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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세상을 응시하는 깊은 눈, 김훈 장편소설《공터에서》 김훈(지은이)
이철웅 편집국장  |  njt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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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1호] 승인 2017.03.05  1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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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아홉 번째 장편소설 《공터에서》는 이승만, 박정희 등을 거쳐 국가권력이 옮겨지는 것을 목격하며, 그에 따라 영광은 작고 치욕과 모멸은 많은 우리 삶의 꼴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자전적 경험을 실마리로 집필한 작품이다.

김훈은 《공터에서》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는 소설가이자 독립운동가로 김구와 함께 활동한 이력이 알려진 바 있다. 김광주는 1910년 생으로 이 책에서 마동수와 태어난 해가 같다. 김훈은 1948년생이다.

   
 
김훈은 "아버지는 우리나라가 망해서 없어진 해 태어나셨고, 나는 다시 정부 수립한 해에 태어났다"며 "결코 도망갈 수 없는, 피해서 달아날 수 없는 한 시대의 운명이 전개되었다"고 자전적 소설의 이유를 밝혔다.

이어 "이번 소설에서 만주에서 떠돌다 귀국해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이승만-박정희 치하를 겪은 우리 아버지 세대와 이승만 시대에 태어나 여태 산 내 세대 사랑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김훈은 《공터에서》에 관해 "피해자의 이야기"라며 "영웅이나 저항하는 인간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훈은 작가의 말 중에서 "나의 등장인물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총 33장, 원고지 869매로 집필한 소설에는 1920년대부터, 1980년까지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사건들이 곳곳에서 배치되어 있는데, 이러한 사건들은 마씨(馬氏)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 마동수와 그의 삶을 바라보며 성장한 아들들의 삶을 통해 트러난다. 작가는 만주와 길림, 상하이와 서울, 흥남과 부산 그리고 베트남, 미크로네시아 등에서 겪어낸 등장인물들의 파편화된 일생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그 신산스런 삶을 바라보는 서늘한 시선을 뜨러낸다.

일제시대, 삶의 터전을 떠나 만주 일대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가 겪어낸 파란의 세월,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시간과 연이어 겪게 되는 한국전쟁, 전후의 피폐한 상황 속에서 맺어진 남녀의 애증과 갈등, 군부독재 시절의 폭압적인 분위기,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한국인들의 비극적인 운명, 대통령의 급작스런 죽음과 군사반란, 세상을 떠도는 어지러운 말들을 막겠다는 언론통폐합, 이후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찾아온 자본의 물결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사건들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 정착해 삶의 기틀을 마련하려는 마씨 집안의 가족사에 담겨 있다.

광야를 달려야 할 말이 고삐에 걸려 있던 자리로 되돌아와야 하는 것처럼, 벗어나려 해도 벗어 날 수 없는 운명의 고비에 삶이 얽매여 있는 이들의 비참하고 비애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작가는 이다지도 막막한 세상에 서서 비빌 수 있는 작은 거점이 존재하는가를 처절하게 되묻는다.

김훈은 집요하게 병과 죽음, 섭취와 배설 같은 날것 그대로의 인간을 들여다본다. 작품 속 아버지가 살았던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러 건너간 중국, 해방 후 돌아온 한국 등의 역사가 날실이라면 병과 죽음 등은 씨실인 셈이다. 김훈은 이 날실과 씨실로 소설 속 개인의 생을 직조하면서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세상' 속 절망감을 그리고 있다.

《공터에서》는 두렵고 무섭지만 달아나려 해도 달아날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 자신이 어떤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를, 우리의 영혼을 쉬게 할 작은 거점이 어디인가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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