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한 24가지 담론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는 사랑의 딜레마를 현대적인 방법으로 풀어 낸 책이다. 작가는 1인칭 화자인 주인공과 그의 연인 클로이가 엮어나가는 러브스토리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분석적이고 철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책의 대강 줄거리는 이렇다. 12월 초의 늦은 아침, ‘나’는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브리티시 항공기 이코노미 클래스에서 운명적인 여인 ‘클로이’와 조우한다. 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희박한 확률로 만났다는 “낭만적 운명론”에 젖어 단박에 사랑에 빠진다. 둘은 초기에는 서로를 “이상화”하고 서로의 말과 행동에서 이면의 의미를 찾고 정신과 육체를 결합하려고 시도한다. ‘나’는 만남이 잦아지면서 사랑이냐 자유냐를 놓고 갈등하기도 하지만 끝없이 상대의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하고, 결국 사랑을 말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윌이라는 친구가 ‘나’한테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는가”라고 묻는 동시에 클로이와 윌은 서로에게 호감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에 ‘나’는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클로이를 붙잡기 위해 “낭만적 테러리즘”, 즉 엇나가는 사랑을 되돌리려 억지를 쓰나 실패하고 만다. 클로이가 윌을 택하자 ‘나’는 삶이 무의미해지는 동시에 그들에게 침묵으로 시위하고자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결국 미수에 그치고 ‘나’는 ‘예수 콤플렉스’(스스로 고통을 받도록 선택되었다고 생각 하는 것)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아프게 깨닫는다. 그 후 ‘나’는 심리적 운명론을 좇아 그녀 없는 삶, 곧 ‘생략’도 받아들인다. 시간이 흘러 실연의 상처를 극복한다. ‘나’는 사람의 교훈을 깨닫고 어는 순간 다시 한 번 새로운 사랑에 빠진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읽기 전 제목만으로 유추해 보았을 때 남녀간의 진부하다면 진부하고 달콤하다면 달콤한 사라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 할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의 주인공 ‘나’와 여지주인공 ‘클로이’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는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절반 이상은 저자의 관념과 사랑의 일대기에 대한 철학에 주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삼류 로맨스 소설 따위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감성과 그에 대한 저자의 철학적인 지식에 덧붙여 이론을 더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어렵게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 비트켄슈타인, 역사, 종교, 마르크스를 끌어들여, 첫 키스에서부터 말다툼과 화해에 이르기까지, 친밀함과 부드러움으로부터 불안과 상심에 이르기까지 연애의 진전을 독특하게 그려낸다.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사랑의 생성과 소멸에 붙이는 한 편의 긴 주석이다. 저자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순간순간을 철학적으로 낱낱이 분석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몸소 증명하는 실천 이론가다.

“사랑에 빠지는 행위는 자기 자신의 허점을 넘어서고 싶어 하는 인간 희망의 승리이다.” 이처럼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은 사랑에 관한 철학적 명상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새로 경험하는 굵직굵직한 사건에서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도 놀랍고 존경스러운 일이겠지만, 연애라는 케케묵은 문제를 놓고 비상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놀랍다. 대다수 사람들이 연애하는 과정에서 사랑에 대해서는 일가견을 가지기 마련인데, 그런 독자들을 앉혀놓고 새로운 통찰과 깨달음으로 무릎을 치게 만든다.

추상은 모든 구체에 대한 폭력이다. 압축 또한 그렇다. 더구나 섬세한 뉘앙스를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사람의 담론을 몇 줄의 추상적인 담론으로 압축한다는 것이야말로 언어도단. 사랑의 담론은 추상적인 히스토리에 있기 보다는 시시콜콜한 디테일과 뉘앙스를 담은 스토리에 있는 것은 아닌지. 알랭 드 보통의 이 책은 반듯이 디테일로써 읽어야 할 책이다.