장을 맡고 있는 최승락(64세) 씨는 “한 때는 3-40여가구 7-80여명이 살던 마을이지만 지금은 17가구 28명에 불과하다”며 “마을사랑방 역할을 하던 농협분소도 문을 닫고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삼거리도 한산해졌다”면서 쇠락해가는 마을을 아쉬워한다.

 

삼정마을은 전국 최대 농업용 저수지인 나주호를 건설하면서 수몰된 궁원리와 판촌리 주민들이 이주해 와 마을을 이뤘다. 마을이 없어지고 새로운 마을이 생겨난 것이다. 나주시지에는 앞으로 삼정승이 날 명당이라 하여 ‘삼정(三政)’이라 했다고 기록돼 있으나, 마을 주민들은 마을이 3개(웃마을, 삼거리, 아랫마을)로 나뉘어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또한 나주시지에 고인돌 10여기가 남아 있어 고대로부터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나, 마을 주민들은 고인돌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한다.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노력이 절실함을 느끼게 한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군복무중인 늦둥이 아들만 같이 살고 객지에 사는 네 딸은 각자 자기생활 하느라 바빠서 자주 못 봐 아쉽다”는 최승락(64세) 이장은 “벼농사만으로는 생활이 안돼 나주시청의 숲가꾸기 사업에 기간제 근로자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고 한다. 최 이장이 4천여평의 논을 임대해서 벼농사를 짓는 소득은 연 700여만원 남짓에 불과하다고….

 

군 복무 중 휴가 때 만난 부인의 첫모습에 반했다는 최 이장은 “서울 형님 집에서 자취하던 강원도 횡성군 출신의 집사람과 편지로 사랑을 키웠다”며 “두번째 휴가 때 만나 서로 사귀기로 했고 전역 후 직장생활하면서 함께 살 결심을 했다”며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1980년 광주항쟁이 발발하기 전에 군에 입대한 최 이장은 “군복에 ‘국난극복’이라는 기장을 달고 첫 휴가를 나온 9월에 처음으로 광주항쟁 소식을 들었다”며 “당시엔 광주시민들이 북한군의 공작에 의해 소요를 일으켰다는 소식에 창피함을 느꼈는데 나중에 사실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부끄러웠다”고 소회를 밝힌다.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31사단에서 신병교육을 받은 중대 동기 180여명 중 최 이장을 포함한 8명만이 부산으로 배치되고 나머지는 강원도 전방부대로 갔다고 한다. 

 

군복무를 마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1984년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최 이장은 “귀향을 결심할 때만 하더라도 농사만 열심히 지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농업에 희망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씁쓸해 한다. 최 이장은 고향인 송학리 2구에 골프장을 조성하면서 집터가 골프장부지로 편입되면서 삼정마을로 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