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대는 이미 잘려버렸기 때문에 배의 요동이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파도에 떠밀리며 출렁거리는 배 때문에 선실에 누워있는 이들의 배 멀미로 인해 아무 곳에나 토해버린 오물로 악취가 코를 찌른다.

먹은 것이 없어서 며칠 전의 똥물을 토하며 나뒹구는 몸으로 짓이겨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바닷물이 흥건한 갑판에 넘어진 채 뒹구는 자들도 있었다.
 
갑판이고 선실이고 간에 배안 전체가 쓰레기통으로 변해버렸다. 입으로 토해낸 똥물이 범벅이 되어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생지옥인 샘이다.

제주 인들로서 단련된 뱃사람들이지만 난파선에서는 장사가 따로 없는 것이다. 배보다 세배는 더 큰 파도가 격렬하게 몰아칠 때는 수정호가 심하게 요동을 치며 멋대로 움직인다.
 
흔들리는 방향을 알 수가 없어서 어느 것이고 꽉 붙잡지 않으면 미끄러져 바다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실족사의 말로는 물고기 밥이 되는 것이다. 끔직한 최후다.
 
나뭇잎처럼 둥둥 떠다니는 배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이 질러대는 괴로운 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배 안에서 걷는 이들의 발걸음이 술 취한 취객처럼 기우뚱거리며 흔들린다. 아예 처음부터 양팔로 바닥을 집고 불-불 기어다니는 자들도 생겨났다.
 
배의 흔들리는 폭이 조금씩 커질수록 배 안의 구석마다 물이 더 많이 차 올라 온다. 커다란 파도가 순간에 뱃전을 때리고 배 안에 찼던 물이 빠지는 소리가 귀신 이빨 가는 소리처럼 기분 나쁘게 한다.

"찌지직 찌지직, 쏴-아 쿨쿨."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상황파악이 어렵고 전혀 관측할 수 없게 하늘을 가린다. 혹시 배가 뒤집어지지나 않을까 조바심이 앞선다.

이미 돛은 찢어지고 강풍에 날아가 없어졌다. 돛대마저 도끼로 찍어버린 후다. 그저 파도에 떠밀려 흔들거리는 대로 가면 간대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최부와 안의의 얼굴에는 죽음의 두려움이 두껍게 내려앉았다.

  잔뜩 긴장한 제주의 선원들도 무서움이 가득하다. 긴장한 탓인지 얼굴이 퍼렇게 질린 자들도 보였다. 배를 똑바로 세운다거나 진로를 조정하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고 다만 배의 난간을 붙잡고 떨 뿐이다.

 별도포를 떠난 지 벌써 이틀이 지났지만 먹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배가 고팠지만 밥을 지어먹을 엄두도 낼 수 없다.

몰아치는 강풍으로 욍욍거리는 잡음이 옆 사람과의 이야기도 들을 수 없게 한다. 입고 있는 옷을 찢어낼 듯한 강풍이 살까지 도려낼 듯 무섭게 불어댄다.

  뒤틀리는 판자소리가 싸움꾼들의 이빨 가는 소리처럼 가슴을 덜컹 내려  앉게 하고 소름이 돋게 한다.

제어능력을 잃어버린 배는 제멋대로 물결 따라 찰랑인다. 배보다 더 높은 파도가 뒤덮고 지나가면 여기저기 고인물이 바지가랑이를 적신다.
 
 거의 필사적으로 물을 퍼내는 권송과 강내의 허리는 펴질 때가 잠시도 없다. 쉴 새 없이 퍼내는 물이 바닥을 드러내면 어느 틈에 몰아친 파도가 물바다를 이룬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다

  이산과 오산도 죽기 살기로 매달려 물을 퍼내지만 첨벙거리는 물은 배안에 가득하다. 아무리 퍼내도 계속적으로 스며드는 물을 어떻게 할까?

제자리에서 쓰러질 때까지 물푸기는 계속하지만 여전히 차 오르는 물을 당할 힘이 부족하다.
  파도가 치고 나면 엄청난 양의 물이 배의 곳곳에 차오르기 시작한다.

  "물을 퍼내라! 물을…."
 
 이러다는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차 오르는 바다 물로 수정호는 물 속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 역류로 차 오르는 물 때문에 배 안에서 보트를 타고 다녀야 할 지경이다.

아무리 퍼내도 밀려오는 바닷물은 배 안에 가득 차 오른다. 오후가 되자 더 큰 파도가 밀려와 배의 앞과 뒤쪽을 마구 흔들어대며 부딪치는 통에 뒤집힐 뻔한 경우가 여러 번 일어났다.
 
 로링으로 인해 배의 옆면이 수면에 닿았다가 간신히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아슬아슬 위태 위태다. 겨우 중심을 잡아 일어섰다하면 이번에는 피칭이 뱃머리 쪽을 때리면 앞뒤로 춤추는 배가 넘어질듯 흔들거린다.
 
 고래 등짝 같은 파도가 밀려와 배에 가득 찬 물이 빠지면서 내는 소리는 간담이 써늘하게 한다. 선실에서 넘어진다면 함께 떠밀려 바다 속으로 쏠려 들어가고 말 지경이다.

  모든 사람들의 목숨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아비규환의 아수라장 속에서 배안의 물건들이 바다 속으로 떠내려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 언제 쓰일 줄 모르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날뛰다가는 위험하다. 자신의 몸을 가누면서 배 안에 실은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을 구해내야 하는 것이다.

가공스런 배의 울렁임과 요동치는 파도 속에서 내 몸 하나도 지키기 어려운데 여러 가지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붙잡고 떨어지지 않아야 하므로 위태롭기 그지없다.

비바람과 몰아치는 우박, 가끔 섞여서 내리는 눈발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자들은 난관을 이겨낼 뾰쪽한 방책이 없다. 자포자기에 빠진 자도 있었지만 앉은 채로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키를 넘어 머리위로 날아다니는 파도를 피할 수 있어야만 한다. 격군이나 호송군 가릴 것 없이 다함께 배를 살리고 자신을 지켜내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만 했다. 아직은 믿음직스럽고 건장한 선장 권산이 발악하듯 외친다.

  "배를 지키도록 하라! 배를."

  그것은 배의 옆구리에 돌출 되어있는 노를 저을 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자리를 잘라버리는 것이다. 배가 전복되어 물 속에 가라 안는 것을 조금이라도 어렵게 해야 한다. 노꾼 6사람씩 좌우에 달라붙었다. 노틀을 때어내야 된다.
 
 그들이 작업을 하는 도중에 하늘을 가릴 만큼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는 바람에 파도에 휩쓸려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 쏠릴 뻔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했다. 아찔한 위기를 넘기자 배가 조금은 흔들림이 적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