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이철웅칼럼
2019년 나주의 ‘책문’. 그리고 ‘대책’은 있는가
이철웅 편집국장  |  njt2001@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735호] 승인 2018.12.07  18:56:2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이철웅 국장
책, 《책문》이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읽었다. 2004년 출간된 책이니까 14년 만이다. 한해를 보내는 길목에서 왜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났는가? 그건 바로 지금 나주가 안고 있는 불통과 비상식이 횡행하는, 나주역사 발전의 퇴행으로 치닫는 작금의 지역사회에 대한 지역 언론인으로서의 어쭙잖은 오지랖 넓은 고민이었을까? 딱히 짚어서 ‘이것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굳이 이유를 대자면, 이 시대에 ‘책문의 정신’은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를  14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보기 위해서 인 것 같다.

읽으면서 임금의 ‘책문’과 선비의 ‘대책’이 어쩌면 그렇게 오늘날의 현안과 문제의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는지 세삼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논어(論語)속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짧은 공자의 말 한마디가 2천년의 시공간을 초월해 천둥 같은 울림을 울린다.

조선시대에 고위 관료가 되려면 두 가지 관문을 거쳐야 했다. 생원·진사시를 통과한 선비는 성균관에 진학하면 대과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대과의 초시(初試)와 복시(覆試)에서 붙으면 마지막 단계인 전시(殿試)를 치러야 한다.

전시는 복시 최종합격자 33명의 등수를 정하는 시험이다. 주로 왕이 당대에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안을 묻고, 선비들이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 ‘책문’(策問) 방식으로 이뤄졌다.

‘책문’(策問)이란 무엇인가. 조선시대 과거에 응시한 수많은 인재 가운데 최종 33명이 뽑히고, 이들은 탈락하지 않는 조건으로 왕과의 마지막 면접시험을 본다. 조선 최고의 엘리트를 뽑는 시험의 마지막 관문이 바로 책문이었다. 책문은 단순히 입신양명을 위한 통과의례가 아니라 국가 비전과 앞날에 대해 임금과 젊은 인재들이 나눈 열정의 폭넓은 대화였다. 천하의 지존 왕 앞에서 살이 떨릴 것 같은 이 마지막 면접시험에서 왕은 국가 현안에 대해 진지하게 물었고, 젊은 선비들은 목숨을 걸고 답을 했다.

책문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세상을 향한 출사표지만 단순한 출사표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건 바로 이 책에서 제시하는 선비들의 대책들이 우리 시대가 해결해야 할 불통과 모순의 사회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원칙 있는 해법으로까지 읽힐 수 있다는 데에 이 책의 남다른 문제의식이 있어서다.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하는 법, 인재 등용 원칙, 국가위기 타개책부터 술의 폐해를 근절하는 방법이나 인생의 무상함을 묻는 질문까지 왕이 젊은 인재들에게 듣고 싶은 답은 많았다. 선비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역사에 대한 성찰, 예비 관료로서의 식견을 왕에게 당당히 펼쳤다.

책은 조선의 르네상스라 할 수 있는 세종임금 시대에 진정한 법치주의 구현을 위해 여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상문과 신숙주의 대책과, 인재 등용의 원칙에 대한 강희맹의 시의적절한 대책 등은 왜 세종조가 언로가 살아있는 민의의 시대였는지를 짐작케 하고 있다.

또한 이상 정치의 실현을 묻는 중종의 책문에 “참된 마음에서 국정을 운영해야 행정이 실효를 거두고 기강이 선다”는 조광조의 대책은 도학주의자의 면모를 십분 느끼게 한다. 특히 나라의 근심이 어디에 있냐는 광해군의 책문에 “임금, 당신이 근심의 원인이라”고 일갈하는 임숙영의 대책에서는 직언과 비판을 서슴지 않는 꼿꼿한 선비의 자취를 느끼게 한다.

