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수 기자의 ‘마을과 사람’ 연재를 시작하며
| |
 |
|
| ▲ 김덕수 객원기자 |
본지에 ‘마을과 사람’을 기획연재하게 된 김덕수 객원기자입니다.
나주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을까? 나주의 마을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한반도 문명의 큰 줄기 중 하나인 영산강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수렵과 채취, 농경문화가 영산강을 중심으로 형성됐다는 사실을 각종 유물과 유적이 보여줍니다.
선사시대 유적인 돌석기와 고인돌 등이 전남지역에서 밀집돼 있습니다. 전남에서도 나주 곳곳에서 고인돌 164개소 1,440여 기가 산재해 있으며 지금도 새로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청동기 유적인 고분 역시 129개소 170여 기가 분포하고 있습니다. 가히 고대유적의 ‘보물창고’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사회질서가 형성되고 도구를 이용하고 고인돌과 고분 등 장묘문화가 자리잡았습니다. 마을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유물과 유적에 기초하여 2022년 7월 현재 나주의 마을과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지역민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적인 사명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모여살던 마을에서 시작
연재는 나주에 처음 사람들이 모여살았던 곳으로 추정되는 마을에서 시작합니다. 제방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모습을 상상하면 답이 보일 것입니다. 남해바닷물이 영산강을 따라 내륙에 닿았을 것입니다. 강변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것입니다.
역사를 기록하기 전인 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된 금남동 죽림마을과 이창동 동방마을, 금천면 오강리 금구마을, 동강면 장동리 수문마을, 공산면 화성리 청룡마을, 세지면 내정리 봉정마을, 다시면 문동리 중문마을 등입니다. 이 외에도 나주 곳곳에서 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고 있습니다만 지면 여건상 우선하여 정리하고 이후 해당 마을을 소개할 때 추가로 기록하고자 합니다. 주로 구석기 유물들이 출토된 지역으로 이후 신석기 유물이 보이지 않는 것은 발굴조사가 미흡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음으로 고인돌 등 청동기시대 유적이 출토된 지역입니다. 금남동 용치마을에서 운곡동 텃골마을, 남평읍 노동리 하노동마을, 노안면 오정리 오리마을, 다도면 덕동리 삼정마을, 왕곡면 신포리 내동마을, 문평면 북동리 명하마을 등에 산재해 있는 고인돌 등 청동기 유물이 출토된 마을을 찾습니다.
이어서 삼국시대 고분군이 출토된 마을로 갈 것입니다. 영강동 남부마을과 산포면 매성리 신흥마을, 봉황면 용전리 관전마을, 반남면 신촌리 성내마을 등입니다. 또한 왕건의 고려 건국이야기를 전해 줄 흥룡동과 조선시대 명촌인 노안면 금안동과 다도면 도래마을, 다시면 회진마을 등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연재의 대부분은 오늘을 사는 나주사람들의 마을
그리고 연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재의 ‘마을’들은 나주의 이야깃거리를 들려줄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주의 마을과 그 안에서 나주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갈 것입니다. 마을의 일을 맡고 계신 이장님들과 통장님들의 눈으로 마을을 보려고 합니다. 아울러 그분들의 삶을 기록하겠습니다.
더불어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등 각 분야에서 나주인의 자긍심을 일으켜 세운 인물들의 기록도 함께 덧붙이고자 합니다.
한가지 양해말씀 드릴 것은 본 연재는 학술논문이 아니라 기사라는 점입니다. 최선을 다해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기록하려고 노력하겠지만 학술적 논쟁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 많은 제보와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 직접 찾아 뵙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습니다.
<이창동 동방마을을 가다>
몸돌 등 구석기 유물이 나온 나주의 오래된 마을
인근 농공단지와 문화재보호구역이 마을발전의 걸림돌
마을 앞까지 바닷물 든 흔적…터만 남은 샘이 마을의 역사
| |
 |
|
| ▲ 동방마을회관에서 만난 김충호 노인회장과 양남기 통장, 정용면, 양현씨(왼쪽부터)가 옛이야기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
“우리 마을 사람들은 오기가 없어! 깡치가 없제.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잘 품어안는 편이여!”이창동 동방마을에 사는 양현(76세)씨의 말이다. 사진을 좋아하는 그는 마을 행사 때마다 사진을 찍어 주민들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핸드폰이 생기면서 사진찍는 맛이 사라져부렀어. 필름카메라로 찍고 인화된 사진을 보는 재미가 있는디”라며 아쉬움을 나타낸다.
지난해 말 귀농한 임주태(40세)씨는 마을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올 봄에는 못자리를 함께 했다고 한다. 마을 일에 적극 참여하려고 해서 주민들이 좋아한단다. 김충호 노인회장(78세)은 자신의 밭에 심고 남은 고추모를 나눠주며 심으라고 하고 빈밭에다 농사짓도록 소개하기도 했다. 서로 협력해서 농사짓자고 뜻을 함께 한다고 한다.
