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식 국장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는 속담이 있다. 무덤 속에 말없이 누워 있지만 그 죽음에는 반드시 깊은 속사정이 있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잠시 나와 구경 잘하고 잘 놀다 하늘나라로 돌아간다는 천상병 시인의 삶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굴곡진 길이었다.

그러나 기인답게 허허허 웃으며 소풍 나왔다 집으로 귀가하는, 들뜬 아이처럼 죽음에 드는데 서울대 상대 출신인 그의 인생이 철저하게 망가진 것은 박정희라는 미친 권력에 의해 國事犯(국사범)이라는 억울한 누명에 몰려 6개월간 모진 고문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억울하다는 한마디에 인색 했는데 박근혜의 억울함과 비교해보면 누가 정말 억울한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토정비결 가지고도 풀 수 없는 천상병 시인의 억지 '관재수'는 세계 초유의 사법살인을 낳게 한 1975년의 인혁당 조작사건으로 무고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8명의 희생자들에 비하면 조족지혈, 새발에 피다. 천상병은 목숨만은 부지 했지만 그들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는데 피의 눈물로 그 참상을 평생 보듬고 살아온 남은 가족들의 억울함이 박근혜의 억울함과 같을까?

박근혜는 박정희의 미친 권력의 후광을 등에 업고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당시 당선과정을 지켜보면서 '위컴'이라는 주한미군 사령관이 대한민국 국민을 두고 말 했던 '들쥐근성'에 확실히 공감 했었다.

당시 '위컴'은 전두환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부분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원인을 분석한 결과 들쥐 행동과 유사한 한국인의 근성에 답을 찾는 모양인데 들쥐들은 앞선 놈이 소리를 지르면서 뜀박질을 하면 덩달아 같은 패턴의 행동을 한다고 한다. 유식한 말로 부화뇌동이라고 하고 쉬운 말로 남이 장에 가니까 까닭 없이 바지게 지고 따라 나선 꼴과 같다.

그러나 필자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승복했다. 승복하지 않을 방도는 헌법을 부정하며 내란을 선동하는 국사범이 되는 길 예외는 다른 길이 없다. 그러고 국민의 일원으로서 헌법에 의해 정당하게 선출된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이 곧 국민의 성공이라는 믿음은 오늘도 유효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탄핵이 인용되었고, 대통령직에서 강제로 물러나게 된 자연인 박근혜는 탄핵인용을 승복하지 않는다. 억울하다고 한다. 엮였다는 눈물이다. '진실은 밝혀진다'라는 말로 자신의 부덕함을 뉘우치기는커녕 언론과 재판관에게 자신의 前過(전과)를 덤터기 씌우고 있다.

박근혜는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사법살인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그의 아버지가 환생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 국민인 나는 헌법에 의한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에 승복했는데 대한민국 국민인 박근혜는 헌법에 의한 재판결과에 왜 승복하지 않는 것일까? 그는 처음부터 대통령 '깜'이 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사회 일원이라면 최소한 갖추어야 하는 소양의 부족함 아니면 이기주의에 함몰된 졸부, 그것도 아니면 이따금 영산포장에 나타났던 난임이의 정신상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억울해 하는 자체가 큰 죄악이다.

그의 아비는 자신의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죄 없는 백성들을 수도 없이 물고 내었고, 사법을 빙자하여 살인도 서슴지 않은 희대의 독재자였다. 여기서 억울함은 희생당한 그들의 몫이어야 한다. 그의 딸이 억울해 하면 세상이 미쳐있는 것이다.

유신의 심장을 저격한 김재규의 권총 탄알이 의탄인지 흉탄인지는 역사가 재평가할 문제지만 박근혜의 '진실'과 억울함은 역사가 재평가 할 가치가 전혀 없다. 이제라도 국민들에게 속죄하고 국민통합을 위해서 탄핵인용에 승복하는 것이 국민 됨의 도리일 것이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한 닉슨 대통령은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우선이므로 '하야' 한다는, 미국 대통령다운 결정을 했었다. 그와 반대의 길을 선택한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이라는 권위는커녕 들쥐 대장쯤이었다.

들쥐 대장으로 영원히 남고 싶다면 헌재심판 불복은 당연하다. 그러나 불복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이다. 더 이상 국민을 부끄럽게 해서는 안 된다. 역사를 두려워해야 한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를 뒤척이게 되어 있는 밤에 동무삼아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