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느껴지십니까 ?  저는 올해는 엘리뇨 현상으로 따뜻한 겨울을 나니 입춘날에도 입춘답지 못했던 같습니다. 그리하여 작년 입춘날 내린 소복한 눈이 금새 녹아 내리는 것을 기억했더니 대지의 봄기운에 경외감이 일더이다.

우리들이 매사에 범상하게 살다가도 고난이 닥치거나 기쁨이 왔을 때 글을 쓰게 되면 은연중에 당시의 분위기가 녹아 들어가는 순리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의 3편의 글들이 그러한 분위기가 강한 시였다고 생각도 됩니다. 이번의 시도 일상사에서 느끼는 감정을 표 한 것도 있지만 자신의 기개와 뜻을 표현한 글도 있습니다.
 
시를 볼까요 한겨울을 지낼려면 한 낫가리 정도는 있어야 따뜻한 한겨울을 날수 있지 않겠습니까 ? 그러니 겨우살이 준비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부산한 손길은 어느집이나 필요조건이었겠죠

이 양반 땔감 구하는 장면을 보면 늙은 누렁이 등거리에 가득히 땔감을 싣고서 힘없는 누렁이 소걸음을 일초라도 당겨 볼려고 채찍으로 때림니다.. 그런데 요즘 생각처럼 달구지가 아니죠 소등에는 물건을 실을 수 있도록 특별히 고안된 등걸이를 거치고 그 위에 나뭇짐을 싣고 있습니다. 뒷구절의 내용은 1618년 광해군 때의 고초를 생각하면 쓴 것이 아닌가 합니다.

▲ 겨우살이 준비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부산한 손길은 어느집이나 필요조건이었겠죠

땔감의 탄식(載薪歡)
生薪滿載老牛背 새 땔감을  늙은 소등에 가득 싣고서
執策小兒前後駈 채찍을 든 아이가 앞뒤에서 재촉하네
閑放桃山如未得 한가롭게 도산에서 지낼 신세가 아니라면
不如歸臥大梁屠 차라리 돌아와 대량의 백정으로 숨으리

이 시는 추운날 새벽의 모습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숫닭의 횟치는 소리에 잠에서 깨보니 길잃은 기러기 한 마리가 강변으로 내려앉는데 그곳이 금탄이어요 금탄이 어디인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추측하건데 현재의 나주대교 부근이 아닌가 합니다.

시절이 어느때인지 시에서 알려주고 있죠 초겨울로 보입니다. 기러기가 겨울을 나러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다고 하기 때문에 시기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겨울이 아니기 때문에 군불을 조금밖에 때지 않았는지 새벽녘 온돌의 냉기는 살에서 두드러기가 솟을 정도로 춥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방에는 대발이 걸려있는가 봅니다. 문풍지 사이로 새벽 냉기가 들어와 발을 통과하고 있는 장면이 눈에 보입니까 ?  

새벽을 읊다(詠曉)
曉鷄唱曉夢初殘 새벽닭이 새벽을 알리자 꿈에서 막 깨는데
分陳孤鴻落錦灘 대열을 벗어난 외로운 기러기 금탄으로 내려앉네
樵窘土床膚起栗 땔감이 궁한 온돌에선 살에 소름이 돋고
滿簾風露有餘寒 발에 가득한 바람과 이슬에 한기가 넘치네

 이 시는 1620년 3월에 쓰신 것입니다. 자립이란 분과 신사라는 절에서 하루밤을 보낸 것을 시로 남긴 것인데 현재 어디에서도 신사(新寺)라는 사찰이름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신사는 흥룡동에 있었다고 합니다. 흥룡동이란 혜종임금이 태어난 동네의 이름입니다. 나주시청, 예술회관 등의 주변 동네가 흥룡동이었습니다.

이분도 흥룡동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계신 것 갔죠 두 번째 글귀에 그런 말이 보이죠 이 시를 쓰실 때(53才)의 선생님의 마음은 2년 전의 과거정거 성균관 삭적 등의 울적한 마음이 보입니까. ?

경신년(1620) 정월 3월에 자립과 신사에서 만나 자다
(庚申正月初三日 會宿子立新寺)
亂松深壑枕長流 어지러운 소나무 깊은 골짝에서 길게 흐르는 물을 베고
麗代興亡問幾秋 고려의 훙망이 몇 년이었는지를 묻네
世亂每孤成好會 세상 어지러우니 늘 외로이 좋은 만남을 이루고
地幽端合辨淸遊 땅 그윽하니 맑은 놀이하기 엔 딱 맞구나

 이 글은 집뒤의 묵은 밭을 일구는 장면을 리얼하게 묘사한 시입니다. 반마지기의 묵은 밭을 가꾸는데 노비 3명이 달라 붙어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두사람은 쟁기를 끌고 한사람은 뒤에서 쟁기를 잡고 일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낫으로 잡초를 베고 쟁기로 파고 얼마나 어깨가 빠져 부렀겄소 이렇게 일구어 놓은 밭에 세금을 매기는 관원의 모습이 추측됩니까. ?

집뒤의 묵정밭을 일구는 것을 보고(觀家後陳田起)
秉耒三奴子 병뢰삼노자 : 쟁기를 잡은 세 하인이
開陳半畝田 개진반무전 : 묵은 반 마지기의 밭을 개간하네
芟刈榛莽莽 삼예진망망 : 더부룩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내니
倒植草綿綿 도식초면면 : 풀들이 주루룩 거꾸로 심겨져 있네
代祿知吾命 대록지오명 : 봉급을 대신함은 내 운명임을 알고
勞身食我天 노신식아천 : 몸을 써서 나를 먹여 살리는구나
秋來萬顆子 추래만과자 : 가을이 되면 만 알의 곡식이
亦足供官錢 역족공관전 : 또한 세금을 내기에 족하리

오늘도 몇자를 적었습니다. 생기없는 나주시내의 밤불은 하나 둘 켜져 새봄을 향한 겨울밤의 퇴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환절기 건강하시고 다음에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