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야마을은 덕룡산과 가까워 빨치산 활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했었고, 마을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입산자들에게 식량과 여타 필요한 물건들을 제공해 줘야 했다. 지형적 특성상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부역할 수밨에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낮에는 경찰이 저녁에는 빨치산의 지배를 받았던 이곳 주민들은 좌,우익의 이념적 대립 속에서 생존을 위해 양자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철야뒷산 학살의 원인은 빨치산에 부역했다는 사실이 경찰에 알려졌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이다.

"철야마을은 낮에는 여짝 사람, 밤에는 저짝 사람이여. 여기 덕룡산이 있잖아요. 거기에 빨치산 부대가 있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밤에 내려와서 소도 잡아가 올라가기도 하고 쌀 같은 것을 가지고 안 오면 죽인다니까 가지고 올라갔어."(양성일, 유족회 회장)

"거기가 완전히 귀빠진 데야. 저쪽 산 사람들한테 낮에는 경찰들한테 시달림을 받았어. 그래서 지서에서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해 새벽에 와서 싹 잡아가버렸지."(서상원, 유족)

"쌀이랑 보리랑 다 가져가 불고 그럼 우리는 아침에 디딜방아 찌어서 밥 먹고 학교에 가. 안 줄 수가 없어. 밤에는 그 사람들한테 주고 낮에는 이쪽에 주고 살라니까 쩌것어. 산 밑이라 그렇게 살았지."(정학균)

이 사건의 원인을 이야기 할때 선동마을 출신이면서 인공시절 봉황면 본주소장이었던 안학봉이 꼭 거론된다. 안학봉이 과거 빨치산 대장출신이고 분주소장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보복차원에서 학살을 저지르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철야에서 기억하는 안학봉은 빨치산 대장이었지만 영리하고 글과 그림에 능해 당시로 봐서는 똑똑한 인물로 지금까지도 평가받고 있다. 안학봉은 전쟁 중에 체포,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15년 정도 복역한 이후 출소하여 광주에서 지내면서 글씨를 써서 생계를 유지하다가 사망했다.

"6.25 때 우리 마을에 저쪽으로 머리를 쓴 대장이 한 명 있었어. 그 사람 때문에 피해를 봤지 않느냐고 생각해.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서운하게 맘먹는 사람이 많았어. 그 새끼 나오면 내가 때려 죽여븐다고... 어찌나 우리가 구박을 받았던지."(양성일)

만호정 앞에서 경찰에게 불려 나온 사람은 대략 50~60여 명 정도로 당시 현장목격자와 철야뒷산까지 끌려가 살아온 김영태씨는 기억하고 있다. 불려 나온 이들에게 번호가 부여됐지만 대충 한 곳에 모여 있게 하였다.
선동마을에서부터 도망갈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던 강상원씨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강씨를 데려온 한 경찰은 강씨의 번호가 만호정 앞에서 불렸으나, 모른 척 하였다. 실제 앞으로 불려 나간 사람은 40여 명 정도로 추정된다. 앞으로 불려 나온 사람들에게 경찰이 말했다.

"인민군이 산에 쌀을 숨겨 놓았다. 그걸 가지러 간다."

철야뒷산으로 가던 도중에 경찰은 아침을 먹으려고 정승렬 이장 집으로 갔다. 아침을 먹는 동안 주민들은 마당에 무릎이 꿇린 채 엎드려 있었다.

"내가 전쟁 직전에 이장을 역임했응께 경찰들이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었어. 사람들이 재정신이 아니더만. 사람을 죽일라는디 정신이 온전하겠어."(정승렬)

" 집에 와서 밥을 먹고 한참 있다 보니까 저기서 산을 넘어가더라고. 산을 넘어갈 적에 인민군들이 쌀을 숨겨 놓았는데 그걸 찾으러 간다고 하는거야. 그런줄로만 알았지. 동박굴재에서 쉬어 간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앉혀 놓았다고 그래. 거기서 죽인 거지."(강상원)

동박굴재로 끌고 가 사살

정승렬 이장 집에서 나온 경찰은 주민들을 다도면 접경인 동박굴재로 끌고 올라갔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서상국씨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끌려가자 철야뒷산 방죽 앞까지 울면서 경찰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 갔다.

