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창 전 고구려대학교수

금성산은 역사적으로 숭배의 대상에서 시민이 함께하는 친근한 삶의 터전으로 변화하고 있다. 산은 전통적으로 볼 때 오늘날처럼 우리가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 사상은 문명의 발달 속도와도 연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히말라야산맥의 원주민들은 히말라야를 여전히 숭배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등산가들은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으로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하늘, 산, 강, 바다, 거대한 나무, 그리고 심지어 같은 동물일지라도 거대한 것이면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인간이 극복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면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숭배한 것이다. 산은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하늘과 맞닿을 수 있는 통로로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오르지 않고 산봉우리를 통하여 다다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매개체로 본 것이다. 사람과 하늘, 하늘과 사람을 연결하는 통로로 산을 본 것이다.

변동명 전남대 교수의 〈한국 전통시기의 산신 성황신(山神?城隍神)과 지역사회〉라는 책에 의하면 금성산(錦城山)은 현재의 나주시 중심가에서 서북 방향으로 길게 가로 누운, 나주의 진산(鎭山)이다. 정상에는 4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최고봉인 정녕봉(定寧峰)이 해발 450.3m로서 그리 높지는 않다. 그렇지만 평야지대를 가로지르며 우뚝하여, 멀리서도 얼른 눈에 띈다. 영산강과 나주평야를 굽어보며 나주지역 주민과 애환을 함께 해 온 이 산은, 그러므로 나주를 상징하는 산이라고 하여 조금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고려시기 나주의 치소(治所)와 금성산 일원에는 금성산신제(錦城山神祭)와 관련되는 신당(祠堂)이 5곳이나 자리하였던 것으로 전한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서, 금성산은 개경(開京)의 주산인 송악(松嶽)에 버금가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처럼 격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나주 팔간회(羅州 八關會)의 개최에 힘입은 것이다. 고려시기에 현 전남지역을 대표하는 고을은 광주가 아니고 나주였다.

후백제와 고려가 치열하게 쟁패전을 벌이던 소용돌이 속에서 왕건(王建)의 편에 섰던 나주가, 고려의 후삼국 통합 이후 전남지역에서 유일한 주목(主牧)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3세기 중·후반에 걸쳐 나주의 금성산 신앙이 자주 사서(史書)에 등장하고 또 금성산신의 우대 요구가 나타나는 것은, 전남 지역사회 내에서의 나주의 주도권, 특히 고려 후기 들어 크게 성장한 광주의 도전에 대응하여 주목(主牧)으로써의 위치를 재확인하고자 하는 나주인의 강한 의지가 그처럼 표출된 것이었다고 하여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백제시기에 발라군(發羅郡)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시기 경덕왕대(742~764)에 금산군(錦山郡) 혹은 금성군(錦城郡)으로 개칭되었던 나주는 고려왕조에 들어 몇 번인가의 변동을 거친 끝에 현종 9년(1018)에 나주목(羅州牧)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1 지사부(知事府)와 4 지사군(知事郡) 및 4 현령관(縣令官)과 48 속군현(屬郡縣)을 거느리는 계수관(界首官)으로서 고려시기 내내 나주는 전남지역의 으뜸가는 행정치소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산림은 일제시대의 무분별한 산림파괴행위와 해방이후 난방을 위한 벌채, 그리고 6.25전쟁으로 인하여 민둥산으로 변했다. 6.25전쟁이후 60-70년대 민둥산에 벌인 녹화사업과 경제성장에 따라 연료를 목재에서 연탄과 석유로 대체하면서 입목도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숲은 단시간 내에 녹화사업에 치중하다보니 경제적인 가치보다는 오히려 공익적가치가 더 높다고 한다. 수자원 저장, 수질정화, 토사유출방지, 대기정화, 산림휴양, 야생동물 보호 등으로 우리의 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금성산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상징성을 밑바탕으로 이제 산림휴양의 으뜸산으로 가꾸어 갔으면 한다. 산을 훼손하지 않고 공생할 수 있는 이용측면으로 숲 유치원, 숲 치유, 숲 명상, 산림교육, 야영, 산악자전거, 산악마라톤, 숲 산책로, 숲 공연장 등을 설치하여 활용함으로써 나주시민들의 삶을 한층 여유롭고 풍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숲에서 펼쳐지는 활동들은 숲이 우리에게 내어주는 피톤치드, 음이온, 산소, 그리고 각종 향기들은 도시민들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고, 질병을 치유해 주며,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협력과 배려, 사회성을 증진시켜준다고 알려져 있다.

나주는 역사의 중심에 있었고 금성산은 나주의 진산으로써 상징적인 역할을 해왔다. 지역의 패권을 놓고 금성 산신을 동원했다는 것을 볼 때 산이 상징하는 바가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금성산이 오늘날 과거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고려시대처럼 산신을 활용하여 숭배하고 지역의 패권을 확보함으로써가 아니라 산을 우리 삶과 얼마만큼 연결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금성산이 우리의 삶이 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