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철야뒷산 생존자, 2001년 8월 인터뷰)

1951년 2월 26일 새벽 4시경에 개들이 짖어대고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공포탄 소리가 4군데서 나더군. 총소리가 나고 정적이 흐르더니 방송을 해.

“우리는 경찰에서 나왔다. 공비가 숨어들었으니, 남녀노소 불문하고 마을 앞으로 모여라. 한 사람이라도 집안에 숨어 있다가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사살할테니 5분 내로 나오라.”고 메가폰으로 방송을 한 거야. 그 말을 듣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아들, 딸과 아내를 데리고 마을 앞으로 나갔어.

집집마다 주민들이 마을 앞 논으로 나왔을 때 어둠이 거치고 사람얼굴을 알아보겠더라고. 경찰이 늙은이와 어린이를 집으로 들어가라고 한 뒤 젊은 남자와 여자 35명을 줄로 세우더라고. 무장한 경찰이 앞뒤 가운데 10여 명이 따르면서 철야쪽을 가자고 하더구만. 따라가면서 주위를 둘러보니까 김영희, 강상운, 양호방, 이병윤, 양창호 등이 눈에 띄어 조금 안심이 되더라고.

철야 만호정 앞에 도착했을 때 철야 주민들도 수십 명 모여 앉아 있었어. 여러 사람이 앞에 불려 나와서 죽창으로 두들겨 맞기도 하고 주먹질, 발길질, 두 눈을 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참상이었어.

아침 먹을 시간이 되자 경찰이 60명 정도를 철천 이장 정승렬씨 마당으로 끌고 가. 이장 집에서 아침을 먹으면서도 감시하는 사람들이 총 개머리판으로 땅바닥을 치면서 공포분위기를 고조시켰고 몇 사람은 피로 낭자한 채 있었어.

아침을 해결하고 나서 철야 뒤 방죽 옆을 지나 다도로 넘어가는 동박굴재로 끌고 가더니 쉬어간다면서 안심을 시키더라고. 조금 있다가 노인과 여자들을 골라내 산 능선에서 50미터 아래 골짜기로 몰아넣어. 순간 분위기가 험악했어.

그러더니만 거기서 총을 쏴버리더라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성일이 아버지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잡고 울기만 해.

얼마나 끔찍했던지 철야 서방렬씨가 공명 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걸했어. 그런데 공명이 그 자리에서 총을 빼고 쏴버리더라고. 그때 서찬수씨 옆에 있던 한 경찰이 “살려면 도망을 가라.” 조용히 귀뜸을 하는거야.

그래서 내가 살거나 죽거나 간에 뛰는 수가 마지막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서찬수와 서상빈이 도망칠 때 곧바로 뛰기 시작했지. 총성이 콩 볶듯 하는 것을 들으면서 산 두 봉우리를 넘어 움퍽진 곳에 앉았을 때 이제야 살았구나 마음이 놓이더라고. 그런데 이상하게 뒤에 따라온 경찰 2명이 엉뚱한 곳에 총을 쏘는 거야. 아마 우리를 살려주려고 그런거 같았어.

정신을 가다듬고 어디로 가야 살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산포 산재 고모 댁이 생각나서 피가 낭자한 몸으로 집을 찾아 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어. 고모 댁에 왔는데, 낯선 사람은 잡아간다고 그래. 그래서 빈 지게 속에 자장 나무를 얹고 그 속에서 컴컴해 질 때까지 숨어 있다가.

밤에야 집으로 왔지. 우리 집에서는 내가 죽은 줄 알고 관과 수의를 준비해서 뒷산으로 찾으러 갔는데 나를 찾지 못하고 돌아왔어. 점심이 훨씬 지나서야 내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데. 내 삼종제 김영희는 키가 작은데다 체구도 적어 총소리에 기겁해서 앞사람(누군지는 모름)을 부여 잡으면서 넘어졌어.

