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창 전 고구려대교수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로 자유, 생명, 인권, 그리고 평화를 내세운다. 이외에도 환경, 생태, 민주, 그리고 평등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넓은 틀에서 보면 환경과 생태는 생명에 포함될 수 있고 민주와 평등은 인권과 평화에 내포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자유라 함은 개인이 외부의 제약이 없이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을 말할 뿐 아니라 자신의 자유로운 행동이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형태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와 상충되지 않고 마음껏 향유될 수 있는가? 이는 자아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 시작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자신이 누릴 분량을 알 뿐 아니라 타인의 욕구를 헤아려 스스로 절제할 때 자유는 보장되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諭矩) “ 나이 70이 되니 마음대로 행동을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했다. 

생명은 우주만물이 가지고 있는 물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어떤 신학자가 영혼에 회의를 가지고 신체 어디에 영혼이 있는지를 찾기 위하여 사람을 계속해서 하나하나 해체해가니 마지막에 유전자가 남고 또 이유전자를 분리하니 산소(O), 수소(H), 탄소(C), 그리고 인(P)만 남더라는 것이다.

미국 시카코대학의 화학자이며 생물학자인 스텐리 로이드 밀러(Stanley Lioyd Miller, 1930.3.7∼22007.5.20)는 생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실험을 실시한 결과 결국 생명이란 질소(N), 산소(O), 수소(H), 그리고 탄소(C)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물질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지구상에는 생명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업신여기지만 고등생물은 말할 것도 없이 하등생물과 돌 하나, 흙 한 줌, 공기, 그리고 물 등 지구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 중 생명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이 자연이고 자연 안에서 생명이 존재하는 것을 볼 때 자연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인권이라 함은 자신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권한도 없고 타인에 대해서도 어떤 강제적인 행위로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45억 년 전에 유기물과 무기물이 결합해서 생명체가 탄생되었고, 생명체들이 충만하게 지구를 뒤덮은 후 700여만 년 전에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하였다. 인류가 탄생한 후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를 형성하고 사회가 진화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국가가 형성된 것이다.

사회의 진화과정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형성되고 지배자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규범이라는 것을 만들어 사람들의 정신과 육체를 통제해 왔다. 고등사회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편하고 안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배자들이 규범을 만들어 보이지 않게 자신들의 통치를 견고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지배자들은 시민의 안전과 질서를 위한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에 따라 금력, 권력, 그리고 폭력을 적절히 활용하여 왔다.

억압이 가해지지만 시민들이 억압으로 느끼는 정도의 차이가 고등사회와 초등사회의 척도가 된다. 초등사회는 억압이 곧바로 들어나지만 고등사회로 갈수록 마치 개구리를 솥 안에 넣고 서서히  끓이면 뜨거움을 느끼지 않고 죽어가는 것처럼 자신들이 육체와 정신적 억압을 받고 있음에도 느끼지 못하고 지배를 받는다. 자신과 타인에게 어떤 형태의 억압이라도 가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 위령공편에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라고 했다.

평화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전쟁이요, 다음이 갈등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전쟁과 갈등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한다. 전쟁은 힘으로 타인을 억압하는 것이라면 갈등은 자신과 타인사이에서 마음이 충돌하여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

평화로운 숲이나 초원이라는 말은 평화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숲과 초원을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은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엄청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피비린내 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이 매일 벌어지고 있음에도 평화롭다고 표현하는 것은 그곳에는 필요 이상의 압박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큰 나무가 작은 나무를 억압하지 않고, 사자가 얼룩말을 잡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 잡을 뿐 쌓아두거나 장식을 위해서 잡지는 않는다.  평화는 자유롭되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우주만물이 생명임을 알고 함부로 다루지 않으며, 보이는 힘이든 보이지 않은 힘이든 육체와 정신을 억압하지 않는데서 완성되리라고 본다. 

진보의 가치가 존중되는 정치는 불가능한 것인가?  정치에서 자유, 생명, 인권, 그리고 평화를 실현할 수 없는 것인가? 우리나라 지방자치가 복원된 지 23년이 되어가지만 진보의 가치가 존중되는 정치를 시도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를 본적이 없다.

정치의 속성이 권력의 쟁취라는 한계를 안고 있어서 끊임없이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다 치더라도 쟁취한 권력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진보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권력을 잡고 이를 자신이 쟁취한 사유물로 생각하고 무자비하게 행사하지 않고 시민과 함께하는 권력의 공유화를 지향해야 한다.

진보를 지향하는 정치는 시민을 주인으로 모시고 시민을 위한 정치여야 한다. 나주의 역사성과 혁신도시의 첨단기술과 정신을 결합하면 나주는 진보정치의 성지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이념과 정신이 없는 민생정치는 사탕으로 시민을 현혹하는 미끼정치다. 진보의 정신이 살아있고 이것을 실천에 옮기려는 정치가 진정한 민생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