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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사람 함석헌
이재창  |  jclee16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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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0호] 승인 2017.11.19  15: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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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창 전고구려대 교수
이맘때가 되면 당나라 시인 두목이 썼던 칠언절구시와 함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원상한산석경사(遠上寒山石經斜), 백운생처유인가(白雲生處有人家), 정거좌애풍림만(停車坐愛楓林晩), 상엽홍어이월화(霜嶪紅於二月花). 이를 해석하면 돌 비탈길 돌고 돌아 멀리 한 산 오르는데, 흰 구름 머무는 곳에 인가가 자리하네, 가던 수레 멈추고 늦은 단풍을 바라보니, 서리 내린 후 단풍들은 봄꽃보다 더 붉구나.

우리나라 단풍은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은 이유는 인공으로 산림을 조성한 것보다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산림으로 다양한 나무들이자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늦가을이 되어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하다보면 사람에 대한 추억과 기억 또한 되살아나는 것은 삼라만상이 결실하는 시점에서 사람에 대한 애착이 살아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함석헌(咸錫憲, 1901년 3월 13일 ~ 1989년 2월 4일)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때  씨알의 소리를 통해서였고, 실재 대면한 것은 대학 2학년인 1983년 5월로 기억이 된다. 함 선생님은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지 3년째 되던 해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하에서 광주민주화운동 기념강연을 위하여 광주에 오셨었다.

내가 첫 대면에서 느낀 함 선생님의 인상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았다. 그때 연세는 83세였으며 마르신 체구에 하얀 머리 하얀 한복을 입으셨던 선생님은 너무도 자애로운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아직도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함 선생님은 190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출생했다.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덕일 소학교(德一小學校)에 입학하여 수료하고 그 해에 양시공립소학교에 편입하여 1916년 양시공립소학교를 졸업했다.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으며, 1917년에 황득순 여사와 결혼하고, 1919년 평양 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에 학업을 중단하고 3·1 운동에 참가한 후,  퇴학되어 2년간 학업을 중단하였다.

1921년 평안북도 정주(定州)에 있는 오산학교(五山學校) 3학년에 편입하여 1923년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1924년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 1부에 입학하였다. 1928년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수석졸업 하였다.

오산학교에서 강의를 했으며 해방 후에는 반공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투옥되었다가 월남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 때는 대전을 거쳐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휴전 후 상경하여 1956년부터 장준하 등의 천거로 사상계에서 주요 논객으로 활약하였다.

1958년 당시로써는 다소 파격적인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견해를 발표하면서 정부의 정책에 비평을 가하였고, 1959년 6.25 전쟁 관련자들에 대한 훈장 서훈 이야기가 나오자 "형제를 죽이고도 무슨 훈장이냐"라고 당시로써는 위험을 무릅쓰고 정부를 비판했다. 

1960년 박정희가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자 본격적으로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선봉에 섰었다. 한일회담반대, 장준하 선생 옥중출마지원, 유신반대투쟁, 대통령직선제쟁취운동, 제5공화국시절에는 민주통일국민회의,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 그리고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고문을 역임하면서 대정부 민주화투쟁에 온 몸을 던지셨다.

함 선생의 저서로는 ‘성서로 본 조선역사’, ‘인간혁명’, ‘역사와 민족’, ‘뜻으로 본 한국역사’, ‘통일의 길’, ‘한국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 ‘함석헌 저작집, 시집 ’수평선너머‘를 남기셨으며, 일대기로 내가 본 함석헌, 함석헌 평전이 있다. 여러 가지 수상실적보다도 수상은 못하였으나 두 번씩이나 노벨평화상에 추천됨으로써 그의 삶은 올바르게 평가를 받은 것이다. 함 선생은 이러한 인생격정을 보내고 1989년 2월 영면하셨다.

함 선생이 말한 씨알이란 민초(民草)를 일컬으며 민초가 깨어야 밝은 세상이 오기 때문에 씨들이 깨어나야 한다는 것과 씨란 천부인권사상을 기반으로 민초는 어떠한 경우에도 업신여김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셨다.

함 선생님이 강연회에서 하셨던 말씀은 예지력과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군사정권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힘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대학생들이 섣부르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준비 없이 저항하다가는 피해만 당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준비해서 저항해야한다.

그리고 사찰의 문제를 지적했는데 이것은 전 국민에게 불신을 자초하기 때문에 국가가 이것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힘들어도 비폭력 저항을 해야지 폭력을 규탄하면서 역으로 우리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반드시 저항은 비폭력적으로 하자고 역설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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