조금 있으니깨 생사를 확인하느라고 총으로 쿡쿡 찔렀데. 경찰이 돌아간 뒤에 자기 모습을 보니 완전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래.

강상운은 만호정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는 척하다 안심이 되지 않아 화장대 독을 휘감고 있다 살았어. 이장 집에 아침 먹으러 간 사이에 집으로 도망쳐 살았는데, 지금까지 무서워서 고향땅을 찾지 못하고 서울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만 들었어.

정학균(유족회 총무, 당시 12세, 아버지 사망)

내가 그때 열두 살이었으니까 국민학교 5학년이었지. 아침에 경찰들이 마을 입구 만호정으로 안 나오면 죽인다고 하니까 밥도 안 먹고 나갔어. 거기서 명단보고 막 불렀지. 경상도 말을 하는 지서장이 명단을 부르고 나머지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어.

우리끼리 설마 죽일라디야 그랬제. 우리는 집합해서 한 두 시간 연설하고 돌려보낼 것으로 생각했는데 죽인거야.

시체를 10일 만에 찾은 유족도 있었어. 산 정상에서 총을 맞은 사람이 아래로 굴러 떨어져 숲 속으로 들어가 일주일 만에 찾은 사람도 있고 그랬지. 우리는 그날 현장에서 다행히 아버지 시신을 찾았어.

그때 좌익에 직책있는 사람이 우리 마을에는 없었어. 국민학교 선생이나 면서기는 있었어도.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는 마을 반장이었어. 그러니까 무조건 학살해 버렸지.

저녁에 산 사람들이 집으로 와서 쌀이랑 보리쌀이랑 다 가져가 불고, 그럼 우리는 아침에 디딜방아 찌어서 밥 먹고 학교에 갔어. 안 줄 수가 없었어. 밤에는 그 사람들한테 주고 낮에는 경찰에 주고 살라니까 어쩌겠어. 산밑이라 그렇게 살았제.

우리가 돈 받고 보상받고, 그런거 바라지 않아. 정부에서 돈이 얼마나 많다고 다 줄거야. 명예만 회복시켜 주길 바라는 거지.

서상원(당시 17세. 사망자 서정수씨 아들)

그때 나는 금천면에서 피난을 했었는데, 아버지와 형수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장 달려왔어. 경찰들이 마을 주민들을 잡아가고 두드려 패니까 아버님이 삼당숙이 있는 금천면으로 피신을 보냈어.

동박굴재에 가니까 시체들이 널려 있더라고. 그날 집으로 못 모시고 동박굴재에 가묘를 해놓고 그 후에 모셔왔어. 그것도 밖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방에 못들이고 사랑채 앞에 두었어. 그 뒤 호방산 만들어서 형수랑 같이 마을 앞 문산에다 묘를 썼어.

너무 억울하게 돌아가셔서 그때 당시의 일을 세상에 이야기해 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서 철야 뒷산 사건 조사에 나서게 되었지. 사실은 이명한이라는 사람이 상당히 선동적으로 나섰어. 나하고 국민학교 동창인데. 돌아가신 분들 원을 풀어 드리려면 이럴 때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서 사건 조사에 나서게 된거야.

우리는 어디까지나 처벌이 문제가 아니다. 돌아가신 분들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할 뿐. 결국은 원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들의 원한을 벗기자는 거야.

안요례(86, 양성일회장 어머니)

경찰들이 나오라고 했어. 죄 없는 사람을 맥없이 죽였지. 죄 있는 사람은 산에 가버리고 없고. 아침밥도 안 먹고 잽혀갔제.

그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으니까 나오라고 하니까 나갔제. 나도 나갔는데 남자들만 뽑았어. 마을 사람 다 나오니까 논에다 모아 놓고 명단없이 잡아 죽였제. 근데 명단이 있은 게 잡아간 거제. 누구누구 다 아니까 이름은 다 알아. 누가 신고 안 했것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