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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윤영근의 소설표해록 - 4. 사느냐 죽느냐(21) 최부는 선원들을 설득하고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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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호] 승인 2007.04.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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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게으르고 무례했다. 한편으로는 무섭고 두렵기도 했다. 그들만이 무기를 가지고 있기도 했고 또 어떻게 무기를 사용할지 알 수 없어서 불안하고 초조하게 했다.
 
별로 할 일도 없이 성질고약한 사람들이 많아봤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움되는 일도 없고 귀찮은 존재라면 차라리 적은 수의 군인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지금은 어차피 죽을 사람들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수장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배 안의 모든 이들이 힘을 합해도 어려울 진데 의견이 엇갈리거나 난동을 피우고 통솔을 어기며 반항하는 자들이 있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더구나 자포자기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은 보는 사람들에게도 맥 빠지게 하는 짓거리로 막아내야만 한다.
 
최부는 이들을 기어코 설득하고 다시 용기를 갖게 해서 살아갈 길을 찾도록 해야 했다. 군인들 앞으로 나간 그는 진심 어린 말로 노한 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먼저 최부 자신의 상(喪)당한 형편을 이야기했다.

머나먼 객지에서 당한 친상을 지체할 수 없었고 이를 처리할 집안의 사람들이 아무도 없음을 설명했다. 자신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늙은 모친의 서러운 모습이 눈앞을 가린다고 덧붙였다.

바삐 서둘다 출발을 재촉한 입장이 아니었는지 되돌아본다면서 배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자신의 경솔함에 문제가 있었음을 스스로 반성한다고 했다.
 
 "모든 일은 나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어느 누가 죽기를 바라겠소. 죽음을 각오하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이해하시고 도와주십시오."

  죽음 앞의 공포와 두려움은 누구나 느끼는 절망이고 무서움이다. 이를 진정으로 말하는 최부의 꼿꼿한 의지가 군인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마음이 통하면 천하도 반분한다하지 않던가!

  최부의 말에 공감을 토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이 보였다. 무쇠 같은 군인들이 최부의 진심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당장 배가 부셔져 망가진 것도 아니고 파괴되었거나 뒤집어엎어진 것도 아니다.

 아직은 견고해서 암초를 만나 배가 홀랑 깨지지 않았다면 부서질 염려야 있겠지만 여기저기 터진 곳을 고치고 들어온 물만 퍼낸다면 별 이상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좁은 틈새로 약간씩 새들어오는 물이 문제였다. 수정호의 아래쪽 선실바닥에는 조금씩이지만 흥건하게 물이 차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배의 상황을 파악한 최부는 선원들을 안심시키고 다독거려야 했다. 암초만 만나지 않는다면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바람이 진정된다면 다른 나라의 어디거나 무인도이건 장소를 가릴 것 없이 육지에 닿을 수 있고 그렇게만 된다면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실 날 같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가족들 부모와 처자, 형제, 친척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만에 하나라도 잘못 된다면 어찌하겠는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선원들

  최부가 먼저 열린 마음을 보이자 죽기를 자처하며 반항적이던 자들이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애끓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식구들을 외면한 채 귀한 목숨을 버린다니 말이나 될 성싶은가?

  각자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기어이 살아나겠다는 각오를 다지자는 최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장 허상리가 말했다.

  "경차관님! 군인들 중에는 딱딱하고 무디며 고집불통들이 있습니다. 무지한 소치로 함부로 말한 것입니다. 답답한 속내를 그냥 드러냈다고 여기시고 용서하십시오. 우리 모두 죽는 순간까지 배를 지키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허겁지겁 서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칠 흙 같은 어두움이 수정호를 내리 눌렀다.

여전히 새 찬 비바람은 그칠 줄 모르고 집채보다 더 큰 파도는 갈수록 커지며 더욱 심해져 배를 집어삼킬 듯 으르렁거린다. 

태풍의 한가운데에 빠져든 수정호는 파도에 떠밀려 갈팡질팡 흔들거린다. 커다란 몸집의 배는 중선 배보다 더 큰 덩치이지만 대양에서는 조그만 낙엽조각처럼 흔들거린다. 일엽편주란 이럴 때 빗대어 쓰는 말이다.

  무섭게 이글거리는 파도에는 아무리 능력 있는 제주선원들이 포진하고 있는 배라 할지라도 맥을 못 쓴다. 비실거리는 폼이 배삼룡 넉 다운 직전의 춤사위 같다.

  낮에는 그럭저럭 버텨왔지만 조금씩 어두워지자 사람들의 행동이 둔해지면서 새어든 물을 막아내기도 어렵게 했다.

굵은 빗줄기가 커지면서 강풍과 함께 몰아치는 소리가 벼락 때리는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온다. 가끔 하늘의 불빛이 반짝이며 내리치는 뇌성병력이 귀청을 찢어낼 듯 따갑게 들려온다.

  거친 바람은 뱃전에 서있는 사람들을 날려버릴 정도로 위협적이고 가히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제 43명 전원 생사의 갈림길은 악천후를 이겨내느냐 아니면 파도에 휩쓸려 물귀신이 되느냐다.

  이제 이들은 폭풍 속의 바다에서 생존의 격투를 벌려야 한다. 그런데 싸움터에 나서기도 전에 분열이 생겨 치고 박는 내란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조금은 늦었지만 태풍이 불어대는 것을 더 빨리 알아차리고 변해 가는 날씨에 대처해야 했는데 너무 둔하게 움직인 편이다. 조금씩 커 가는 파도의 크기가 산처럼 높아간다. 파도는 윗 부분이 소용돌이치면서 원을 그리며 꼬부리고 펴며 꼬아서 몰아친다.

  파도는 하늘을 찌를 듯 내리 꽂는 물소리가 간장을 서늘하게 한다. 더군다나 바람의 방향이 일정하질 못해 수정호가 어느 방향으로 밀려갈지 예측을 할 수 없고 파도는 얼마나 더 높이 올라갈지 두렵고 무서워 모골이 오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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