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북구 운영국장

천연염색은 고대부터 존재부터 인류의 발명품이다. 고대 인류는 광물, 곤충 가루, 식물의 즙 등을 몸에 바르거나 생활 도구에 이용했음이 유적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염색은 제사장, 사냥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부류에서 이용되었는데, 특히 어부들이 능숙하게 활용했다.

어부들이 염색을 활용한 사례는 많다. 오늘날 진흙 염색의 세계적 산지가 된 중국 광둥성(廣東省) 포산시(佛山市) 순더구(顺德区)의 염색 역사는 어부들의 지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곳의 선조 어민(漁民)들은 그물을 뻣뻣하게 하고 오래 사용하기 위해 서랑(薯莨)이라는 식물의 뿌리 즙액으로 염색하였다.

그 과정에서 어민들의 옷도 일부가 염색되었다. 염색된 옷은 어망처럼 단단하고, 작업 과정에서 진흙이 옷에 묻자 옷은 흑색으로 변하면서 윤이 났고, 입을수록 유연하고 내연성이 뛰어났다. 이것에서 발전한 것이 포산시(佛山市) 특산의 진흙염색 천인 향운사((香雲紗)이다.

감물염색이 발달한 제주도 전설에는 “옛날에 한 고기잡이 할아버지가 낚싯줄이 자꾸 끊어짐을 못 여겨 감물을 들였던 결과 질기고 고기도 잘 잡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제주도 외에 세계 각지의 전통 염색은 낚싯줄이나 그물 염색과 연계되어 있는데, 오늘날 그 전통과 문화가 남아 있는 곳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전설과 역사자료에만 남아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고대의 염색기술인 낚싯줄과 그물 염색법은 뜻밖에도 영산강의 어부 사이에서 지금까지도 전승되어왔다.

2022년 6월 10일 나주시 다시면 석봉마을 자택에서 만난 최0권 씨는 1960년대부터 고기를 잡아 왔던 영산강의 마지막 어부이다. 그는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매년 풋감(미숙감) 즙액 또는 소 피를 그물 염색에 사용했었다.

최0권 씨가 그물에 감물 또는 소피를 염색해 온 것은 선대 어부부터 전해오는 전통 기술을 배운 것이다. 과거에 면사(綿絲)로 만든 그물을 염색했던 것은 물론 현재의 나일론(nylon) 재질의 그물에도 감물 또는 소피를 염색하면 그물이 튼튼하게 되고 수명이 길어지며, 투망질 할 때 그물이 잘 펴지는 효과가 있으므로 계속해 왔다.

그물 염색에는 풋감 즙액을 주로 사용했다. 동물의 피는 돼지 피의 경우 기름기가 많아 그물에 잘 스며들지 않아 소 피를 주로 사용하였다. 염색은 소피를 사용할 경우 그물을 염색한 후 햇볕에 건조시킨 다음 그물이 시루에 직접 닿지 않도록 시루 바닥과 옆면에 짚으로 엮은 것으로 둘리고 나서 그물을 넣고 쪄서 염색을 완성했다. 감물염색한 것은 찌지 않고, 햇볕에 건조만 시켜서 사용했다.

최0권 씨는 이렇게 감물이나 소피를 염색하는 것에 관한 용어는 “먼 선대 어부 때부터 ‘갈 먹인다’또는 ‘갈 멕인다’라고 했다.”라고 했다. ‘갈’은 제주도 갈옷에서 접두어로 사용되는 용어로 아직 그 어원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영산강 어부의 그물염색 전통은 사라져가는 용어의 어원 연구에도 도움이 되는 등 어로문화, 풍속학, 언어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도움이 되고, 현대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원 가치가 높다.

영산강에는 그물염색 문화의 사례처럼 강과 함께 살아온 음식문화, 풍속, 수렵기술, 제의식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와 조상들의 지혜가 함축되어 있다. 이것들을 찾아내고 발전시켜서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삼길 기대한다.

▲ 소 피에 의한 그물염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