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듯 시들어버린 풍란의 뿌리를 잘라본다
하얀 실 같은 명줄이 아직 버티고 있다
이끼로 감싸서 바위에 붙이니
무게를 버린 풍난의 뿌리가
허공에 길을 낸다
풍찬노숙이라고 함부로 말하지말라
지상을 떠나 바위나 나무를 제 거처로 삼고자했을 때
그는 알았을 것이다
뼈를 비워야 허공에 길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요양병원의 풍난 한 촉
땅위의 인연을 버리기로 작정한 듯
모든 무게를 버린
껍질뿐인 뿌리로 허공을 향해 한 걸을 내딛고 있다
한때 거울을 보며 흐뭇했을 귀걸이도
버겁다는 듯 귓불이 늘어져있다
다 귀찮다는 듯 두 눈 질끈 감고
수행의 자세로 누워있는 풍란에게 말을 걸어본다

귀걸이가 귀찮지 않으세요?
귀걸이를 뺄까요?

꾹 다문 입술이 열린다
뼛속까지 비워내며 깨달은 말씀 놓칠 새라
귀를 입술에 바짝 붙인다
온몸의 진기를 끌어 모은 바람 한 줄기 새어나온다

안 귀찮아

하늘계단을 건너는 저 용기

풍란은 아직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