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노금 나주시의원

이제 낼 모레면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설 명절이다. 우리 가정의 경우 크고 작은 행사를 모두 빼고 자녀 손 전 가족이 모두 모이는 일은 설과 추석명절 그리고 여름휴가와 두 분 부모님 생신, 이렇게 해서 딱 너 댓 번 정도이다. 다른 가정은 어떤지 잘은 모르나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자식들이 자주 만나 부모님 앞에  자기의 형편을 핑계 하지 않고 함께 얼굴을 맞대고 자녀 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자는 것이 장남인 남편의 평소 신념인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일을 그나마 핑계 없이 거스르지 않고 잘 따라 주며 만날 때면 늘 즐겁고 화평하게 지냈던 것은 육남매 모두의 성품이나 효심들이 원만하고 남달라서라고 생각하며 형제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오가며 형편 따라 부모님을 섬기는 일들에도 다들 제각각 최선을 다해 주고 열심이어서 맏이로서는 평생을 고맙기 그지없는 일로 생각한다.

오늘 아침, 둘째 여동생 집에 가신 그러니까 당신으로서는 외손주의 학업 뒷바라지를 위해 지금 분당에 가신지 한 달여가 넘은 엄마와 통화를 했는데 항상 씩씩하던 목소리가 많이 잠겨있고 건강이 좋지 않으신 것 같아 마음이 짠하고 심란하다. “뭐ㅡ내가 아프다냐, 괜찮다.”를 연발하시지만 분명 건강이 예전 같지가 않으신 것이 분명하다.

아프고 자식의 도움이 필요할 때면 오히려 철저하게 숨겨버리시고 자식들 몰래 시내버스를 이용해 전대병원을 혼자 다니시는 너무나 결백하고 씩씩한 86세의 엄마, 우리엄마…. 강원도에 사는 여동생이 아들의 학업을 위해 분당에 사는데 강원도의 사업이 무척 바쁜 때라 엄마에게 아들을 맡기곤 하면 기쁘게 서울을 오가시던 엄마셨는데 아무래도 나이를 숨길 수는 없는 것 같다.

자식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늘 찾고 또 찾는 엄마로서는 이런 자식들의 도움 요청에 언제나 기쁘게 응하시곤 했다. 한 평생을 자신은 버려버리시고 그 긴 세월을 엄마가 자식들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셨는지를 너무나 잘 아는 자식들 역시 엄마의 부름에는 다들 득달같이 달려가곤 한다고 스스로 자위하곤 했다. 그러나 이렇게 엄마가 편찮으신 것 같을 때는 철저하게 위장을 해버리시니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읽은 기사가 생각이 난다. 중국의 74세의 한 늙은 남성이 100세가 넘은 어머니가 하늘과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티벳을 가보고 싶어 하시는 것을 알고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 티벳이라는 곳을 찾아 세상 구경을 시켜드리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러나 너무나 가난한 아들은 자동차도 트럭도 아닌 어머니가 겨우 누울 정도의 수레를 만들어 자신의 세발자전거에 매달았다. 어머니는 난생 처음 가는 여행인지라 옷도 곱게 차려입고 화장도 곱게 하고 수레에 올랐다. 아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중국의 가장 북쪽에 있는 하탑에서 티벳까지 대장정의 페달을 힘차게 밟기 시작했다.

평생 처음의 다른 세상을 보며 기뻐하는 어머니를 보며 늙은 아들은 고단함도 잊은 채 때로는 험난한 산길을 헤매기도 하고 비가 오는 날은 밧줄에 몸을 묶고 끌기를 반복하며 길에서 먹고 자고, 간간이 병·의원 신세도 지고 노숙도 하면서 900일간의 소풍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너무나 많았던 고령의 어머니는 티벳까지 가지를 못하고 103세의 생일을 이틀 앞두고 세상을 떠나셨다고 전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의 영정을 가슴에 모시고 하얼빈, 장춘, 심양, 진황, 북경, 석가장, 남경, 남경, 상해, 항주, 남장, 장사, 정주, 청도, 제남에 이르는 15개 도시 3만키로의 여행을 마쳤다고 한다. 이렇게 76세의 왕일민 노인의 효행은 3년 내내 13억 중국 대륙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거기에 아직 그보다 나이가 젊고 각자의 집에 한 두 대 씩 번쩍이는 승용차를 갖고 있는 우리들은 어떠한가?

온 가족이 모이는 음력정초, 민족 대 명절이 다가오는데 문득 부모님에 대해서 그리고 자식의 도리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부모는 등가죽이 벗겨지고 허리가 휘어져도 열 자식을 거두지만 열 자식은 온갖 핑계와 요설로 단 한분의 부모도 결코 마음 편히 모실 수 없는 세태 속에서 우리는 과연 내 스스로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노후대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자식 위해 모든 것을 던져버리시고 그리고 80넘으셔서는 자식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남겨 주시고 싶은 욕심에 몇 권의 두터운 노트에다 성경 신, 구약을 모두 쓰셔서 말로 다할 수 없는 5남매에게 경외심을 갖게 해주셨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그리고 시댁의 맏며느리로서 이제 건강을 핑계로 도무지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는 환갑 지난 며느리요 딸은 올 설날 무슨 재롱으로 엄마를 또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그것은 엄마와 부모님 앞에 형제들끼리 한자리에 모여앉아 기쁘고 즐겁게 떡을 떼고 나누며 웃고 즐기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이나마 우선 기쁘게 감당하는 설 명절이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