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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금남동 7통 장산·용치마을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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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호] 승인 2022.10.03  06: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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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교통사고 아픔 안고 사는 장산·용치마을

평균보다 2도 낮은 추운 산골마을이 어느새 고향마냥 편안
쌀농사만으론 생계 어려워 인근 지역으로 돈벌이 다니기도

   
▲ 국도 1호선에 접해 있는 금남동 7통, 장산과 용치마을은 교통사고의 아픔을 안고 있다. 용치마을 전경.

“교통사고 당하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였제” 80년대 초 마을 앞으로 국도 1호선 포장도로가 생긴 뒤로 마을사람들이 교통사고를 많이 당했단다. 이길동 통장(54)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외사촌과 자전거를 타고 가다 뒤에서 오는 차량에 치여 다리와 머리를 다쳤다. 동갑내기 친구였던 사촌은 현장에서 죽었다. 금남동 7, 장산과 용치마을엔 가족이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죽은 일이 허다하다.

금성산 맛재를 지나 내리막길 끄트머리 오른쪽에 있는 용치마을. 옆길로 조금 더 들어가면 장산마을이 나온다. 용치마을의 이름은 1981년 금성시가 되면서 서로 나뉘어 있던 계룡과 삽치 두 마을을 합쳐 부르게 된 것이다. 장산 역시 같은 시기 금성산 장골에 있던 장동과 유산에서 한 글자씩을 따왔다.

기록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만 하더라도 삽치에 30가구, 계룡에 15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1992년 나주시가 펴낸 ‘나주시마을유래지’에는 장산에 25가구 115명이 살고 있다고 기록돼 있다. 지금은 계룡에 3가구, 삽치에 6가구, 장산에 11가구, 40명이 되지 않는다.

장산에서 태어나 같은 마을의 남편과 결혼하고 90여년을 장산에서 산 김어비(89) 씨는 “집집마다 막걸리 만들고 닭 잡고 죽 쒀서 나눠먹는 일이 많았었제”라며 “인자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어”라면서 텃밭에 심을 마늘씨를 손질한다. 김 씨는 “최근 들어 감나무 농장이 생겼는디 원래는 전부 쌀농사 짓는 논이었어”라고 덧붙인다.

   
▲ 국도1호선 건설 당시 옮겨진 지석묘가 삽치마을 입구에 무질서하게 흐트러져 있다.

신안군 팔금도가 고향인 천현숙(71) 씨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삽치마을 출신 남편을 만나 1970년에 결혼해서 이 마을에 정착했다. “쌀농사만으로는 부족해서 금천면 배과수원이며 무안군 수박밭으로 날일하는 인부들을 이끄는 작업반장을 하며 생계를 보탰다”는 천 씨는 “80년대 초 도로가 나면서 인근에 있던 고인돌들을 삽치마을 입구로 옮겨왔다”고 한다. 삽치마을을 알리는 표지석 주변으로 고인돌 5기가 흩어져 있다.

삽치에서 나고 계룡에서 자란 김준곤(74) 씨는 중학 2학년 때 학업을 위해 마을을 떠나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내의도매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 신당동 신설시장에서 5년여 고생 끝에 낯선 객지보다 고향에서 사업을 해야겠다고 맘먹고 나주로 와서 낚시체육사와 유명운동복 매장을 운영했다”는 김 씨는 “부모님이 사시던 집 터가 관리되지 않아 허물고 텃밭을 일구었다”며 “시간 나는대로 고추며 상추, 배추를 심어 식구들끼리 나눠먹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금남 7통에서 유일한 사업장인 두현건설을 운영하는 나오영(63) 대표는 반남면이 고향이다. 나 대표는 “회사가 꼭 복잡한 시내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조용하고 공기 좋은 계룡마을이 사무실과 자재창고, 집이 있는 제2의 고향”이라고.. 계룡마을의 빈집 터 7필지를 매입해서 정비하고 있는 나 대표는 국도1호선에 접해 있어 영광군과 장흥군 등 인근에 있는 현장을 다니기에 편리하다고 한다.

   
▲ 나주나씨 선산에서 바라본 보산저수지 아래로 장산마을이 있다.

뇌출혈로 쓰러져 4개월여만에 장산마을에 돌아온 박경림(68) 씨는 “78년 섣달인가 결혼해서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너무 추워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이 되드랑께”라며 “고향인 노안보다 2도나 낮은 산골생활도 45년이 지낭께 맘 편한 고향이 돼부렀다”고 옛 기억을 떠올린다.

박 씨는 마을 어른들로부터 “6.25전쟁 때 국군이 들어오자 인민군을 도와줬던 마을사람들이 산으로 도망가다 8명이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지금은 숲으로 우거져 사람을 분간할 수 없지만 당시엔 산에 나무가 없어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모두 드러나보여 희생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며 마을 앞 산을 가리킨다.

삽치마을은 광산김씨 집성촌이었던 탓에 지금도 광산김씨가 3가구나 살고 있다. 계룡마을 뒤편으로 청주양씨 선산이 있고, 장산마을을 둘러싸고 곳곳에 나주나씨 선산이 있다. 보산저수지 지나 금성산 중턱에는 자리한 나주나씨 시조사당은 원래 송월동에 있었지만 시청이 들어서는 바람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사당 안에는 5백년 넘은 은행나무가 시간의 무게를 버티고 있다.

 

   
 

이길동 통장 인터뷰

“마을에 도움되는 일이면 최선 다할 터”

올해 처음으로 통장을 맡은 이길동(54, 사진) 씨는 “마을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다들 연세가 많으셔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사람 대부분이 80세 전후란다. 마을에서 가장 젊은 이 통장은 “무슨 일이든 마을에 도움이 된다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뿐”이라고..

20대 때 김포며 성남 등 수도권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이 통장은 “인형코 붙이는 공장이며 금형사출 공장 등에서 일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금천면에 있는 변기원료 가공하는 흙공장에서 일하는 등 10년여 직장생활을 했지만 농사가 더 낫겠다는 생각에 쌀전업농이 됐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가 불편한 이 통장은 마을 가까운 곳에서 10여마지기 쌀농사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친구 소개로 전라북도 순창군이 고향인 부인을 만나 97년에 결혼했다. “딸과 아들은 어엿한 성인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 통장은 “둘 다 직장이 나주지만 독립해 살겠다며 각자 살림을 하고 있다”며 대견해 한다.

마을의 최대 현안은 여전히 위험한 국도1호선이란다. “이 도로가 처음 개통될 때 사람들 말이 금성산 맥이 끊겨 맛재 넘어 구진포까지 사이에서 천명은 죽어나가야 한이 풀릴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며 “실제로 집집마다 교통사고 당하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였다”는 이 통장은 맛재 터널이 생겨 끊어진 산이 연결되고 신호등이 생긴 뒤로 교통사고가 줄었단다.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탓에 한 살 어린 70년생들과 친구라는 이 통장은 “그 때만 하더라도 우리 마을은 교통이 매우 불편한 오지였다”며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놀며 1시간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새로 들어오는 이웃을 최고로 친다”는 이 통장은 “사람들이 들어와 사는 활기넘치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며 웃음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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