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돼지(고기) 수육'은 틀린 말이다. 사전엔 '수육'이 '삶아 익힌 쇠고기'를 뜻한다고 돼 있기 따문이다.

'수육'은 '숙육(熟肉)'에서 변한 말인데, 이때 '육(肉)'은 쇠고기만을 가리킨다. '육포'나 '육개장', '육즙'이나 '육회'에 나오는 '육'도 모두 쇠고기라는 뜻이다.

그러니 '돼지고기 수육'이라 하면 '돼지고기 삶은 쇠고기'라는 이상한 말이 돼버리는 것이다. 마치 이 세상에는 존재할 수 없는 '소 삼겹살'처럼…(요즘 '소 삼겹살'을 판다는 음식점들이 가끔 보이지만, '삼겹살'은 분명히 돼지고기에만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디 그런. 사람들에게 수육 먹으러 가자고 해보라. "쇠고기? 돼지고기?" 하고 반문이 돌아온다. 여름철이라면 "…개고기?"라는 말도 덧붙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미숫가루'는 잘 알아도 '미수'는 잘 모른다. "미수가 뭔지 아느냐"라고 물어보면 "무슨 미수? 살인 미수?" 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여름이면, '미수'를 아주 즐겨 먹는다. 얼음을 동동 띄워서 먹기도 한다. 도대체 미수가 뭐냐고? '미수'의 사전 풀이는 이렇다.

미수: 명사. 설탕물이나 꿀물에 미숫가루를 탄 여름철 음료.

이제 이해가 됐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오늘 아침만 해도 '미숫가루 탐 물", 다시 말해 '미수'를 마시고 출근한 사람이 여럿일 것이다.

하지만 누가 "오늘 아침에 미숫가루를 먹었다"라고 하지 않고 "미수를 먹었다"라고 하겠는가. 바로 여기에 말과 글을 다루는 사람들의 고민이 있다.

틀리긴 틀렸지만 제대로 쓰는 사람은 100명 가운데 1명이 될까 말까 한 말들. 대개의 교열자들은 이런 말들과 마주치지 않기를 원한다.

게다가 혹시 마주치면 속으로는 괴로워하면서도 짐짓 모른 체 해야 하기 일쑤이니…. 이럴 때 보면 확실히 '아는 게 병'이다.

(이진원의‘우리말에 대한 예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