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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헤지아(parrhesia)
이철웅 편집국장  |  njt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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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6호] 승인 2020.03.01  21: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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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웅 국장
“이의 있습니다” 1990년 1월 민주자유당과의 통합을 결의하는 통일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노무현이 손을 들고 외친 말이다. 만일 그가 3당 합당(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이라는 ‘야합’에 몸을 실었다면 그의 정치역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적어도 1990년대의 부산에서 거듭 낙선하는 처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통합당의 김영삼 밑에서 3, 4선 국회의원에 장관도 하면서 이른바 ‘잘 나가는’ 정치인이 되었을 것이다.

‘아니오’를 말하려면 투철한 소신도 필요하지만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용기가 없어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아니오’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파르헤지아(parrhesia)다. 미셀 푸코(1926∼1984)가 에이즈 병마 속에서도 마지막 3년 동안 혼신의 힘으로 탐구했던 철학적 주제다.

영어로는 ‘Free Speech’로 번역되는 파르헤지아는 풀어 쓰면 ‘솔직하게 숨김없이 진실 말하기’를 뜻한다. 하지만 진실을 말한다고 해서 파르헤지아인 것은 아니다. 파르헤지아란 자신이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을 처벌이나 갖가지의 불이익 등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파르헤지아스트’라고 한다.

파르헤지아 하면 최근에 떠오르는 이가 또 한사람 있다. 김동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단행한 검찰인사에 대한 날선 비판이다. 김 판사는 SNS를 통해 “정치적 상황이나 힘의 논리에 의해 법치주의가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며 검찰조직에 대한 인사발령은 헌법정신에 위배된 것”이라며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장관을 향해 거침없는 일갈을 날렸다. 김 판사의 추미애 장관을 향한 몸을 사리지 않는 비판이 새삼 회자되는 것은, 김 판사의 권력을 향해 ‘파르헤지아’를 실천하는 모습을 전 정권에서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김 판사는 과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사건 무죄판결을 정면으로 비판해 중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다. 보수, 진보정권 가리지 않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김 판사를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파르헤지아스트’라고 부른다고 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민주적 시민에게 그리고 민주사회의 지도자가 되려는 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으로서의 파르헤지아는 진실에 대한 용기, 즉 진실과의 대면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그 진실을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의미한다. 진실과 대면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앞뒤 가리지 않는,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파르헤지아가 가능해지려면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진실을 말해야 하고 두려움이나 성역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파르헤지아가 왜 종종 언론의 자유로 번역되는지 그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푸코는 민주주의가 파르헤지아의 실천의 조건이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파르헤지아를 실천하기 가장 어려운 것도 민주주의라고 말한바 있다.

타자가 불편해하는 숨기고 싶어 하는 사항을 숨김없이 직언하는 성질의 것이기에, 도덕적 의미가 발생한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침묵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발언하는 것이며 자신에게 진실하고 싶다는 도덕적 동기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 목숨을 걸고 하는 상소(上疏)나 책문(策問)과도 비슷하다 하겠다. 

민주사회는 건전한 비판을 통해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성장하고 발전한다. 권력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유무형의 압력과 불이익 그리고 두려움까지를 기꺼이 감수하면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 안타깝게도 나주라는 지역사회는 이를 찾아볼 수가 없다.

나주에서 파르헤지아를 실천해야 할 위치에 있는 지역 언론, 시의원, 시민단체, 오피니언리더 등 거의 대부분이 파르헤지아와는 거리가 멀다. 나주권력과 그 주변부 집단에 야합하지 않고 그들을 향해 “이의 있다”, “아니다”라고 반기를 드는 것은 바로 그들의 이권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한다.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언론은 언론대로, 시의원은 시의원대로,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오피니언 리더는 오피니언 리더대로 나주권력과 그 주변부집단과 얼키설키 ‘먹이’로 얽혀 있어 파르헤지아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그들과 부화뇌동 했기에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자괴감, 눈 밖에 나면 당장 경제적 불이익을 당한다는 불안감, 권력과 멀어진다는 두려움 등이 복합돼 그들과 다른 의견을 갖고 있어도 그에 대해 표현을 못한다.

나주에는 이론적으로는 어디에다 내놓아도 흠잡을 데가 없는 ‘민주시민’이 많다. 찻집에서나 대폿집에서 하는 얘기들을 들어보면 모두가 ‘파르헤지아스트’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나주권력은 예외다.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다. 죽은 권력이나 나주권력을 제외한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정의의 사도처럼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이들은 파르헤지아스트다. 그런데 누군가 나주권력을 비판하면 이들은 주위를 살피면서 바로 ‘모르쇠’ 모드로 전환한다.

부당한 권력에 대한 비판의 욕구는 있으나 그 비판이 바로 먹이의 유무와 직결되는 관계로 입을 닫는다. 또한 사적인 자리에서는 비판의 날을 세우지만 공적으로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사이비 파르헤지아스트’다. 나주라는 지역사회의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유사 이래 동서고금의 권력은 진실을 말하는 이들을 문제를 일으키는 자, 기존질서를 어지럽히는 자, 불평불만자 등으로 몰아가며 권력을 지탱해왔다. 나주도 예외는 아니어서 나주권력과 그 주구들은 그들을 향한 비판에 대해 ‘뭘 주지 않으니까 씹는다’는 원색적이고 터무니없는 비난으로 진실을 덮으려 한다. 권력을 이용한 여론조작과 힘의 논리로 파르헤지아의 싹을 잘라버린다. 지역사회에서 파르헤지아를 실천하기 어려운 이유다.

나주발전과 나주권력의 도덕성 회복을 위해서는 파르헤지아가 필요하다. 상식마저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요즘의 지역사회에서 부당한 권력과 그 추종자들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우기에는 먼저 후환이 두려울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김동진 판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나주는 필요하다. 부당한 권력의 그물망이 갈수록 촘촘해지는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파르헤지아를 품은 ‘비판적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느냐를 우리는 이제 고민해야 한다.

나주에 파르헤지아스트가 설 자리를 잃고 사이비 파르헤지아스트가 그 자리를 채운다면 지역사회는 희망이 없다. 성역을 둔 비판은 파르헤지아가 아니다. 오늘의 나주에서 지역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그리고 지역 언론에게서 파르헤지아를 찾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인가. ‘파르헤지아’. 작금의 나주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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