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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으로 산다는 것은
이철웅 편집국장  |  njt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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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호] 승인 2019.03.15  19: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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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웅 국장
얼마 전 이제는 은퇴할 시기에 있는 모 정치인을 만났다. 5년 만이었다. 5년 전만 해도 동갑내기로 서로가 괜찮은 술친구로 자주 만나던 관계였는데 사소한 정치적 문제로 ‘개 닭 보듯’하고 지내왔다. 2014년 나주 지방선거 당시 특정 시의원의 전략공찬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하고 의절하다시피 하고 살아왔는데 다른 사람을 시켜서 소주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전에도 몇 번 우연히 마주치면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고 했지만 내키지 않아 그냥 얼버무리고 지나쳤는데 이번에도 거절하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만났다.

평소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거의 나가지 않는데 내가 거절하지 못할 사람을 시켜 전화를 했다.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내가 전화하면 안 나올 것 같아 전화를 시켰다”며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주출신 정치인 중에서 지역민들로부터 가장 긍정적 평가를 받는 정치인답게 가식이 없고 아주 해맑은 친구다. 불편한 관계가 둘의 문제가 아닌 남의 일에 끼어들어 ‘공판’(公判)을 하는 나의 오지랖 때문이었다는 생각에 순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가 말했다. “우리 나이를 논어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 하여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 종심(從心)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부드럽게 살자”는 유의 얘기를 했다. 알기 쉽게 말하면 남과 척지지 말고 서로 이해해가며 살아가자는 얘기였다. 좋은 말이다.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그 다운 주문이었다.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특정인과 화해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동년배 친구로서 그의 마음과 생각은 그의 마음대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싶다. 그러나 언론인이라는 직업을 떠나서라도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나쁜 놈은 나쁘다’고 지적하고 시정시키려는 누군가는 이 사회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지론이기에 선뜻 수긍하지 않았다. 친구의 말처럼 ‘내가 무슨 나주를 구하겠다’라고 가끔은 자조(自嘲)도 하지만 언론인이라는 사명감이 언제나 발목을 잡는다.

우리가 성인이라고 추앙하는 공자(孔子)도 불의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그에 합당한 응징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공자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군자(君子), 인인(仁人), 혹은 인자(仁者)와 같은 용어를 써서 표현했다. 그런데 옛날에도 그런 훌륭한 사람은 누군가를 대놓고 미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통념이 팽배한 것 같다.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군자도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까?" 이에 대해 공자는 답한다. "미워하는 게 있다.“ 누군가 공자에게 “덕으로써 원한을 갚으면 어떨까요?”라고 묻자, 공자는 되묻는다. “그럼 덕은 무엇으로 갚으려고 하느냐?” 공자의 입장은 단호하다. “불의한 사람들에게 무조건 잘해주거나 화해를 도모하려 하지 말라. 원수에게는 잘해줄 것이 아니라, 그에 합당한 갚음을 해주어야 한다.”고 일갈 한다. 공자의 이상형은 이토록 줏대가 없이 두루뭉술 남의 비위나 맞추는 무골호인(無骨好人)과 거리가 멀다.

논어에 따르면, 모든 이로부터 사랑받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이들이 좋은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좋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나쁜 사람이 미워하는 것이 낫다.(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제대로 된 사람은 나쁜 사람을 미워할 뿐 아니라, 나쁜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기 마련이다. 공자는 어설픈 지식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저 사람처럼 모나게 살지 마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저 사람처럼 모나게 살지 마라”에서 “저 사람”을 맡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공자이다. 공자에 따르면 “비타협적으로 살 때야 비로소 악한 일에 가담하지 않을 수 있다”(惡不仁者, 其爲仁矣, 不使不仁者加乎其身)고 했다.

당시, 세상을 벗어나 자연으로 숨어든 자연주의자들은 공자를 비웃었다. 공자는 세상이 정의롭기보다는 더럽고 추악한 일이 많지만, 오히려 더더욱 세상 속으로 참여하여 인간 사회의 무너진 질서를 고치고 바꿔서 새 질서를 이룩하는 인간의 길이 있다고 보았다. 공자에게 불의에 대한 무관심은 지식인으로서 옳지 않은 행동이었다.

나도 친구의 말처럼 종심(從心)의 나이에 두루뭉술하게 살고 싶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금성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하며 나주권력과도 좋은 관계 유지하면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고 싶다. 그러나 공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역사회의 지역 언론인으로서 불의에 대한 무관심과 ’모르쇠‘는 직무유기이며 기자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자존심 문제다.

소크라테스처럼 자기의 지식과 사상을 부인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자세를 누구에게나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지역사회의 대중이 오도된 사고방식이나 특정사안에 대해 선악을 가리지 못하고 있을 때 그것을 깨우쳐야 하는 것은 지역사회 언론과 지식인의 최고의 책임이자 의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것이 불변의 진리가 되고 있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아니다. 생존만이 적자인 것이다. 다윈 진화론의 핵심인 '강한 개체가 아니라 변화에 적응을 잘하는 개체가 살아남는다'와 일맥상통하는 이 개념은 비단 자연 생태계뿐 아니라 사회구성체에도 적용되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언론인은 살아남아서 강한 자로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강하기 때문에 살아남은 자로 기억되어야 한다. 5년 만에 만난 친구의 조언을 부정하고 싶진 않지만, 공자의 “비타협적으로 살 때야 비로소 악한 일에 가담하지 않을 수 있다.”(惡不仁者, 其爲仁矣, 不使不仁者加乎其身)는 말을 따르고 싶다.

지역 언론과 지역 언론인, 생존을 위한 변화를 추동해야 할 때다. 권력과 맞서지 못하고 아젠다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지역 언론은 지역사회에 존재이유가 없다. 사회적 해법도 필요하겠지만 언론 스스로 권력이 던져주는 고깃덩어리를 끊어야 산다는 절박한 현실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자는 사명(使命)을 다하다 사명(死命)을 다 할지라도 ‘하여가(何如歌)’는 부르지 않아야 하며, 기자라는 신념을 바꿀 바에는 직업을 바꿔야 한다. 기레기(기자+쓰레기)는 되지 말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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