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김덕수 기자의 마을과 사람
5. 공산면 화성리 청룡마을
김덕수 객원기자  |  najukd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838호] 승인 2022.09.04  20:32:5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용이 승천하듯 청년들 돌아오는 농촌의 꿈 그려

구석기 유물 출토된 수만년 전부터 사람들 살던 청룡마을
쌀농사 10가구 16명의 작은 마을로 코로나도 비켜가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청룡마을로 불리었다. 마을 뒷산 언덕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수만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던 곳이다. 나주의 많은 마을들이 그러하듯 청룡마을도 영산강과 삼포천을 터전삼아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아온 오랜 역사를 안고 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그 흔적조차 공유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청룡마을엔 현재 10가구 16명이 살고 있다. 한때는 30여 가구 150여 명에 달했지만 산업화 물결에 휩쓸려 사그라들고 있는 것이다. 집터조차 없어진 곳도 10여 가구가 넘는다.

   
▲ 화성앞뜰 들녘에서 바라본 청룡마을. 마을 뒤 언덕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됐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기독교 대한감리회 화성교회가 있다. 1970년 인접한 성남마을에 문을 연 교회는 1993년 이곳으로 이사해왔다. 감리교회는 독립운동과 이화학당·배재학당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교회다. 김창수(62) 목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아이들 보육을 지원하면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며 “민족과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감리교회 본연의 사명을 통해 지역사회와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용재(53) 이장은 “20~30년 전만 하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도와 함께 경조사를 치렀는데 지금은 오다가다 만나면 인사나 하는 정도로 데면데면해졌다”며 아쉬움을 표하고 “마을규모가 적어 아직까지 코로나 확진자도 없고 한분한분 직접 찾아가 마을일을 상의할 수 있다”고 웃는다.

마을 중앙에 원주이씨 사당인 경모제가 있다. 인근 화산마을과 동촌마을이 원주이씨 집성촌인 까닭에 청룡마을에도 10가구 중 4가구가 원주이씨다. 주민 대부분은 쌀농사를 짓는다. 2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집집마다 3~4마리 한우를 키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두 빈 외양간만 남았다. 주민들은 소 팔아 자녀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다 하여 대학을 우골탑이라 불렀던 게 그리 오래지 않았는데 지금은 팔 소도 대학 보낼 자녀도 없는 상황이 됐다고 한다.

   
▲ 청룡마을 중앙에 원주이씨 사당인 경모제가 자리하고 있다.

화성앞뜰을 지나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주민들의 식수이자 빨래터였던 샘터가 있다. 지금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닫혀 있지만 주민들은 샘터를 보며 옛 추억을 떠올린다.

대학에서 한문학을 가르치고 정년퇴임한 뒤 53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이승열(76) 씨는 “옆집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를 만큼 각박해진 시골인심을 여실히 느낀다”며 “농촌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바깥세상 대비 비교가치’를 갖고 상생과 공생의 가치를 공유하는 마을을 만들어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꺼낸다. 여우가 죽을 때 자기가 살던 굴로 머리를 향한다는 수구초심을 이야기한 이씨는 ‘마냥 고향이 좋아’2016년 탯자리인 지금의 집터에 집을 지었단다. 광주광역시가 고향인 부인은 4년 뒤인 2020년에 내려왔다.

동강면 출신 김천심(75) 씨는 3살 연상의 왕곡면 남자와 결혼했다. 왕곡면에서 살다 7살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고 나서 이곳으로 이사온 게 40여년이 흘렀단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살 수가 없었단다. 신랑은 베트남전쟁에서 허벅지에 총알이 박히는 부상을 당했지만 아무런 보상이나 지원도 받지 못했단다. 본인이 챙기지 않아서 그렇단다. 그러다 보니 김씨가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했다. “땅 한떼기 없는 살림에 두손 두발로 흙 파서 아이들을 키웠다”는 김씨는 “200년 넘은 흙집 여기저기서 흙이 무너져내리고 있지만 손 쓸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젤 안타깝다”고..

베어놓은 깨를 말리느라 마당에 나온 이화선(31) 씨는 귀농 2년차 새내기 농부다. 경기도에 본사를 둔 전기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농사를 짓기 위해 그만뒀다. 아버지 건강이 좋지 않고 장남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부모님이 이뤄놓은 기반에 젊은 패기로 성실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씨는 “어려서부터 부모님 농사일을 도우며 자라서 잘 해낼 자신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청년들이 되돌아오는 농촌이 청룡마을의 용이 웃음짓는 날이 아닐까 기대해본다

 

   
 

김용재 청룡마을 이장 인터뷰

“고향 살고파 직장생활 포기”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나고 자라 53년째 청룡마을을 지키고 있다는 김용재 이장. “농사지으며 고향을 지키다 보니 결혼할 사람을 만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김 이장은 아직 미혼이다.

기술 배워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바라는 부모님 뜻에 따라 전북 이리공고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은 데다 낯선 객지생활의 어려움에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김 이장은 “전기과에서 공부했는데 용접회사에서 실습을 시작한 것부터 잘못 꿰어진 단추였다”며 “고향에서 살고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서 두달여만에 그만두고 왔지만 지금껏 후회는 없다”고 한다.

왜소한 체격으로 인해 병역을 면제받은 김 이장은 9남매(54)의 막내다. 다른 형제들은 모두 고향을 떠나 살고 있다. “광주에 사는 큰 형님이 젤 편하고 좋다”는 김 이장은 “명절 때는 물론이고 가족이 생각날 때면 형님 집으로 간다”며 장남과 막둥이라는 특수관계에서 온 우애라고 너스레를 떤다. 일찍 부모님을 여읜 탓에 큰 형이 아버지 같고 큰 누나가 어머니처럼 느껴진단다. 다행히 70세가 넘은 두분을 포함하여 모든 형제가 건강하게 화목하게 지내는 게 젤 큰 행복이란다.

마을 앞 화성앞뜰과 인근 동촌리와 남창리에서 60마지기 쌀농사를 짓고 있는 김 이장은 “또래 친구들이랑 왁자지껄 떠들며 뛰놀고 마을 어른들이 정겹게 모이던 그 시절이 그립다”며 “더 많은 젊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다.     

 

   
 
김덕수 객원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더불어민주당 나주·화순 국회의원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
2
학교 공간을 생각한다
3
공무원들에게 고향사랑기부금 강요한 나주시
4
30. 봉황면 철야마을
5
직원들과 소통이 필요한 ‘더 큰 나주 아카데미’
6
아무런 변화 없는 민선 8기 나주시
7
나주시 총무과장은 민원 해결사(?)
8
뇌물 사회학
9
영산동 관내 5개 통 통장들 뿔났다
10
나주시 인사발령 2023.9.25.자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전남 나주시 빛가람로 685 비전타워 206호 나주투데이  |  대표전화 : 061)334-1102~3  |  팩스 : 061)334-1104
등록번호 : 전남 다00334   |  발행인 : 윤창화  |  편집인 : 이철웅  |  e-mail : njt2001@hanmail.net
Copyright © 2013 나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