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그 너머의 의사

▲ 이철웅 국장

두 달여 넘게 ‘투병(鬪病)’ 중이다. 투병이라고 하면 어감 상 중병이 들어 무진 고생을 하는 것 같은 뉘앙스가 풍기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300만 명이 고생한다는 요추 추간판 탈출증, 일명 ‘허리 디스크’와 ‘전쟁’중이다. 벌써 두 달 이상을 마누라 차에 의지해 출퇴근 중이다.

나의 허리 디스크 증상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종일 앉아 있거나 누워 있으면 통증이 없는 데 일어서면 왼쪽 엉덩이 부분의 통증이 심해 똑바르게 서지 못한다. 오랑우탄과 같이 엉거주춤 허리를 굽혀서 걸으면 통증이 완화돼 그렇게 걸을 수밖에 없어 두 달 동안 이상을 사무실 출근과 진료 외에는 바깥출입을 거의 자제하고 있다.

인생사 ‘폼생폼사’인데 걷는 자세가 미관상 좋지 않아 일주일에 5일 정도를 즐겨 찾는 술도 잠시 중단한 상태다. 사무실과 병원진료외의 외출은, 영산포도시재생 아카데미에 뻑뻑 기다시피 해 겨우 잠깐 참석한 것 외에는 거의 없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장기간 투병은 처음이다. 60평생 병원이라고는 예방주사나 감기 때문에 가뭄에 콩 나듯 들르는 정도였다. 무식한 행위지만 이제까지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아보지 않았다. 이래저래 ‘모르면 약’이라는 말로 자위를 하며 건강검증까지 외면할 정도로 병원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나이에 비해 과할 정도의 술을 마셔대면서도 운동이라고는 숨 쉬는 것밖에 하지 않았지만 타고난 체질인지 병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어지간하면 참아버리는 관계로 병원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랬던 것이 두 달여 동안 병,의원(한의원 포함) 13군데, 활기원 4군데 등 17곳을 전전했다. 좋다고 입소문이 난 곳은 거의 전전했다. 가볍게 생각하고 자가 치료를 하다가 통증이 심해져 관내 의원 몇 군데를 다녔지만 병은 호전되지 않았다. 엑스레이 찍고 근육주사 맞고 처방전 받아 약을 복용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처음에는 병명도 모른 체 관내 의원과 한의원 그리고 일명 뼈를 맞춘다는 이름도 각양각색인 척추교정 하는 곳 등을 전전했다. 그렇게 보름정도를 보냈다.

병에 대한 차도가 없어 망설이다 유명하다는 상무지구에 있는 모 척추전문병원에서 MRI를 찍었는데 요추 추간판 탈주증, 즉 ‘허리 디스크’란다. 4번 5번 사이의 디스크가 탈출해 신경을 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불필요한 진료로 보름동안을 허송세월 했다.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기까지 나주에서만 다닌 병,의원(한의원 포함)이 6곳 활기원이 4곳이었다.

병,의원 어느 곳에서도 디스크 판정은 없었다. 이게 관내 병,의원들의 의료수준이라면 심한 표현일줄 모르겠지만 필자로서는 그렇다. 후에 책을 보고 안 일이지만 필자의 병은 의사가 조금만 신경 써서 관찰했다면 허리 디스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는 중상이었다. 특히 병명(病名) 판정은 뒤로 하더라도 환자를 대하는 일부 의사들의 고압적인 태도와 서비스 그리고 환자를 상품 취급하는 것 같은 성의 없는 진료에는 치료를 떠나 분노마저 잃었다.

그런데 MRI를 찍은 광주의 모병원은 더욱 가관이었다. 한마디로 장사꾼이 되어 버린 ‘히포크라테스의 환생’이었다. 환자의 불안한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수술을 적극 권했다. 우리는 아픔과 고통을 동반하는 질병을 얻게 될 때, 당연하게 병원과 의사를 찾기 마련이고 그 공간으로 향하고 그 공간에 존재하는 그들을 찾게 됨으로써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거나 지우거나 혹은 해소하기 위한 진료와 진단 그리고 처방을 받게 된다. 물론 때로는 수술이라는 과정을 겪을 때도 있다. 그러나 수술을 권하는 의사의 행동이 숫제 ‘바람잽이’ 수준에 ‘장돌뱅이’ 행위였다.

수술을 권하면서 한다는 말이 “수술 환자가 많이 밀려 있어 조만간 수술 일정을 잡을 수 없을 것 같다”라고 한 자락을 깔면서 환자의 조급하고 불안한 심리를 최대한 부추기며 일단 대기실에서 기다려 보란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대기한지 1분도 되지 않아 간호사가 내 이름을 호명하더니 내일 수술 일정이 잡혔으니 수속을 하란다. 어이가 없었다. 방금 전 컴퓨터 이곳저곳을 뒤적이며 내일 당장 큰 수술이 몇 개 잡혀 있다며 바쁜 수술일정 운운했던 것은 한마디로  ‘바람’이었다.

내 생각엔 불안한 환자의 심리상태를 극대화시켜 ‘바람’을 실컷 잡았던 것이다. 이건 의료행위가 아닌 ‘호객행위’였다. 수술을 하는 쪽으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순간 농락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수술을 포기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현재 수술을 하지 않고 주사치료 및 침 그리고 운동 등으로 많이 호전되고 있다.

내가 투병하면서 찾은 병, 의원 13군데 의사들을 뒤돌아 봤을 때 두세 명 빼고는 정체성이 의심되는 의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의사의 정체성이란 결국 의사의 의사다움을 의미한다. 의사다움이란 허구적인 ‘허준’ 또는 장기려 선생이나 이태석 신부와 같은 ‘이상적인 의사’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기능하는 바람직한 의사의 모델을 말한다. 우리사회는 이상과 모델을 혼동하는데, 장기려 선생이나 이태석 신부는 도덕적 이상 내지 도덕적 영웅은 될 수 있겠지만, 모든 의사가 그렇게 살 수도 없고 그렇게까지는 요구하지도 않는다.

나는 MRI 촬영한 디스켓을 지인이 근무하고 있는 서울 모병원에 보내 판독을 의뢰한 결과 수술을 하지 않고 주사치료가 가능하다는 결과를 통보받고 일주일에 한번씩 3주째 주사치료를 받고 있는데 많이 호전되고 있는 중이다. 모처럼 찾은 병,의원들에서 일부 대한민국 의사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