"더 따라 오면 총으로 쏴버리겠다."

공명이 눈을 부릅뜨며 겁을 주자 서씨는 더는 경찰 뒤를 따라갈 수 없었다.

철야 뒤 방죽을 지나 다도로 넘어가는 동박굴재에 도착하자 경찰은 잠시 쉬어 간다면서 주민들을 산 능선에 앉혀 놓았다. 담배 한 대 피울 시간이 지나자 경찰은 여자와 노인들을 50미터 아래 골짜기에 밀어 넣고 나서 사격을 가했다.

"젊은 사람들은 위 능선에, 나이 든 노인들은 50미터 아래 움퍽한 곳에 앉히더니 갑자기 노인들을 향해 경찰들이 총을 쏴버리더군. 그걸 지켜보고 아연실색을 했지.

이제 죽었구나. 자포자기가 되더라구. 함께 있던 양창호씨가 나를 붙잡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울어 옆에 있던 서씨가 경찰 앞으로 나가더니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빌더라고. 그런데 공명이라는 경찰이 총을 쏴버렸어.

총에 맞은 서씨가 그 자리에서 숨져 산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어."(김영태,. 2001년 8월 철야뒷산 현장에서 증언, 78세)

골짜기에서 노인과 여자들을 죽인 경찰은 능선에 앉아 있는 남자들을 죽이려고 올라왔다. 이때 경찰 한 명이 서찬수씨에게 다가와 몰래 귀띔을 해주었다.

"살고 싶으면 도망가라."

서찬수는 이 말을 듣고 꾀를 냈다.

"배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기 가서 일을 보고 올게요."

화장실을 간척하고 그 틈을 이용해 서찬수씨가 줄행랑을 치자 그와 동시에 서상빈씨와 김영태씨도 함께 산 아래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서찬수와 서상빈은 갱갱굴쪽으로 김영태는 노가리재 쪽으로 젖먹던 힘까지 다해 내달렸다.

"누군지 모르겠는데 경찰 한 명이 서씨에게 다가가더니 살고 싶으면 도망가라면서 조용히 말을 해. 일제시대 때 징용으로 끌려갈 뻔했는데. 줄행량을 쳤어. 내가 달리기하면 빠지지 않거든.

그때도 무조건 뛰면 살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더라고. 그래서 냅다 달렸는데, 경찰 2명이 총을 쏘면서 따라와. 그런데 이상하게 총을 하늘로 향해 쏘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빨리 도망가라고 그런 것 같아. 산 두 능선을 넘어 노가리재로 올라가는데 밑에서 경찰 두 명이 다른 곳에다 총을 쏘더라니깐."(김영태)

양심적인 경찰의 도움으로 김영태, 서상빈, 서찬수씨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동박굴재에 남아 있던 주민들은 그 곳에서 최후를 맞아야 했다.

그 곳에서도 구사일생으로 김영희씨가 살아남았다. 키가 작은데다 체구가 적었던 그는 경찰이 쏜 총소리에 놀라 앞사람을 붙잡고 넘어졌다. 조금 있으니까 경찰이 생사를 확인하려고 총으로 쿡쿡 찌를 때 죽은 척했다.

한참 후 경찰이 돌아갔을 때 자신의 모습을 보았더니 온 몸이 피범벅이었다.그 뒤 김씨는 고향에서 살다가 1999년경에 숨졌다.

철야뒷산에 도망쳐 살아난 서상빈씨는 봉황지서의 재호출이 두려워 1년 이상 친척집에서 지내다 마을에 돌아왔으나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서찬수씨는 그날 충격으로 매일 술을 마시며 지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논에 물을 대러 가던중 고랑에 빠져 숨지고 말았다.

김영태씨는 그 후 광주로 이사가 살다가 50년만에 2001년 8월 유족회의 요청으로 철야 뒷산 현장을 방문한 뒤 2004년 7월에 숨졌다. 만호정에서 화장실 변기(옛날 재래식)에 몰래 숨어 살았던 강상원씨는 현재 서울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