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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대학의 조센징》 정종현(지은이)
이철웅 편집국장  |  njt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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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호] 승인 2019.07.19  16:5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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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대학 조선인 유학생 1,000여 명에 대한 최초의 기록

《제국대학의 조센징》은 “근대 일본의 엘리트 육성 장치”였던 일본 본토의 제국대학에 유학한 조선인들을 추적한 책이다. 유학을 떠난 이들은 누구이고, 왜 떠났는지 그리고 제국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돌아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본다.

제국대학은 일본 본토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으며 조선인들에게는 어떤 대상이었을까? 제국대학은 당시 일본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면서 국가 관료를 양성하는 수급처였다. 국가가 직접 경영하는 대학이었기에 제국대학은 특권적 위상을 부여받았다. 이를테면 ‘학사’라는 타이틀도 제국대학 졸업생에 한정된 것이었다. 최고의 학문 수준을 갖춘 제국대학의 교수들은 관료에 버금가는 대우와 사회적 존경을 받았다. 이런 특권적 지위를 지닌 제국대학에 조선인 유학생이 입학한다는 것은 대단한 영전이었다.

   
 
그 시절 제국대학의 위세는 대단했다. 지금이야 사립인 와세다대나 게이오대가 ‘명문’으로 통하지만 당시 이들 학교는 ‘전문대학’으로 구분됐고 졸업생도 ‘학사’라는 칭호를 얻을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에도 제국대학을 나온 한국인의 파워는 대단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권력을 움켜쥐었다. 가령 남북한의 헌법을 만드는 데 각각 핵심적인 역할을 한 유진오와 최용달은 경성제국대학 출신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국회의원 30명과 법률 전문가 10명이 완성한 초안이 바탕이 됐는데, 전문가 10명 중 6명이 제국대학을 나왔다.

해방 이후 독립 국가를 세우는 데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그중 좌우를 막론하고 근대 일본의 엘리트 육성장치였던 일본 본토의 제국대학에서 유학했던 조선인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상당수가 제국 일본의 관료로 복무하며 친일을 했거나, 제국의 첨단 지식과 관료 경험을 밑천으로 해방 후에도 남북한의 행정, 경제, 사법, 지식 체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물론 제국대학에 유학 갔던 이들이 모두 출세를 염원한 관료가 되지는 않았다. 급진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고 변혁운동에 뛰어든 이도 있었고, 세속적 성공과 시대적 한계 사이에서 갈등한 이들은 학문으로 파고들었다. 이들 모두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사회에 유무형의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여전히 대한민국에 유령처럼 떠돈다.

책에 실린 사례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케이스는 조선 최고의 기업가였던 김연수다(그는 고려대 설립자인 김성수의 동생이기도 하다). 김연수는 “자기 땅만 밟고서도 전라도 전역을 다닐 수 있다”던 대지주 집안 출신으로 조선인 최초로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고, 이후엔 경성방직(이하 경방)을 세워 큰 성공을 거뒀다. 경방은 “삼성과 현대, SK, 한화 등의 창업자들이 자기 사업을 막 일구기 시작할 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한국형 재벌의 기원”이었다.

핵심은 김연수의 경방이 어떻게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느냐다. 김연수는 제국대학에서 훗날 식민지 재계와 정계를 지배할 일본인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사업가에게 ‘네트워크의 힘’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는지는 불문가지일 것이다. 김연수는 돈과 권력을 얻었고 이런 힘은 자식에게 유전됐다.

김연수의 둘째 아들 김상협은 도쿄제국대학 정치학과를 나와 고려대 총장과 문교부 장관을 거쳐 전두환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우리네 근현대사에서 “제국대학은 한국사회의 지배 엘리트를 재생산하는 제도”로 작동했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제국의 지식으로 제국에 저항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저자는 이들의 굴곡진 인생 스토리를 풀어내면서 제국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여학생들 이야기까지 들려준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국대학과 조선인 유학생 스토리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 책은 일제 치하에서 일본으로 유학 갔던 조선인들이 왜 유학을 떠났으며, 가서 누구에게 무엇을 배웠고, 돌아와서는 대한민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국문학자인 인하대학교 정종현 교수가 교토에서부터 10년간 여기저기 흩어진 기록을 더듬고 고뇌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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