6.25전쟁 참전 유공자인 양희두(91세)씨는 자전거를 버스승강장에 세워두고 증권사에 주식투자하러 나가시고 없다. 고령임에도 정정하게 비료살포기를 메고 농사를 지으시고 지게질을 하신다고 한다. 동방마을에는 국가유공자가 두명 더 있다. 군 복무중 사망한 고 강두세(53년생)씨와 6.25 참전유공자인 최규환(91세)씨가 그 주인공이다. 동방마을의 최고령은 양희석(94세)씨이고 최연소자는 초등 4학년생(11세)이다.
마을 서편 언덕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인 몸돌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동방마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선사시대로 추정된다. 나주의 가장 오래된 마을 중 하나라는 이야기다. 정용면(70세)씨 논에서는 손수레길이 발견되기도 했다. 인근 오량동 옹관묘 가마터에서 생산된 옹관을 배에 싣기 위해 포구로 옮기던 길이었을 것이란다. 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수 없지만 논을 조금만 파도 펄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영산강을 따라 바닷물이 마을 앞까지 들어왔을 것이라고 한다.
마을 동쪽 뒤편에 동수농공단지를 조성할 때 다수의 구석기 유물들이 나왔다고 한다. 양행곤(63세)씨는 “돌찍개 같은 것들이 많이 나왔는데 발굴조사도 하지 않고 그냥 공단을 만들었다”며 “그땐 그랬다”고 아쉬워한다. 농공단지가 마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 |
 |
|
| ▲ 두꺼운 석재로 덮여진 샘터 뒤로 주차장과 마을회관이 보인다. |
7년째 통장을 맡고 있는 양남기(62세)씨는 “문화재인 가마터와 농공단지로 인해 마을일에 많은 제한이 있다. 마을사람들과 함께 대규모 한우축산단지를 조성해보려 했지만, 허가가 나지 않아 진행할 수 없었다”며 “문화재가 추가적으로 나오거나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서 관광객을 유치하는 노력이 없는 한 마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마을 사람들이 식수 등 생활용수로 이용했던 샘이 두 곳 있었다. 마을회관 앞 편백나무 아래에 있는 샘은 주로 식수로 활용하고 뒤편 언덕에 있던 샘은 빨래나 목욕을 했다고 한다. 앞쪽 샘은 수량이 적어 새벽부터 물긷기 경쟁(?)을 했다고 한다. 조금만 게을리 갔다간 샘바닥을 박박 긁어야 해서 물을 긷던 양은그릇이 찌그러질 정도였다니 그 풍경이 상상이 된다. 뒤쪽 샘은 그나마 물이 많은 편이었단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주로 여인들이 많이 이용했단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국도1호선 동수교차로에서 영산포 방향 1백미터쯤에서 좌회전하여 반듯한 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동방마을에는 40여호 70여명이 살고 있다. 제주양씨가 15여 호로 가장 많다. 60~70년대에 80여호 400여명이 살 땐 골목마다 아이들소리가 가득했다고 한다. 식사 때면 ‘○○야 밥 먹어라’는 소리에 각자 흩어져 제 집으로 들어갔더랬단다.
동방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지만 배가 정박했다 하여 ‘동박’, ‘쌍주’라는 명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조선 정조임금 때인 1789년 펴 낸 ‘호구총서’에 ‘동방촌’으로 기록돼 있다. 옛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반색하는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서 화목함이 보인다. 동방마을이 다시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기억과 기록은 남겨야 할 것이다.
<양남기 동방마을 통장 인터뷰>
“마을이 더 발전하고 살림살이 좋아져야...”
“고향에 돌아온 이듬해인 2000년 다른 사람 축사에서 한우 3마리로 시작, 20여년만에 내 축사에서 100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동방마을 통장 양남기(62세, 사진)씨의 성공담이다. 양통장은 1990년 직장생활을 하러 서울로 떠났다가 10년만인 1999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6년 연하인 부인의 건강을 위해 객지생활을 접고 아버지 땅에서 농사를 짓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김충호 노인회장(78세)은 “한눈 팔지 않고 본인 살림과 마을 일을 열심히 하는 성실한 사람”이라며 양통장 칭찬에 침이 마르지 않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인 소개로 해남 출신인 부인을 만나 1992년에 결혼, 31세인 아들이 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아들은 광주에서 전공을 살려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아들 내외가 가까이 살면서도 직장생활에 바빠 자주 못 오는 것이 아쉽단다. 환갑이 지나도 자식은 자식이란다.
고향에 돌아와 농사짓고 한우 키우다, 지난 2015년 주민들의 요청으로 통장을 맡아 마을 일을 하고 있다. 양통장은 “마을이 더 발전하고 살림살이가 좋아져야는데 제약이 많아 답답하다”며 “농공단지가 버티고 있고, 가마터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는 한 특색있는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한다. 코로나로 인해 중단된 단체여행 등 마을행사들을 잘 추스르려고 고민하는 양통장의 얼굴에서 작은 희망을 그려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