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

호미질을 천 번쯤 했을 것이다.
구백 개의 고구마는 무탈하게 잘 캐낸 것 같다.
호미주인의 방심한 손길에, 백 개의 고구마들은
여기저기 생살이 벌어져 끙끙 앓고 있다.
미봉책으로 하얀 속살에 황토를 발라 갈무리해두었다.
동지섣달 긴긴밤, 물고구마 단맛에 길들여진 혀는
날마다 고구마를 불러들였다.
패인 흉터는 어느새 썩기 시작하고
썩은 곳을 도려낸 고구마를 씹는데
덜 도려내진 썩은 부위는
맛이 씁쓸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고구마는 내 헛손질에
거죽뿐 아니라 영혼까지 깊은 상처를 입었나보다.
나는 빗나간 호미질 원죄 때문에
씁쓸한 고구마를 삼킬 수도 뱉어낼 수도 없었다.
작은 크기의 쓴맛은
이내 입 속 전체를 점령하고 말았다.

‘다수결이면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민주주의를 그렇게 배웠다.
그러나 작은 상처의 쓴맛 때문에
고구마는 통째로 쓴맛이 되고 말았다.
나는 다시 배운다.
‘소수의 눈물을 보지 못하면 전체가 피눈물을 흘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