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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은 체 게바라 52주기
이철웅 편집국장  |  njt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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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호] 승인 2019.10.07  01: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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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웅 국장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10월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체 게바라(1928∼1967)다. 본명은 ‘에르네스도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 꽤 긴 이름이다. 체(che)는 아르헨티나에서는 친구 또는 동지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게바라가 멕시코에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난 무렵부터 그런 애칭이 따라다녔다고 전해진다. 체 게바라는 프랑스 철학가 장폴 사르트르가 “우리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표현했던 인물이다. 세계적인 석학으로 실존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그가 한 말이기에 허튼소리는 소리는 아닐 듯 싶다. 

나는 20여 년 전부터 10월 9일이면 체 대한 혼자만의 의식을 치른다. 의식이라 해봤자 체 사진의 묵은 때를 닦고 털어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매년 그렇게 해오고 있다. 10월 9일은 체가 52년 전인 1967년 10월 8일 남미 볼리비아 산골 마을 라이게라에서 전투 중 볼리비아 특수부대에 포로로 잡혀 총살된 날이다. 나는 볼리비아에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볼리비아도 우리의 10월처럼 그곳이 가을인지는 모르겠지만 10월이 오면 ‘체 앓이’를 한다.

사무실에 걸려 있는 체의 사진은 쿠바정부 공식 사진작가였던 알베르토 코르다가 1960년 3월 5일 촬영한 ‘혁명가의 초상’이란 제목의 사진이다. 장발에 별이 박힌 베레모를 쓰고 또 다른 세계를 쳐다보는 듯한 그윽한 눈빛의 초상 사진이다. 이 사진은 1960년 아바나 항구에서 폭발한 화물선 쿠브르호 희생자 추모집회 때 찍은 사진이다. 코르다가 체의 초상사진을 찍었던 것은 우연이었다. 코르다는 추모집회 연단에 오른 카스트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일순간 체의 모습이 렌즈에 잡혔다. 셔터를 눌렀다. 세기의 사진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진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은 순전히 미국 ‘덕분’이다. 미국은 체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볼리비아 기자가 찍은 사진을 배포했다. 하지만 그의 지지자들은 세탁장 들것 위에 놓인 초라한 시신 사진 대신 7년 전 쿠바에서 찍힌 체의 사진을 찾아냈다. 이탈리아 출판업자가 1967년에 체의 기록 〈볼리비아 일기〉 표지에 쓸 만한 초상 사진을 찾기 위해 코르다를 찾아갔다가 구한 사진이다.

〈볼리비아 일기〉표지 이후 체의 초상 사진은 수 천 장씩 인쇄됐다. 코르다의 사진을 통해 널리 알려진 체의 혁명을 향한 의지는 무기력해진 유럽의 젊은이들을 일깨웠고, 1968년 5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볼리비아 일기〉이후 유럽의 젊은 청년들은 ‘다른 세상도 가능하다’는 체 신념을 추종하기 시작했다. 1968년 유렵을 휩쓸었던 스튜던트 파워(student power) 당시 눈에 띄는 시위 도구는 혁명가들의 초상 사진들이었다. 체의 초상 사진이 인쇄된 피켓은 레닌, 트로츠키, 룩셈부르크, 호찌민의 초상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게바라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만에 체의 초상 사진은 저항과 혁명, 가치전복 아이콘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내가 체 게바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그 이전에는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혁명을 같이한 아르헨티나 의사 출신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1997년 갑자기 우리나라 TV와 신문에 체의 초상 사진과 함께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1997년은 체가 사망한지 30주기가 되는 해였고, 대한민국이 김영삼의 문민정부였다는 것과 맞물리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유스러웠다는 점에서 그동안 금기 시 되어온 체에 대한 조명이 이루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미 제국주의의 횡포에 맞서 당당히 맞서 싸우다 자신을 남미의 산골에 불살라버린 사람. 그 후 나는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체의 전기를 비롯해 그와 관련된 서적은 거의 빼놓지 않고 읽었다. 지금도 장 코르미에가 지은 〱체 게바라 평전〉을 그가 생각날  때마다 읽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내 가슴에 자리 잡은 단 한사람의 이국인(異國人)이다.

1928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체는 1953년 의사면허를 받는다. 천식에 시달리는 의사 체를 혁명가로 만든 계기는 과테말라에서 발생한 개혁에 반하는 군부 쿠데타였다. 체는 1953년 7월 세 번째 여행을 떠난다.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코스타리카, 온두라스, 엘살바도르를 돌았다. 이 세 번째  여행이 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체는 앞서 두 차례 남미 여행 뒤 헐벗고 가난한 민중을 돕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세 번째 여행 도중 과테말라 사태를 보고 의사 대신 혁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체는 의사면허를 딴 이듬해인 1954년 멕시코에서 의사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1955년 운명적으로 쿠바 망명객 라울 카스트로를 만난다. 1956년 11월 체는 카스트로를 비롯한 82명의 게릴라들과 함께 ‘그란마’라는 요트를 타고 쿠바에 상륙, 게릴라전을 펼친다. 의사 체가 무장투쟁에 나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1958년 수도 아바나에 입성해 새 정부를 세운다.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공산 쿠바정부다.

이후 체는 쿠바정부의 여러 요직을 거치다 1965년 4월 자신의 사무실 책상에 “쿠바에서 내가 할 일은 모두 끝났다”는 내용의 편지만 남기고 쿠바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체는 쿠바를 떠나 아프리카 콩고로 향했다. 새로운 혁명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으나 실패했다. 체는 남미 볼리비아로 옮겨 볼리비아 해방을 위한 산중 게릴리전을 펼쳤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고  불같은 생을 마쳤다. 39세였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의 기자는 체의 죽음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미국에 대항한 전투에서 전 세계의 급진적인 군대를 지휘하려고 시도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이제 그는 죽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이 그와 함께 사라질 수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남미의 피압박민족을 위해 온몸을 불살랐던 이상주의자 체 게바라의 삶은 “모든 것이 모든 것 안에 존재 한다”는 누군가의 말을 상기시킨다. 의사, 혁명가, 게릴라, 작가, 시인, 군대의 지휘관, 대사, 장관, 한 가정의 아버지로 살았던 체는 샤르트르의 말처럼 인간이라는 완전한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존재다.

체가 죽은 지 52년이 지난 지금, 동시대인들의 마음속에 신화로 떠돌고 있는 그는 아직도 여전히 신선하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체 게바라, 그는 살아서는 영웅이었으나, 죽어서는 전설이 됐다. 체는 2019년까지도 나의 곁에서 아니 세계인의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이제는 전설이 된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 체 게바라. 영원한 게릴라, 총을 든 의사 체(che), 스산한 가을바람과 함께 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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