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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동백한송이햇살보고서
전숙  |  ss829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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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호] 승인 2020.03.29  20:5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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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햇살이 검은 빌레가름을 핥고 있었다. 바람에 쓸린 댓잎이 빈 마당에 받아 적은 슬픔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을은 불타 잊혀도 송악과 넝쿨은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다시는 무릎이 꺾이지 않도록 서로서로 깍지를 끼고 목숨줄을 엮고 있었다. 돌담을 낀 올레길에는 댕강댕강 목이 잘린 동백의 모가지들이 무더기로 귀향하고 있었다. 동박새가 끄덕끄덕 문상 중이었다.
 
 2.이 보고서는 삼만 개의 심장에서 꺼낸 선혈의 뼈를 모아 눈물의 아교로 맞춘 것이다. 이어붙일수록 눈물이 어룽져 뼈끼리 떼어놓을 수가 없다. 엉긴 주검들… 무더기로 건널 수밖에 없는 강물은 실종된 슬픔이 범람해 폭포. 내리꽂히는 폭포는 붉은 통곡, 산은 불타는 공포, 깃털이 뽑혀 날지 못하는 새, 모가지가 잘려 피어나지 못한 꽃. 노을의 안색은 붉은 수수밭, 눈 그늘에는 만근의 아픔이 내려앉아 있다. 슬픔은 정자나무가지처럼 뻗어나가 울음의 꼬리가 보이지 않았다.

 3.나랏님은 백성의 핏방울을 받아먹고 백성의 뼈로 별장을 지었다. “가혹하게 탄압하라”는 어명은 태풍으로 진화했다. 태풍의 습성은 제 뼈도 부러뜨린다는 것. 백성들은 살아있다는 이유로 과녁이 되었다. 바람 부는 대로 밟히는 하르방, 할망, 물애기, 비바리, 아지망, 소나이가 억새밭처럼 무너졌다. 불쏘시개가 된 백성들은 속수무책인 들불처럼 타들어갔다.

 4.마을을 지키던 팽나무가 턱이 부서져 새들이 울며 날 때도 태풍은 징글맞게 웃고 있었다. 태풍은 쌍끌이어선처럼 제주 앞 바다를 바닥부터 긁어서 그물로 옭았다. 가혹한 태풍에 휩쓸린 어미들은 죽은 아이를 가슴에 안고도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 목울대를 틀어막는 공포. 마파람이 바들바들 떨며 오줌을 지렸다. 도려내고 싶은 시간의 갈피에 흰 울음이 쌓여갔다. 쌓인 슬픔이 너무 단단해서 만년은 햇볕을 쬐어야 녹아내릴 것 같았다.
 
 5.태풍은 맹독이 소진되자 결국 소멸하였다. 지독한 독감 같은 북풍이 물러가고 있었다. 돌아온 햇살이 침묵뿐인 빌레가름을 핥고 있었다. 봄바람이  태풍 이전의 페이지를 한 송이 한 송이 아무리 돌이켜도 공백, 공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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