“가장 시급한 나랏일이 무엇인가”를 묻는 광해군에게 36세의 젊은 선비 임숙영은 “왕비와 후궁들이 권력을 좇아 농단하는 것은 살피지 못하고, 재상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하지 못한다”는 글로 답했다. 임숙영은 이어 “지금 말을 꺼내면 죄를 불러들이고, 말이 흐르면 화를 부른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나랏일이 날로 잘못되고 국정이 더욱 어지럽게 되는 것을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어찌 감히 임금에 관련된 것이나 임금이 싫어하는 것을 말하지 않으려는 풍조를 좇아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어찌 속된 선비처럼 왜곡된 말만 따라하면서 인재선발을 맡은 관리의 기준에만 부합하려고 힘써, 전하의 은총을 훔쳐서 임명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임금의 잘못이 곧 국가의 병이라는 것을 대략 말씀드린 것입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린다.

추상(秋霜)같은 임금 앞에서 누가 감히 최종 면접시험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이런 오만방자한 말을 한 선비가 과연 목숨이나 부지할 수 있었을까. 1611년(광해군 3년) ‘지금 당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라는 광해군의 질문에 ‘나라의 병은 바로 당신’이라고 광해군에게 직격탄을 날린 임숙영.

임금의 책문에 대책을 진술한 선비들은 모두 관료가 되려는 포부를 가진 사람들이다. 사회에 진출하는 문이 과거밖에 없었던 당시에, 선비가 대책의 비판적 내용 때문에 과거에 낙방하고 더구나 권력자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은, 앞으로 평생 벼슬할 기회를 봉쇄당하는 치명적인 일일수도 있었으나 임숙영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벼슬길 진출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옳음을 지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왕조시대, 그것도 임금의 말 한마디에 생사(生死)가 갈리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광해군은 크게 화를 내며 급제자 명단에서 임숙영의 이름을 지우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영의정 이덕형과 좌의정 이항복 등은 넉 달이 넘도록 광해군을 설득한 끝에 임숙영을 합격자 명단에 올렸다. 목숨을 걸고 왕의 잘못을 비판하는 젊은 인재, 이런 이를 보호하고 감싸 안으려는 정승, 이것이 조선 선비의 힘이었다. 그리고 500년 왕조를 지탱한 원동력이었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물음이 있다. 우리시대에도 우리시대의 물음이 있다. 그래서 2018년이 다가기 전에 강인규 시장과 나주시 공직자에게 묻는다. 2019년 나주의 ‘책문’은 무엇이며 ‘대책은 있는가를. 그리고 과거장의 선비가 삭과(削科)와 죽음도 불사한 체 비장한 ’대책‘을 펼쳤던 것처럼, 2019년은 시장 앞에서 비장한 각오(좌천과 승진누락 등)로 나주의 ’대책‘을 진술할 공직자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앞으로 돌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책문 정신’이다. 진지하게 묻고(시장) 과감하게 답(공직자)하는 나주가 그립다.

이철웅 편집국장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나주교통 일부 직원과 김철민 시의원 간의 진실공방 벌어져
2
갈수록 가관인 汎(범)들의 전쟁
3
66억 투입한 나주시 청소년 수련관, 1년 2개월 동안 문도 못 열어
4
나주지역 조합장 선거 15명 당선 ‘현직 강세’
5
나주투데이 이철웅 편집국장, 신인추천 수필부문 당선
6
영산포농협 조합장선거 ‘돈’ 으로 난장판
7
나주농협직원 조합장 선거개입 의혹, 파장 일어
8
죽산보 해체하면 황토돛단배 운영은 어떻게 하나
9
추위와 바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SRF 촛불, 정치권 향해 각성 촉구
10
등수육교 설치 관련 주민갈등, 무엇이 문제인가?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전남 나주시 예향로 3803 (이창동) 2층 나주투데이  |  대표전화 : 061)334-1102~3  |  팩스 : 061)334-1104
등록번호 : 전남 다00334   |  발행인 : 윤창화  |  편집인 : 이철웅  |  e-mail : njt2001@hanmail.net
Copyright © 2013 나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