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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는 무장군인들의 불평불만이 두려웠다. 수정호가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출항한 것을 전적으로 경차관 자신의 책임으로 떠밀며 탓만
늘어놓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조류에 떠밀리고 있는 배를 구하는 것이 더 급했다. 남의 탓을 할 것이 아니라 힘을 모아 어쩌든 추자도로
가야한다.
풍랑에 휩쓸린 닻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됐고 격군들이 죽음 힘을 다해 노를 저었지만 허사였다. 행여나 배를
움직일 수 있을까 몇 차례 더 저어보았지만 조수 따라 떠밀리는 배를 어쩌지 못했다.
위급함을 느낀 선원들이 아무
곳이라도 해안선에 배를 대려했지만 밀려오는 조수를 이겨낼 수는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파도에 떠다니는 배에 생명을 의지할 뿐이다.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눈발과 함께 바람이 너무 사나웠다.
떠다니는 배는 어디만큼 왔는지 짐작이 안 된다. 출항 첫날은
이렇게 뜬눈을 새우며 시련의 밤을 이겨야 했다. 망망대해 서해 속으로 표류의 시작이다.
배를 젓는 격군은 자기들끼리
모여 두런거린다. 노를 저을 일이 없어졌으니 서로 간에 헐뜯으며 지지고 보꾸며 할일을 떠넘기며 서로 나무란다.
수정호의 격군들은 각자가 어선을 부리는 자들로 수군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수군은 거의가 활쏘기를 전문으로 했지만 격군들은 노를 저었으므로
격이 조금은 떨어지지만 힘이 그들보다는 훨씬 넘치고 강했다.
수정호의 격군들은 능력 있는 항해사들이다. 그렇지만 날씨
때문에 손을 쓰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오늘의 파도는 어제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우박이 쏟아지며 몰아치는 바람이 얼굴을 쪼갤
듯 날카롭기만 하다.
망망대해에서 떨어진 나뭇잎처럼 나풀거리는 수정호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살아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그때였다. 선장이 상갑판으로 올라서더니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탄환(彈丸)같은 섬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갑판으로 올라갔다. 선장이 손가락질하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뒤집어 놓은 바가지처럼 검은 섬이 보이는 것이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말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섬이 분명했다.
"와- 섬이다. 섬, 섬."
섬에만 올라가면 살수 있다는 실 날
같은 희망이 그들의 목소리를 크게 했다.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자들도 있었다. 선장실로 모여든 이들은 보이는 섬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낸다면
난파선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고 항해할 거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제일 먼저 보이는 섬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배의 위치파악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 선장이 말을 꺼냈다.
"저기 보이는 섬이 무슨 섬인가?"
요동치는 파도에 수정호는 춤을 추고
선뜻 나서서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이들은 제주바다에서 나름대로 숙달되고 노련한 항해사들로 구성된 수정호
선원들이지만 불순한 날씨로 인해 상황파악이 안된 것이다. 답답한 나머지 지역연안의 뱃길에 경험 많은 선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소 흑산도가 아닐까?"
"글쎄요. 추자도에서 벗어난 시점이 어제 밤늦게였으므로
흑산도가 아닐까요?"
난다 긴다 하는 제주출신의 모든 선원들이 모여들었지만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소 흑산도(小黑山島)라는 사람들과
흑산도(黑山島)라는 사람들로 나누어졌다. 양편으로 나누어진 주장은 팽팽하게 맞서서 쉽사리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너무 멀리 보이는 섬의 모습이 아물거리며 확실하게 형체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말다툼을 지켜보던 선장이 끼어 들며
말했다.
"그럴 것이 없다. 어차피 우리들은 떠밀리는 배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므로 두 가지로 계산해서 평균을 내면 현재의 위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선실에 보관하고 있던 지도를 꺼내 위치 파악을 다함께 하기로 하고 계산에 들어갔다. 먼저 대흑산도는 지도에 그려진 대로
최고봉이 377m이다.
눈에 보이는 산을 목표물의 최고 높이로 보고 배에서 보았던 관측자들의 눈높이를 대입하면 된다. 따라서 시인거리(視認距離) 측정공식 표에
대입해서 계산하면 되는 것이다. 1노트는 1852m이므로 산출된 거리가 모두 85km의 거리이다. 수정호는 흑산도 서남단 85km떨어진 해상에서
표류하고 있는 샘이다.
이제 희미하게 보이는 길쭉하고 거무스레한 산이 소 흑산도라면 어떻게 될까? 오늘날은 가거도(可居島)로 불리는 소 흑산도는
독실산의 최정상 깃대봉(639m)을 수정호의 선원들이 보았다면 시인거리가 107km이다.
대흑산도의 깃대봉은 소 흑산도로부터 북동쪽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독실산 보다도 낮기 때문에 현재 배에서 보았던 섬은 소
흑산도의 독실산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이제 수정호의 위치가 떠오른다. 흐린 날씨 속에 길쭉하게 보이는 검은 섬은 소 흑산도의 서남지역에서 오차계산을 감안해서 최대로
많이 보더라도 약 100km정도 떨어진 위치다. 소 흑산도를 남서연안을 끼고 돌며 서쪽으로 떠밀렸으며 배가 정상이라면 한나절이면 섬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임을 밝혀낸 것이다.
궁금증이야 풀었지만 배가 말을 듣지 않고 꼼짝하지 않으므로 별다른 수단이 없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거친 파도를 헤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죽을힘을 다해도 떠밀리는 배를 당할 제주가 없었다. 더더구나 비가 주룩주룩 내리며 온몸을 으스스하게 만든다.
매서운 칼바람과 집체처럼 몰아치는 파도가 뱃전을 때린다. 바다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솟구치기를 계속한 배는 파도 따라
오르락내리락 춤을 춘다. 더구나 비는 그칠 기미가 없다. 풍랑이 가시처럼 폐부를 찌르고 사납기만 하다.
수정호는 심한 파도에 싸여 바다 속으로 숨었다 보이다를 반복한다. 요동치는 파도에 따라 춤을 추니 선원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찌해야 좋을지 갈팡질팡 우왕좌왕이다. 아비규환의 처절한 상황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 다음주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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