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노금 나주시의원

세상이 다변화 될수록 삶은 복잡해지고 외형적 윤택함 뒤에 숨은 상대적 박탈감과 외로움 그리고 고립감 등은 자칫 한순간에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자살 충동으로 이어지는 수가 많다.

특히나 아이 울음소리가 멈춘 지 오래고 농촌인구가 고령화 되면서 농촌 마을의 어르신들은 자칫 외로움과 무력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고 삶의 의욕을 잃는 경우가 많아 마을 공동체의 살뜰한 보살핌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이다.

지난 8월 10일은 고향인 세지면 성산리 덕산마을의 생명사랑 녹색마을의 현판식이 있는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나주시청에서 드론에 관한 법인 협약식 행사도 있는 날이었고 이런저런 크고 작은 행사들이 많이 겹친 날이었다.

그러나 꼭 참석하겠다고 했던 약속들을 뒤로하고 우선 고향인 세지면 덕산마을 행사에 가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농약 안전 보관함 보급으로 어르신들의 우발적 자살 방지와 주민들의 생명을 지켜 생명 존중 문화 확산과 마을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기를 다짐하는 행사였기에 더욱 의미 있는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입추가 진즉 지났음에도 8월의 태양은 계절을 잊고 이글거리고 있었지만 그 때 그 날 만큼은 지난 대통령 선거때의 감사 인사도 드릴겸 좀 빨리 가서 어르신들을 뵈어야 한다는 생각에 바삐 차를 몰았다.

소재지를 지나 성산리로 가는 길목 섬말에 이르니 철 이른 칸나는 푸르른 하늘을 이고 초록색 넓적한 갑옷 속에서 내민 늠름한 꽃대로 붉은 정열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올 여름 내내 눈에 꽃물이 들도록 보아왔던 눈에 익은 보랏빛 페츄니아는 겸손한 모습으로 이제 땅에 낮게 심어져 있었다. 적어도 내가 여름내 보아왔던 패츄니아는 혁신도시의 꽃길 속에서 하늘거리며 너무나 당당하고 화려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당당하던 꽃이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 심어져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며 낮고 너른 품으로 자갈밭 박토 땅을 보듬어 안고 있었다. 마을입구의 모습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어여삐 꽃들이 심기어져 오랜만에 고향길 가는 길손을 행복하게 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철들고 그 길이 난 이후 50여년을 오가던 길이었음에도 몇 미터 안 되는 길가에 열 대 여섯 주 되는 칸나의 몸짓으로 인해 작은 행복을 맛볼 수 있었다.

“이쁘기도 해라! 이쁘기도 해라!” 바삐 길을 가다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으며 나는 잠시 오래전 50년 전의 그 길을 오가던 단발머리 소녀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고향 마을 입구에서 뜻밖에 이런 위로와 호사를 맛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좀 빨리 간다는 것이 꽃을 만나 해찰을 부려서 인지 어르신들은 이미 마을 입구 행사장에 자리하고 계셨다. 한분 한 분 인사를 드리니 모두들 따뜻이 맞아 주시면서도 지난 대선 이후 이제사 나타난 게으름을 질책 하시는 어르신들도 계셔서 민망하고 죄송스런 마음뿐이었다.

사실 대통령 한번 바로 찍어 주십사고 발이 닳도록 다녔던 마을 이었기에 더 부끄럽고 낯이 뜨거웠던 것이다. “아따 우리 넙데기가 보고자워서 한 말이었제.”라며 등을 두드려 주실 때는 앞으로는 정말 더 자주 인사 드려야겠다고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야 했다.

생명 지킴이로 임명되신 김순갑 성산리 이장을 비롯한 5개 마을 이장들에게 강인규 나주시장의 임명장 수여와 농약 안전 보관함 전달식 그리고 마을 현판식 등으로 행사는 끝이 났다. 마음은 다음 행사로 바빴는데 어르신 두 분이 반가이 다가오시며 “의원님, 지난 선거 때 우리가 똘똘 뭉쳐주신 것 알지라우” 하시는데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우리도 부탁하나 합시다.” 단단히 벼르고 하시는 모습이어서 가슴이 철렁했다. “섬말 앞 꽃, 의원님이 구해 주셨답디다. 우리 마을에도 꽃 좀 주시오”라며 당신님들도 그 꽃이 너무 예뻐 그 마을 분을 붙들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어디서 저러고 이쁜 꽃을 구했소?”라고 물으니 내가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늦봄에 그 마을 안기자 회장님과 조귀례 회장님이 마을길 앞에 많은 이들이 오가는데 꽃을 심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산림과에 부탁해 물량이 다 소진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어떻게 간신히 처진 꽃 조금 구해 드린 기억이 난 것이다.

그 때는 너무나 물량도 작고 메마른 땅에 꽃들이 살까 싶었는데 시청에서 얼마 전 다시 칸나랑 페츄니아를 보냈었나 보다. 도무지 살 것 같지 않던 땅에 부녀회원들이 올해 같은 가뭄에 어찌어찌 몸부림을 다해 가꾼 덕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농수로 공사니 마을길 포장을 해 드릴 때와는 또 다른 보람이고 기쁨이었다. 앞 뒤 재지 않고 “워메! 아짐, 그러면 섬말 양반들같이 잘 기르시겄소?” 물으니 “그라제, 울 덜 들도 꽃 이쁜거 다 알아 주기만 해봐” 절대 빈곤이 해결된 시골도 이젠 주민들의 수준이 많이 변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벌써 꽃을 구해 달라는 민원이 몇 번인가? 지난번 정례회 시정질의 시 시골마을에도 꽃을 조금씩이라도 나누어서 주민들이 함께 행복한 나주를 만들어 보자고 한 나의 말이 그리 큰 억지가 아니었음을 증명했구나 싶어 민원인 앞에서 작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