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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세지동창 양민학살Ⅳ"강연이 있으니 동창교 밑으로 모여라"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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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호] 승인 2007.01.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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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서 몇 발의 공포탄을 쏘며 5중대가 들어왔다. 함께 따라온 지역유지와 경찰, 주민들은 동창 입구에서 민간인을 이유 없이 죽이는 광경을 지켜본 뒤라 벌벌 떨고 있었다.   
순진한 동창 주민들은 마을로 국군이 들어오자 먹을 음식을 가지고 면사무소 앞으로 모여들었다.
 
"대한민국 만세, 국군 만세"
 
박수를 치며 국군을 반갑게 맞이했지만 5중대의 눈에 주민들은 빨치산을 도운 부역자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동창소재지에 들어오자마자 5중대는 영산포에서 따라온 유지와 주민을 한쪽으로 모아 놓고 경찰과 함께 2인 1개조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동창교 밑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강연이 있으니 모두 동창교 밑으로 모여라."

"마을에 군인이 들어 왔으니까 부락 주민들은 한 사람도 집에 있지 말고 동창교 아래로 나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군인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숨어있는 사람까지 전부 찾아내 약 200명 가까운 부락민들이 다리 밑에 모였다. 그 안에서 군인, 경찰 가족들을 선별해 우리와 같은 쪽에 있게 하였다."(최선진, 구국연맹회원)

"집집마다 국군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니 나오라고 해서 귀한 계란을 가지고 나온 사람도 있었고, 여러 가지 음식을 가지고 나온 주민들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나가보니 연설은 않고 군인, 경찰가족을 나오라하니까 몇 명이 나왔다"(나영근, 당시 11세)

"우체국 집 자리에서 친구들하고 놀고 있었는데, 아마 오후 3시나 되었을 거야. 세지지서에서 근무했던 손영숙 순경이 와서는 군인이 진주하러 왔으니까 나오라고 그래. 다리밑으로 나갔더니 산에 군인이 짝 깔려 있더라고."(조기영, 마을주민)

"집에서 방아를 찧고 있는데 군인들 서너 명이 들어오더니 번떡 번떡한 칼을 뽑아들고 무조건 나오라고 헙디다. 남편하고 같이 무섬증이 들었지만 할 수 없이 따라 갔제라. 동창다리 밑에까지 따라가서 본께 부락민들이 전부 나와 있고 산에는 군인들로 시퍼레 부렀습디다. 온 마을을 포위한 것이제"(박복임, 여. 당시 26세, 세지면 오봉리)

"그때 마을 조인구씨 사랑방에서 7,8명이 모여 새내끼를 꼬고 있는 판인데 뭔 소리도 없이 창호지를 뚫고 총대가 푹 들어 옴시로 밖에서 문을 열라고 허데요. 문을 열고 본께 군인들 대여섯 명이 동창다리 밑에서 강연이 있으니 나오라고 해서 나갔지요. 그 당시에는 경찰들을 꺼렸지만 군인은 좋아했어. 우리를 지켜준다고 알았응께. 가서 본께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였습디다. '강연합시다'험시로 어째 공기가 이상 헙디다"(남영규, 당시 32세, 세지면 벽산리)

"13살 때인데 소대장이 단도를 끄집어내고서는 군경가족 명단을 갖고 있으니까 확실한 군경가족만 나오라고 그래."(노태규, 당시 13세)

동창교 아래로 모인 주민들은 한쪽에 피투성이가 된 백씨가 묶인 채 있는 것을 보면서 수근 거렸다.
 
"오늘 무슨 일이 있것구만. 저것 좀 봐. 백씨 얼굴이 피범벅이야."
 
군인들의 삼엄한 분위기와 얼굴에서 피가 흘린 채 묶여 있는 백씨를 보는 순간 주민들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주민 200여 명이 동창교 아래에 모이자 그 가운데서 군경가족이 선별되었다. 10여 세대가 일어나자 확인절차를 거쳐 그들을 유지들이 있는 쪽으로 가도록 하였다.

그리고 나서 다시 주민들을 훑어보면서 노인과 여자들을 총대로 밀어서 빼내자 젊은 층에 속하는 주민 80-100여 명(추정)이 남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반남 초등학교 교사 박영만씨의 부인 노점숙씨(당시 27세)가 아기를 등에 업고 군인 앞으로 나왔다. 
 
파마머리를 했던 노씨를 누군가가 "빨치산들에게 협력하였다"라고 군인에게 밀고한 것이다. 군인이 노씨에게 몇 마디를 묻자 손사래를 쳤다.
 
"나는 그런 적이 없어요. 살려주세요."
"부역한 일이 없다"고 변명했지만 군인은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노씨를 총살했다.
 
