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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적어야 산다…나주시 공직자들이여 메모를 하라
이철웅 편집국장  |  njt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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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5호] 승인 2018.09.07  19: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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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웅 국장
정확한 연도는 잘 생각이 나질 않고 대충 10여 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다시면에 소재한 모 횟집에서 고향 후배인 A조합장과 점심 겸 술을 하던 중 A조합장이 뜬금없는 얘기를 꺼냈다. 나주시의회 특정의원을 거론하며 “나주농민회에서 입만 뻥긋하면 징역간다”고 했다. 하필 그 시의원이 나와 친한 사이라 이튿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금시초문(今時初聞)”이라며 “농민회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A조합장에게 알아봐 달라”고 했다.

며칠 후 조합장을 만나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고 물었더니 “형님 저 그런 말 한적 없잖아요”한다. 눈 하나 깜짝 않고 오리발이다. 그 후  조합직원을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이 황당한 상황을 전했더니 이 친구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형님 몰랐습니까? 우리 조합장과 긴한 말을 주고받을 때는 녹음을 하든가 메모를 해야 합니다”라고 한다.

이런 비슷한 전례가 또 있다. 최근의 일이다. B씨는 6년여 전 자신이 하고 다닌 말을 안 했다며 그가 한 말을 발설한 특정인을 되레 고발한 사건도 있다. 조사가 진행중이라 여기에서 구체적인 언급을 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아 노코멘트 하겠지만, 두 사건 다 녹음이나 메모 같은 확실한 증거가 없는 관계로 당하는 당사자는 속수무책이다.

거짓말을 한 쪽은 그걸 기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물며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피의자로 뒤집어씌우기도 한다. 거짓말 한 쪽은 그것도 부족해 거액의 손해배상까지 청구하는 파렴치한 짓도 하는 경우도 있다. ‘완전범죄’를 위한 수단이겠지만 인두겁을 쓰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을 하는 이들도 있다.

증거나 물증을 제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백주 대낮에 생사람을 잡는 것이다. 거짓말로 얻는 이익이 그것으로 잃게 되는 대가보다 크다고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렇다. 법정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도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이 작년에만 1516명이다.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 수사기관에서의 허위 진술이나, 증거가 없다는 생각에 허위 고소고발이 얼마나 될지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위의 사건들도 그런 문화 속에서 싹텄을 것이다.

최근 관가에 ‘적어야 산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나돈다고 한다. 메모가 일종의 보신(保身)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권의 흥망에 따라 언제 피의자(被疑者)로 둔갑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 메모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자의반타의반으로 메모광이 된 공무원들은 이전에 구두로만 오가던 지시들을 포스트잇이라도 붙여 개인적으로 기록해둔다고 한다. 공무원 집단은 학습효과가 빠른 집단이다. 상관으로부터 석연찮은 지시를 이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메모든 녹음이든 일종의 안전장치는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존을 위한 자구책의 발로라 여겨진다. 

이유가 좀 다르기는 하지만 특검이 ‘사초’라고까지 표현한 안정범 전 수석의 수첩은 박근혜정권의 운명까지 바꿨다. 안 전 수석이 청와대에 입성한 2014년 6월부터 구속되기 직전인 2016년 10월까지 쓴 업무수첩이다. 안 전 수석은 수첩에 앞쪽부터 시간 순서대로 청와대 회의 등을 기록했고, 대통령 지시 사항을 뒤쪽부터 앞으로 정리했다. 박근혜 게이트 관련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된 이 업무수첩은 국정 운영 전반이 담긴 ‘박근혜 실록’이었다.

안종범은 수석은 청와대 재직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지시한 사항에 대해 매우 자세한 기록을 남겨서 사관이라는 애칭(?)을 얻었으며, 특히 특검이 추가로 확보한 39권의 안종범 수첩은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 김기춘 등 게이트에 연루된 중요 인물의 수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서 ‘종범실록’(鐘範實錄)으로까지 일컬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메모, 비망록(備忘錄)이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한창이던 2016년 11월, 노트 하나가 언론에 보도됐다. 그해 8월 고인이 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이다. 2014년 6월 23일 시작돼 2015년 1월 23일 끝나는 비망록은 달력까지 포함해 200쪽 분량이었다. 말이 비망록이지, 청와대 업무 수첩에 수석비서관 회의 참석자들의 발언을 급히 받아 적은 것이어서 개인적 소회를 쓸 여유가 없는 메모들이라고 당시 언론들은 밝혔다.

비망록의 내용이 파장은 컸다. 날짜별로 빠짐없이 적힌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의 내용은 권력의 내밀한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결국 비망록은 검찰과 박영수 특검이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는데 단초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이 비망록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데스노트’(이름을 적으면 저주받는 노트)가되기도 했다.

이처럼 안 전 수석의 수첩과 김 전수석의 비망록이 적폐청산 수사와 맞물려 세간에 오르내리면서 메모와 비망록이 공직자들에게는 ‘보험’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공직자들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존본능이 공직저변에 깔려 있다.

얼마 전 시청 사업부서에 재직하고 있는 모 공직자와 소주를 했는데 본인도 메모와 녹음을 한다고 했다. 핸드폰은 자동녹음을 설정해 놓았으며 간부회의 대부분과 사업관련 지시사항 등은 시간별로 메모를 한다고 했다. 특히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지시사항 등은 당시의 주변 상황 등을 최대한 리얼하게 정리를 한다고 했다. “혼자 독박 쓰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맞는 말이다. ‘비선실세의 시정관여’ ‘궐밖정승 들의 인사와 공사 관여’ ‘임기제 공무원의 전횡’이라는 비정상적 시정(市政)이 수시로 세간에 회자되는 상황에서 모 공직자의 메모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시정이 하 수상하다는 다른 표현일 것이다.

나주시 공직자들이여 메모를 하라! 직권남용죄가 일종의 무기처럼 변해버린 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갖고 있어야 한다. 박근혜정권이 촛불혁명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우리는 박근혜 정권하에서 이처럼 셀 수 없는 적폐가 양산된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정권이 바뀌자 봇물 터지듯 적폐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신성해야할 사법부 그것도 전 대법원장까지 적폐의 ‘반열’에 오르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썩지 않은 곳이 없다.

지자체 장의 권력은 무한한 게 아니고 유한하다. 권력은 바뀐다는 말이다. 바뀐 권력에서 피의자(被疑者)로 내몰리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주공직자들이여 메모를 하라. 여러분들의 메모가 여러분의 생존을 보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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