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에 싸리꽃 서럽게도 붉어
초년과부의 하루는
싸리비를 묶어도 묶어도 저물지 않았다
문설주에 기대어 새벽이슬에 젖던 싸리꽃
어스름한 윗방죽에 가슴을 풀어헤쳤다
해가 뜨면 윤슬처럼 반짝이고 싶었던 엄마
물새떼는 가슴의 문장을 물고
허공으로 솟구쳐 쓸쓸히 사라져버렸다
윤슬이 사라진 엄마의 여름은
해진 무명적삼에 얼음이 사각거렸다
벼랑 끝에 까치발로 선 엄마는
흔들리는 시간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꽃이 얼어붙도록 싸리비를 만들어
내 뱃구레를 채우던 엄마
손바닥은 가시랭이 싸리비 같았다
이모의 실크원피스를 쓸어보다가
실밥이 터져
엄마팔자 같은 긴 흠집이 나던 날 새벽
악물고 견디던 풍경이 무너져 내렸다
꽃잎을 안듯이 바람이 낮게 불었다
장날이면 싸리비 뭉치를 이고
안개 자욱한 삼십 리를 걸어간 엄마의 머리는
붉은 딱지가 내려앉았다가 씨앗처럼 단단해졌다
그 씨앗, 팔자를 버티던 정수리에 뿌리 내려
싸리꽃 붉은 어느 새벽
엄마는 한 그루 싸리나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