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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세지동창 양민학살 증언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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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호] 승인 2007.02.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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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규씨 증언(현장목격자, 당시 31-2세, 순천시 연향동, 1998년 12월 비디오 촬영)

그때 나이가 31~32세 가량이었고 섬말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날 사랑방에 있었는데 군인들이 온 동네를 포위한 뒤 총대로 창호지를 찌르고 문을 열더니 “동창에서 강연이 있으니까 전부 나오라”고 해서 나갔다.

동창 다리 밑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속에서 젊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끼리 나이 든 사람은 나이 든 사람들끼리 모아놓았다.
 
군인과 경찰가족들은 나오라고 방송을 했는데 아버지는 먼저 나갔고 나는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아버지와 다른 줄에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아버지 쪽으로 오라고 자꾸 손짓을 해.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에 섰던 줄이 죽이는 줄이었어. 아버지 줄로 가려고 했더니 군인이 막아서면서 눈을 부라려.

“정말 군경가족이냐, 조사해 보면 모두 알아.”

그래서 지금 둘째 동생이 군대에 가 있는데 어디 부대에 있는지 잘 모르지만 조사해 보면 알 것이라고 말해 간신히 아버지가 서 있는 줄로 갈 수 있었다. 아버지 줄로 자리를 옮겼더니 대장이 하는 말이 거창해.
 
“반란군 속에서 사느라고 고생 많이 했다. 당신들이 살려면 우리 뒤를 따르라.”
 
그런데 우리 가족은 군인을 따라가고 않고 집에 있다가 이틀 뒤에 영산포로 피난을 갔다. 군인들이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을 밭으로 끌고 올라가서 세 줄로 열을 세워놓고 뒤를 돌아보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총을 쏴. 묘가 있는 밭쪽에 세워놓고 반대편에서 쐈다. 안 죽으려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는데도 뒤에서 총으로 쏴버렸다.
 
아들 형제가 죽었는데도 그 아버지는 살려고 도망을 갔을 정도야. 유족들조차 무서워서 시신을 그대로 놔두고 그날 저녁을 넘기고 군인들이 간 뒤에 시신을 찾아왔다.

그 속에서 산 사람이 있었는데, 한 명은 누군지 모르고, 나머지는 전흥복, 김재주, 김만오 세 사람이다. 김재주는 팔꿈치를 맞았고, 김만오는 등에 총을 맞았으며, 전흥복은 하나도 맞지 않았다.
 
그때 모인 숫자가 100명이 넘었다. 학살을 저지르고 이 부대는 봉황 학림으로 건너갔는데 강길만씨 등이 만류해서 영산포로 철수했다. 총 종류는 카빈총인 것 같았으며 대학생들로 보이는 학도대도 많이 따라왔다.
 
섬말마을에서 12명이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유족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해가 컸다. 노태규와 정태준씨와 한 사람이 현장답사를 하고 그 장소를 가리켜 주었다. 그때 당시 이장은 나채봉씨가 한 것 같다.날짜는 음력 섣달 열 이튿날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계속 그곳에 살다가 순천으로 간지가 4년 정도 됐다. 사건이 있은 후 이사 간 사람들도 많았다. 이날 이후에도 반란군들이 이따금 출몰했으며, 다도, 봉황 산중에 많이 있었다.  그날 저녁 눈이 많이 왔다.

김순모씨 증언(군대에서 들었음. 세지면 벽산리 거주, 1998년 12월 인터뷰)

그때 23살이었다. 군대에서 일등중사로 있을 때 거기서 동창사건을 들었다. 각 사단에서 20사단을 창설할 때 기간병을 뽑았는데, 일등중사, 이등중사, 하사를 차출했다.
 
11사단 아이하고 통신대에 같이 있었는데 얘기하는 도중에 11사단 김종만이라는 친구가 나주군 세지 공비토벌을 나갔었다고 이야기 해. 세지 동창교 위에서 양민인지 모르고 반란군인 줄 알고 학살을 했는데, 거기서 106명을 죽였다고 그래.
 
김종만이가 하는 말이 5중대가 함평으로 작전 나갔다가 다 죽고 1개 소대 병력만 남아 전부 적으로 보였다는 거야.
 
이 부대가 영산포에서 다도로 갈 것인데 봉황으로 들어가는 길은 95℃로 돌아가니까 길이 반듯한 세지로 길을 잘못 알고 간 것 같다고 그래. 함평에서 전우들이 많이 죽자 전부 적으로 보여서 세지 주민들이 반란군인 줄 알고 군경 가족만 빼고 죽인 것 같다고 김종만이가 말했어.
 
소속은 20사단 61연대 2대대 7538부대 본부중대에 있었고 통신조교나 다름없었다. 신병들 통신 교육을 시켰으며, 7사단 5연대 입대해서 단기 4288(1955년) 20사단에서 제대했다.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고산리 이당근 이라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김종만이 어디 사는지 알 것이다.
 
군대 가기 전에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날 나는 벽산리 집에서 총소리만 들었다. 그리고서 한참 후 군인 2명이 우리 집에 들어와 가족들이 모두 놀랬어. 군인을 보자 우리 아버지는 자신과 나를 죽이겠구나 생각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뒤에 말하더라고.
 
군인이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집사람이 ‘오빠’하고 부르면서 뛰어 나가 가족 안심을 했어. 그 군인이 집사람 외사촌이었어.
 
동생이 하는 말이 군인들이 먹을 밥 200상을 해주라고 하면서 “밥을 가져올 때 젊은 사람을 보내지 말고 노인들에게 밥을 가져오라”고 당부까지 했어. 그래서 동네 노인들이 밥을 가져가고 그릇은 학림에다 다 던져버리고 돌아왔어.
 
염기열씨 증언(구국연맹회원, 세지면 동곡리, 1999년 1월 인터뷰)

우익인사 약간 명이 영산포에 가서 구국연맹을 만들고 거처 하고 있었다. 1월 20일 오전 9시 조금 넘어서 나주경찰서 직원 강성은이란 사람이 “세지에 진주하니 같이 갑시다”라고 해서 같이 따라나섰다. 당시 사무실은 영산동에 있었다.
 
군인 약 150명 정도가 세지 쪽으로 가고 있었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동창 소재지에서 1km 못 되는 월대마을에서 길가는 행인을 군인이 사살했고, 또 500m 걸어가다 행인 1명을 사살했다. 그리고 나서 500m 가니까 동창 다리가 나왔다.
 
거기서 군인들이 자리배치를 받고 우리 구련은 점심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받아 소 한 마리와 돼지 3~4마리를 잡았다. 소 한 마리는 장준성씨 집에서 잡고 돼지 3마리는 마을에서 사서 잡았다.
 
군인들이 집집마다 호별 방문해서 다리 밑으로 사람들을 집결시키고 군인, 경찰가족을 배냈다. 그리고 남은 사람을 2열 종대로 약 12명씩 세우고 M1 총으로 쏴서 죽였다.
 
일부 군인은 근처 산에 배치해 밤을 새우고 경비를 섰다. 오후 5시경 봉황 학림부락으로 숙소를 옮겨 저녁을 먹고 다음날 아침 오전 9시경 아침을 먹고 영산포로 철수했다. 구련에서 온 사람은 10사람 정도였다.
 
금정산 국사봉에 주둔한 인민군 부대를 토벌한 것으로 전과를 올려 보고한 것 같다. 그때 나는 시국수습주동체인 구국총력연맹 총무부장이었으며, 구련은 경찰을 협조하는 게 주 업무였다.

부서는 총무, 재무, 연락부가 있었으며, 구련 위원장은 세지 나기수씨였다. 유족에게는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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