노씨가 숨지자 등에 업혀 있던 얘가 울기 시작하자 총구가 아이의 머리로 향했다.

"인생이 불쌍하지만 언젠가는 복수할 테니 죽여야겠다."
 
8개월밖에 되지 않은 젖먹이까지 죽이는 잔인함을 보인 국군은 동창 입구에서 끌고 온 백씨를 때리기 시작했다.

"반란군이 마을에 몇 명 있었느냐?"
 
계속되는 폭행을 견디지 못한 백씨는 입을 열었다. 

"50명의 반란군이 마을에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을 죽이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국군은 백씨의 입에서 "반란군이 마을에 있었다."라는 허위 자백이 나오도록 유도한 것이다. 

"대산리에서 주민 1명을 잡았는데, 백씨였어. 백씨를 묶어서 데려와 한쪽에 끓어 앉힌 뒤 아기를 업은 박영만의 처 노씨가 보이자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더군."(조기영)

"국군이 백씨에게 안 죽으려면 불어라 하니까 '마을에 반란군 50명이 있었다'고 그래. 군인들에게 너무 맞아서 정신이 혼미했던 것 같아. 무조건 입에서 반란군이 있다고 말하라는 거야. 그래서 50명이 있다 하니까 그때부터 주민들을 죽이기 시작했어."(류복남)

백씨의 입에서 "마을에 반란군이 있었다"는 말이 나오자 5중대 중대장은 주민 100여명을 신북여관 뒤 밭으로 끌고 갔다.

"저기 있는 밭에 가서 반란군을 색출해야 겠다."
 
100여 명의 주민이 밭으로 올라가는 동시에 5중대 군준옥 중대장은 백씨를 동창교 다리에서 권총으로 쏴 사살하였다. 그리고서 군경가족과 유지, 경찰은 신북여관 부엌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지금은 교량 확장공사로 말미암아 신북여관 자리가 사라졌지만, 부엌의 크기는 50명-100명정도 들어갈 수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신북여관 자리는 이후 버스정류장과 주유소로 바뀌었다가 최근 동창교 확장공사로 철거되었다.
 
신북여관 뒤편 밭으로 끌려간 주민의 수에 대해 130여 명에서부터 70-80명 등으로 다양한데, 이날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대략 90-100여 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밭으로 끌려가던 중 영산포 중학교에 다녔던 정태균(당시 18세, 현재 미국거주)군이 대열에서 빠져 나와 신북여관으로 몸을 숨겼다. 영산포에서 자취를 했던 정군은 쌀을 가지러 집에 왔다가 끌려 나온 것이다.
 
신북여관 부엌으로 들어온 정군은 부엌에 있던 사람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당부 한 뒤 방으로 들어가 벌벌 떨고 있었다.

"군인들이 젊은 사람들을 불러내는 것을 보고 '죽이려고 그러는 구나'라는 생각이 듭디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중위 계급장을 단 군인에게 다가가서 사정을 했습니다. 영산포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니 가도록 해달라고요. 그런데 중위는 들은 척도 않고 군중 쪽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군중 속으로 되돌아오다 변소에 가는 척하고 바로 옆에 있던 신북여관으로 슬쩍 들어갔습니다. 중대장만 피하면 도망갈 수 있는 위치에 내가 서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했습니다"(정태균)

당시 신북여관은 3칸 정도의 방을 갖춘 여관으로 이곳 부엌에 면장과 지역 유지, 경찰 등 50여 명이 초조한 기색으로 군인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군는 여관에 들어서자 곧바로 자신이 도망쳐 나온 현장을 볼 수 있는 안방 창틀로 다가가 몸을 바싹 붙여 밖을 내다보았다.

"같이 왔던 순경이 정제에서 못 나가고 하는 말이 우리도 다 죽이겠네 하면서 안절부절못했어요. 강성언 그놈을 제외하고는 경찰들도 정제에서 우리와 함께 떨고 있는데, 무슨 힘이 있겠어."(류복남)

"경찰들도 부엌에서 떨고 있었다. 그때 경찰들도 무서워 군인들에게 말 한마디 못했어. 마을 주민은 공산당이 아니라고, 죄가 없다고 말을 해도 필요가 없을 정도로 군인들이 막무가내였거든. 총을 쏴버리니까 경찰들도 무서운 거지. 나도 무서워서 얼른 신북여관 부엌으로 들어갔어."(조기영, 마을주민) 

"만일 당시 세지면의 기관단체장 가운데 조금만 희생정신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라도 그들이 양민이었다고 항변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당시 군의 위력이 너무 컸고, 또한 그렇게 구하려고 나섰다면 그 사람도 협력자로 몰리거나 목숨이 위험했을 것이다"(노태규, 당시 14세, 1996년 나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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