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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진실에 복무’한 리영희 선생을 생각한다
이철웅 편집국장  |  njt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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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호] 승인 2021.01.11  05:5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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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웅 국장

새해 연휴 동안 리영희 선생의 《대화》를 읽었다. 2005년에 발간한 이 책은 ‘대화’ 형식으로 서술한 리영희 선생의 회고록이자 자서전이다. 2000년 말 선생이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글을 쓸 수 없어 문학 평론가 임헌영 씨가 질문자 겸 대담자 역할을 한 대화 형식의 회고록이다. 

선생은 1950년대 말부터 별세할 때까지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언론인이자 지식인이었다. 언론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극심한 요즘, 언론 탄압에 굴하지 않고 권력에 저항하면서 대한민국 언론인의 표상이 된 리영희 선생. 2021년 새해를 맞으면서 선생이 생각난다. 
 
분단 시대의 모범적인 사상가,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지성, 뼛속까지 언론인이었던 선생(1929∼2010)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어언 11년이다. 사진을 보거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코끝이 시큰해지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실천적 지식인으로 분단과 전쟁, 냉전, 독재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당신이 목격하고 고민한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동시대인의 무지와 비이성을 깨우쳐 준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나는 언론인으로서 초심이 흔들리고 방황할 때면 선생의 《대화》를 자주 꺼내 읽는다. “개인으로 살되 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선생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흩어지려는 나를 다잡곤 한다. 또한, “소크라테스처럼 자기의 지식과 사상을 부인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자세를 누구에게나 요구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는 한 사회의 대중이 오도된 사고방식이나 정세판단을 하고 있을 때 그것을 깨우쳐야 하는 것은 언론과 지식인의 최고의 책임이자 의무다”라는 선생의 말은 나에게는 언제나 채찍이었다. 
 
선생은 해방 이후 이 땅의 젊은이들이 야만적 권력자에게 과감히 맞서 싸울 힘과 용기를 주었다. 독재자들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던 시절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었다. 코페르니쿠스적 사고를 일깨워주었다. 
 
선생은 신문사에서 쫓겨나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으나 선생의 본령은 언론인이었다. 누구보다 언론이 갖는 가치의 소중함을 알았기에, 언론의 타락에 몸서리쳤고 곡필에 분노했다. 언론인의 정도를 절대 벗어나지 않으면서 ’기레기화‘ 하는 언론과 언론인을 심하게 질책했다.
 
선생은 “하나 같이 부당한 권력을 두둔하고 아부하는 구린내 나는 내용이었다. 그러기에 그따위 ’신문종이‘를 만들어 내는 신문인들이 감히 ’언론인‘(言論人)을 참칭 할 때 나는 그들을 ’언롱인‘(言弄人)이라는 호칭으로 경멸했다”고 일갈을 할 만큼 언론인과 언론의 타락을 우려하고 경계했다.
 
내가 리영희 선생을 처음 접한 것은 「전환시대의 논리」였다. 책이 발행되고 3, 4년인가 지나서 우연히 접한 이 책은 당시로써는 충격이었다. 한마디로 군사독재에 저항한, 냉전 도그마의 실체를 파헤친 위대한 철학책이었다. 그 엄혹한 시절에 박정희를 비롯한 수구냉전세력을 향한 촌철살인(寸鐵殺人)이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이나 주입된 지식과 180도 다른 측면을 보게 되면서 충격은 컸다. 책은 우리에게 기존의 논리, 이념, 가치들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갖게 했다. 독재정권이 주입한 냉전의식에 중독돼 있던 젊은이들을 흔들어 깨우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선생은 1970년∼80년대 젊은이들에게는 ’사상의 은사’로, 냉전 수구 세력에겐 ’의식화의 원흉‘으로 호명되면서 선생이 떠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가장 논쟁적인 인물로 남아 있다.
 
내가 리영희 선생을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인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나의 가슴에 깊게 새기게 된 계기는 「전환시대의 논리」 속편 격인 「우상과 이성」을 접하고서다. 특히 이 책의 머리글이 선생을 나의 영원한 글쓰기 ’스승‘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선생은 글쓰기란 우상을 파괴하는 이성의 회복 활동이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끝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 그러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괴로움 없이는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선생처럼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와 영광”을 위한 글쓰기는 언감생심이지만,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끝난다”는 선생의 글쓰기 철학에 근접하는 글을 쓰기 위해 나를 채찍질했다. 그래서 글이 흔들릴 때면 언제나 선생을 찾는다.
 
권력에 굴하지 않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추구했던 리영희 선생은 평생 4번의 해직과 5번의 구속이란 고난을 겪었다. 선생의 회고록 《대화》는 ‘변방’의 경계인으로서 세상에 눈을 떠, 언론인으로서 진실을 추구하고, 금기에 도전하는 지식인으로 살아간 인간 리영희의 결코, 평탄하지만 않았던 굴곡진 삶을 우리에게 보여준 인간승리다. 언론인으로서 권력에 저항했던 선생의 꼿꼿한 삶은 나에게는 항상 존경과 부러움 대상이었다. 
 
선생의 글이 쓰인 지 수십 년이 지났고, 대한민국이 민주화를 이룬 오늘날에도 그의 글은 유효하다.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탈진실’의 시대에 거짓 권력과 우상의 황혼 속에 진실을 간구했던 선생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그립다. 선생을 글들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것은 아직도 이 사회가 가면을 벗지 않는 우상이 버티고 서 있다는 증거다. 
 
“야만의 시대에 우리의 길을 비춰준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이 이 땅에서 지식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일인지를 생생하게 증언한 책. 사랑과 증오가 교차하는 극단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리영희가 자신의 육성으로 전하는 지식인의 삶과 사상에 관한 기록이다.”라는 이 책의 소개 글과 같이 선생의 회고록이자 자서전인 《대화》는 나에게 수시로 신들메를 다시 고쳐 매개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새해 벽두, 권력에 투항하지 않고 진실에 복무하며 우상에 도전한 대한민국의 영원한 언론인, 리영희 선생이 새삼 생각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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