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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 현장을 다녀와서-2.터키&우즈베키스탄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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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호] 승인 2007.04.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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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터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에서 맞붙은 터키는 우리나라와는 혈맹(血盟)의 관계라 부르는 친밀한 나라이다. 57년 전 한국전쟁으로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터키는 UN군의 일원으로 1만5천명의 병력을 파병해 우리를 도와 피를 흘린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터키는 문명의 발상지라 부른다. 6,500년전 신석기시대 유적인 차탈 허유크 유적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즐비한 나라이다.

   
▲ 정찬걸 의원
최대 이슬람 국가 가운데 하나인 터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시아와 유렵 두 대륙을 보유한 나라로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이 만나는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다.

  이번에 방문한 이스탄불은 터키 최대의 항구도시이다. 흑해 어귀에 있는 구릉성 3각형 반도의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스탄불 유럽 지구에 전체주민의 3/4 이상이 거주하며, 주요 상사·호텔·사무실 등이 집결되어 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옛 도시(Stamboul) 안에는 비탈이 가파르고 꼭대기가 평평한 7개의 구릉이 있는데, 이곳은 가장 중세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좁은 해협인 골든혼(Golden Horn) 건너편에 자리 잡은 베욜루는 현대적 모습을 갖춘 공간으로 터키 정부청사가 있다.

이스탄불에는 예레 브스탄 궁전(지하 궁전)과 콘스탄티누스 궁전('텍푸르 사라이'라고도 함. 콘스탄티누스 황제 사후 1,000년 뒤에 건립)이 손꼽히는 문화유산이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 박물관에 모세의 지팡이와 성서에 나오는 세례요한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는 것은 기독교 문명을 파괴하기보다는 성지순례를 그대로 보존하여 기독교 문화를 꽃피게 하여 종교적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였다.
 
터키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오는 역사의 중층적 시간의 궤적을 찾아보는 매력을 갖춘 나라이다. 종교적 갈등과 있을 법 하지만 지혜롭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속에서 나는 용서와 화해는 단절되고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우리지역의 실상이 순간 뇌리에 떠올랐다. 

 종교적 갈등을 슬기롭게 극복해가는 터기인들의 삶 속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우리지역에서도 그들처럼 화합과 상생(相生)하는 방법의 실마리를 찾아내기 위해 그들의 사소한 행동과 언어, 습관 하나하나에 눈을 때지 않았다.

그리하여 얻은 것은 나보다는 남을 먼저 이해하는 易地思之의 평범한 지혜가 다시한번 읽혀졌다. 또한 터키인의 선조와 우리 선조의 공통적인 지혜를 찾아 볼 수 있었다.

터키 지하 우물과 여름에 서빙고에 여름을 저장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 터기인과 조선인의 혈맹관계가 더욱 진하게 올라왔다.

□ 고려인이 이룬 세계적 목화산지 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소연방의 해체에 따라 카자하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카프카즈 지역의 아제르바이잔 등 6개 신생 무슬림 독립국이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는 13세기 몽골족에서 시작하여 역사를 이어오다 1855~1876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1924년 소련 내에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세워져 우즈베키스탄은 면화생산국으로 이름이 높았다.

  과거 소련 영토 내에는 40만 명이 넘는 고려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 카자흐스탄에 약 10만명, 우즈베키스탄에 약 20만 명이 살았다.

이들이 이곳에 살게 된 이유는 1937년 스탈린의 지령에 의해 극동을 떠나 강제 이주되어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보내졌다. 화물열차에 실린 지 한 달 만에 고려인들은 새로운 땅에 도달한 것이다.
 
소련시기 고려인들은 논농사를 활성화시켰고 세계적인 목화 산지로 발돋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농업부분에서 많은 농업영웅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현재 고려인들은 1.2세대는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은 편이나 3,4세대는 높지 않으며, 독립 후 경제적인 면에서 어려움과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정확한 인식부재는 고려인의 삶을 지치게 하고 있다.
 
그렇지만 고려인들은 이러한 어려움을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통하여 극복하여 나가고 있다.

한국의 자본이 투자되고 많은 기업인들이 진출함으로써 현지의 고려인들은 일자리를 얻고 경영을 배우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또 많은 수의 고려인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는 경험을 갖게 됨으로써 경제적으로도 성장하고 일하는 방식도 터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미 카자흐스탄의 경우에는 많은 부를 축적한 고려인 기업가들도 나타나고 있다. 고려인에게 주어진 상황은 지금도 어렵다. 하지만 고려인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슬기롭게 난관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도울 수 있다면 그들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 그 도움을 잘 활용하여 성공신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세르게이시 구청장 압둘라 에부묵달 시장이 나주시를 찾아와 벤처마킹을 배우려는 열정을 보인 것을 볼 때 우즈베키스탄의 미래가 밝기만 하다. 

마지막날 우즈베키스탄에서 3번째로 큰 대학인 세계 언어대학교를 방문해 이 대학 학생들을 상대로 신정훈 시장님의 특강이 있었다.

특강내용은 우즈베키스탄까지 진출한 고선지 장군의 진취상을 이야기하면서 고려인들의 성실함과 끈기 등을 강의했다. 마지막 신 시장은 학생들에게 청년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는 내용의 강의로 끝맺음을 하자 학생들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이들에 대한 우리들의 노력은 민족문화의 정체성 보존을 위한 한국어 교육의 지속적 노력과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시에서 이미 몇 년 전부터 나주시민이 한글학교에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미래에 이들의 사회적 지위 하락을 막는 차원에서 현지어 교육과 기술교육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돌아왔다.

정찬걸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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